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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철도원> 포스터 | ||
[디아티스트매거진=신동혁]***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철도원>(1999, 후루하타 야스오)
하얗게 흩날리는 눈을 가로지르는 낡은 기차는 패기롭다. 내 시야를 방해하는 장애물 따윈 아무 상관이 없다는 듯 젊은 기관사는 외친다. “신호 OK.” 이어지는 씬에서 늙어진 젊은 기관사는 이제 기차를 내려 외딴 역을 지킨다. 그가 지키는 역의 승객은 없다. 이따금씩 다가오는 빨간 기차는 그와 그가 지키는 ‘호로마이 역’의 존재가치를 증명하지만, 기차가 떠나면 이윽고 홀로 남게 되는 그의 외로움은 울려 퍼지는 호각소리처럼 메아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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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 ||
영화 <철도원>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아무도 찾지 않는 ‘호로마이 역’에서 배경만큼 낡아버린 나이든 철도원 ‘오토’의 모습을 그린다. 일평생 철도 일에만 빠져 살았던 오토는 철도원으로서 평생을 함께한 호로마이 역과 함께 은퇴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모든 만물이 하얗게 머리가 세는 겨울에, 눈 내린 듯 머리가 하얀 오토는 플랫폼에 쌓인 하얀 눈을 치우기 바쁘다. 마치 스스로의 늙음을 거부하는 듯이, 같이 나이 들어버린 호로마이 역의 낡음이 서럽다는 듯이. 세월의 흐름에 사그라져가는 과거의 인물과 철도는 서럽다.
오토는 철도원이란 평생의 업에 자부심을 갖고 있던 남자이다. 딸 유키코가 죽은 그 날에도 철도원이란 스스로의 책임감에 그는 플랫폼 위의 눈을 치웠고, 아내 시즈에가 죽은 그 날에도 병원으로 향하는 아내가 탄 기차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후부 OK.”를 외쳤다. 가장에의 책임감보다 철도원으로의 자부심이 앞섰던 고지식한 남자. 그는 아내의 병세에도 언제나 시계를 보며 기차의 정시출발을 지켰고, 죽은 채 돌아오는 딸도 역장의 깃발을 흔들며 맞았다. 앞선 책임감은 기차 주변에 듬뿍 쌓인 눈을 그의 슬픔으로 치환시켰다.
그 후 십수 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홀로 남은 오토의 과거 자부심과 책임감은 가족에 대한 죄책감으로 변모한다. 그러므로 그의 친구 센의 함께 떠나자는 제안에 선뜻 응하지 못함은 오토가 이곳 호로마이 역에 묻은 상실의 기억이 쓰리게 회개를 강요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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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 ||
이런 그에게 어느 날 나타나는 의문의 소녀는 오토가 딸에게 선물했던 똑같은 과거의 인형을 남기고 떠난다. 철도원으로의 책임감이 조금씩 옅어지는 은퇴 시기가 되어서야 그가 소홀했던 가족에 대한 책임은 소녀의 인형에 투사되어 오토에게 가족의 소중함과 외로움을 환기하며 옛 기억으로 그를 안내한다.
영화 <철도원>은 ‘건강을 해쳐가며 깃발을 흔들고 눈물을 삼켜가며 호각을 울린다. 눈 속에 슬픔을 묻어라 철도원이여’ 하는 노래로 철도원을 묘사한다. 우직하고 성실한 그네들을 짧은 글로 그리는 이 노래 속엔 철도원으로서의 운명인 ‘언제나 같은 자리를 지키는’ 종착지의 모습에 대한 한(恨)이 서려있다. 떠날 수도, 떠날 이유도 없는 그들이 어느 순간의 세월 흐름에 따라 더 이상이 책무를 다 할 필요가 없어졌을 때 느껴지는 존재 목적에 대한 회의는 지극한 외로움을 낳는다. 역 밖으로 떠나본 적이 없기에 다가올 새로운 의미를 찾는 이동의 삶은 두렵다. 그러므로 곧 사라질 자신의 의미에 대한 아쉬움이 결국은 메아리로 돌려주는 건, 쓸모없는 의미에 집착했던 과거의 후회이자 유의미했던 과거의 아름다운 추억뿐이다.
이 대목에서 두려운 미래와 후회의 과거에 매몰된 오토에게 다가오는 각기 다른 연령대의 세 명의 소녀들은 그에게 딸과 경험하지 못했던 시간을 선사한다. 초등학교에 진학할 나이의 소녀, 중학교에 진학할 나이의 소녀, 고등학교에 진학할 소녀. 각자 끝을 앞두고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소녀들의 모습은 마치 철도원의 삶을 끝내고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할 오토에게 과거의 아쉬움을 털어내라고 말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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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 ||
소녀가 오토에게 묻는다. “호로마이 선이 없어진다면서요?” 쓸쓸한 표정으로 역과 철로, 이 건물도 모두 사라진다며 고개를 끄덕이는 오토. “철도가 생기기 전의 벌판으로 돌아가서 철도가 있었던 것도 잊어버리는 거야.”라며 자신의 전부였던 철도의 소실(消失)될 운명을 아쉬워한다. 이는 곧 스스로의 전부를 부정당하는 것과 같았다. 여기서 그를 위로하려는 소녀의 “하지만 추억이 남잖아요.”란 선언은 철도에 서려있는 오토의 모든 감정, 아내와의 사랑과 딸 유키코가 태어났을 때의 기쁨, 상실의 아픔과 홀로 남음의 쓸쓸함, 친구와의 우정, 과거의 자부심에 대한 영속의 표명이다.
이어 마지막 기차를 떠나보낸 오토가 관사로 돌아오자 보이는 생생한 아내의 모습은 기억 속 죽어가는 아내의 모습과 대치되며 갇혀있던 죄책감의 해방과 겹친다. 물론 소실점의 아내 모습은 다시 원래 소녀의 모습으로 돌아오지만, 오랜만에 누군가의 저녁차림을 받은 그는 설명할 수 없는 벅차오름에 “아저씨는 행복한 사람이야.”란 고백을 한다. 이는 기억 속 아내와 딸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 그리고 아직도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스스로에의 따스함이 혼재된 감정이다. 영화 내내 과거에 매몰되어 잘 살았는지에 대한 의문과 후회가 있던 그에게 지금의 고백은 누군가의 종착지가 되어주었던 스스로의 인생에 대한 만족을 의미한다. 그의 행복한 표정에 마주 앉은 소녀는 말없이 미소 짓는다. 이 순간 그녀는 오토의 딸 유키코의 현신으로 다가온다.
커가는 모습을 아버지에게 보여주고 싶던, 17년 전에 죽은 딸의 현신은 “이제까지 좋은 일이 없었던” 아버지에게 큰 위로가 된다. 그러므로 ‘눈물을 삼키며 호각을 부는’게 미덕인 철도원의 눈에선 이제껏 볼 수 없던 뜨거운 눈물이 흐른다. 그리고 “네가 죽을 때에도 일지에 금일 이상무라고 썼다.”는 아버지의 무책임에 대해 사과한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철도원의 모습이 아니다. 딸을 품에 안고 펑펑 우는 아버지의 모습이다. 그리고 이 한풀이의 과정은 이윽고 오토의 일지에 ‘이상 무’란 표명을 낳는다. 이는 아버지의 인생으로도 철도원의 인생으로도 만족하는 그의 인생에 대한 수고 표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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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 ||
엔딩 씨퀀스. 호로마이 역 가득 덮인 눈 위에 포근히 안긴 오토의 모습이 비친다. 그가 평생을 지킨 역에 대한 안김인지, 딸 유키코(눈의 아이)에게 안긴 모습인지 알 수 없지만 마지막까지 그는 철도원이고, 아버지였다. 그는 결국 죽어서 새로운 길을 떠난다. 그가 탄 기차의 뒷모습에 나지막한 목소리가 깔리는 듯하다. “후부 OK” ”신호 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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