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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처 네이버] 영화 오피스 | ||
[디아티스트매거진=홍진희]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신입사원 시절, 첫 출근하던 그날의 긴장과 설렘이 아직도 잊혀 지지 않는다. 드라마 속의 여주인공처럼 나의 능력을 시기하는 여자 상사나 경쟁사의 음모가 나를 시련으로 몰아넣을지라도 현명하게 극복해 멋진 커리어 우먼으로 거듭나고, 그 과정에서 나의 남다른 매력에 홀딱 빠진 잘생긴 실장님과의 로맨스까지 상상하면서 온갖 종류의 김칫국을 들이키며 시작한 나의 첫 회사 생활은 현실을 깨닫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대책은 주지 않으면서 모두가 듣는 앞에서 큰 소리로 부하직원 인격모독을 하는 사람, 자신의 업무평가가 아니라 타인의 흠을 보고하는 데만 열을 올리는 사람, 어떤 죄책감도 없이 부하직원 공을 가로채는 사람, 끼리끼리 모여 다른 사람들의 스캔들 만들기에 집중하는 사람, 윗사람에게는 한없이 아부하고 아랫사람에게는 서슴지 않고 상처 주는 말을 하는 사람 등 그 곳은 내 꿈을 펼칠 무대가 아니라 모두를 물고 뜯어서 최후에 남는 자가 이기는 정글과도 같았다. 나는 매일 아침 회사 정문에 들어서면서 ‘오늘도 지옥문을 넘는구나.’라고 속으로 읊조리고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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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처 네이버] 야수들이 우글거리는 곳, 회사 | ||
‘나는 출근한다. 매일 침을 흘리고 피를 튀기는 야수들이 우글거리는 곳으로’라는 말을 회사에서 나눠준 다이어리에 적는 김병국 과장의 심정도 이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토록 지옥 같은 회사도 견디다 보면 어느새 그들과 닮아져가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주류에서 나가 떨어져 비주류로 낙인찍히기 싫어 내가 그토록 한심하게 여기던 그들과 점점 같아지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 속으로 그들을 증오하고 그런 자신의 모습을 비관하지만 애써 현실에 순응한다.
김병국 과장도 노력은 해봤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은 그들과 어울리기에는 너무도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래서 회사원으로서의 본분인 열심히 일하기에 매달렸지만 돌아오는 것은 자신의 아픈 아들까지도 서슴없이 끄집어내는 상사의 인격모독과 자신들과는 다른 사람이라는 이유로 점심조차 함께 하지 않는 동료들의 따돌림뿐이었다. 누구에게도 해 끼치지 않고 살았건만 끊임없이 자신을 옥죄는 주변 사람들은 결국 그에게 최악의 선택을 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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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처 네이버] 회사의 왕따 김병국 과장 | ||
그런 김병국 과장을 바라보는 인턴 이미례는 어땠을까? 이제 막 사회의 첫 발을 내딛은 미례에게 김병국 과장은 야수들 앞에 아무 대비 없이 놓인 초식동물처럼 안쓰러워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편으로 저런 처지가 되진 말아야겠다는 다짐의 대상이 되기도 했을 것이다. 불행하게도 안쓰러운 존재이기는 하지만 결코 닮고 싶지 않은 회사의 왕따 김병국 과장은 미례가 자신과 닮았다고 이야기한다. 그 얌전하고 여리던 미례도 김병국 과장의 발언에 날선 반응을 보이며 거부한다. 내가 왜 당신과 같냐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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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처 네이버] 인턴 이미례 | ||
이 야수들의 소굴에서 인턴이 아닌 정규직으로 살아남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열심히 일했지만 결국 돌아오는 말은 너무 열심히 하려는 모습이 그녀를 없어 보이게 만든다는 이해할 수 없는 말만 들을 뿐이다. 야수들은 김병국 과장이 떠나자 미례를 또 다른 김병국으로 취급 한다. 직급마저도 자신들보다 낮은 인턴 이미례는 드러내놓고 씹을 수 있는, 김병국 보다도 더 좋은 먹잇감이다. 심지어 미례가 그토록 거부했건만 결국 그녀는 김병국 과장과 비슷하다는 소리마저 자신의 두 귀로 직접 듣고 만다.
시키는 대로 다하고 열심히 일했건만 왜 야수들은 미례에게 상처주지 못해 안달일까? 밖에서 만나면 배나오고 목소리만 큰 아저씨, 히스테릭한 노처녀, 주식으로 재산을 날린 한심한 그저 그런 남자일 뿐인데 회사 안이라는 이유만으로 어째서 미례를 자신보다 못한 인간으로 취급하걸까? 이런 질문들을 미례도 수없이 혼자 되뇌였을 것이다. 그리고 열심히 일해서 없어 보이는 자신과 스펙이 좋아서 센스있어 보이는 새로운 라이벌 인턴과의 비교는 서울에서 살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안고 상경해 열심히 노력한 자신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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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처 네이버] 어딘가 서로 닮은 김병국 과장과 이미례 인턴 | ||
비록 영화적 장치를 위해 극단적인 선택을 했지만 그런 선택이 옳다고 할 수 없음에도 나는 그녀의 선택에 왠지 모를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한때 내가 회사 사람들에게 극에 달한 분노를 느꼈을 때 결코 실행할 수 없었던 마음속에 품었던 불손한 생각들을 그녀가 대신 드러내줘서 일 것이다. (물론 회사에는 좋은 분들도 많았다. 내가 항상 증오와 살기를 품고서만 일했던 건 아니다.)
하지만 다수의 야수들이 존재하는 회사에서 초식동물들의 반란은 큰 힘이 없다. 결국 김병국 과장은 스스로 비참한 최후를 선택해야만 했고, 용케 복수에 성공하고도 위기를 모면한 미례 역시 여전히 취업을 준비하며 면접을 보러 다녀야 하는 우리네 서글픈 20대의 신세이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남은 야수들은 마음이 편하겠는가. 언제까지 눈앞에 먹이로 남아줄 것만 같았던 초식동물들이 모든 것을 내던진 채 발악하고 사라져 버린 빈자리는 야수들 마음 한켠에 죄책감과 언제 자신이 역습 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메꿔진다. 자신들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불행이 김병국 과장의 소행이라고 생각하며 강박증에 시달리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 생각하니 인턴 이미례의 신세가 더욱 처량하게 느껴진다. 그녀의 한 맺힌 발악에도 사람들 눈에는 김병국 과장만 보이니, 이 넓은 회사에서 날 좀 알아달라고 그토록 노력했지만 마지막까지도 뜻대로 되지 않는 인턴의 존재감이란 너무도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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