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티스트 매거진 = 염인화 칼럼니스트] 불과 100년 전까지만 해도 신화 속 이야기로만 알려졌던 에게해 문명. 이 문명기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의 대대적인 발굴작업을 거친 뒤에서야 비로소 인간의 것으로 확인된다.
기원전 3000년부터 1200년까지, 이집트와 수세기를 공유하는 것으로 알려진 에게해 문명은 고대 이집트와 고대 그리스 문명 간의 ‘잃어버린 고리(missing link)’를 메우며, 고대문명사를 보다 풍부하게 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에게해 문명은 크게 세 가지 시기로 구분될 수 있는데, 산토리니를 중심으로 발전한 키클라데스 문명, 크레타 섬의 미노아 문명, 그리고 그리스 본토의 미케네 문명이 그것이다.
키클라데스 문명 (c. 3000-1200 BC)
청동기 초기에 해당하는 기원전 3,000년 경, 에게 해 남쪽의 군도를 중심으로 키클라데스 문명이 발전한다. 동시기의 이집트에서는 히에로글리프가 발달한 것에 비해 이 지역은 여전히 선사시대에 머물고 있었다.
문자가 부재한 만큼 기록자료가 없어 키클라데스 문명에 대해서는 유물들을 중심으로 연구가 진행 중이다. 주로 무덤에서 발굴된 도자기, 금속공예품, 그리고 대리석 조각 등이 해당한다. 이 유물들의 특징은 현대의 시각에서 봐도 놀랄 정도로 모던한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대체로 윤곽이 단순하고 깔끔하며 비례대칭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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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emale Cycladic idol, from Amorgos, 2700-2300 BC. | ||
윗 조각들은 인체를 본질적인 요소로 단순화 및 추상화시켰다. 같은 여성을 묘사한 조각이라 하더라도, 메소포타미아 문명권의 비너스 조각이 몸의 곡선을 강조한 것과는 또 다르게 발전한 양식이다. 이처럼, 동시기의 고대 문명들은 서로 공통된 관심사를 공유하기도 하지만서도 지역에 따라 예술적 표현방식이 다르게 발전하기도 했다.
미노아 문명(c.3000-1500 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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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ts of the Ship Fresco, from Akrotiri, Thera, c.1650-1500 BC. | ||
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 신과 에우로파(Europa)의 아들인 미노스(Minos)의 고향으로 알려진 크레타 섬. 이 섬을 중심으로 발전한 미노아 시기에는 기원전 2,000년 경부터 선형 A 문자(Linear A)가 사용되었고, 동시에 도자 및 금속 가공기술이 향상되면서 청동기 문명의 중심지로 거듭났다. 제법 고도화된 문명이었지만, 지진이나 해일 등 빈번한 자연재해로 인해 유물들이 많이 훼손되어 자료가 불충분한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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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노소스 왕궁 터 | ||
현재 크레타 섬에는 미로처럼 복잡하게 지어진 거대한 성, 크노소스 왕궁의 터만 남아있는 정도이다.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이 곳에 포세이돈의 저주를 받은 미노스의 아내가 황소와 사랑을 나누고 낳은 반인반수 미노타우로스가 갇혀있었다.
크노소스 왕궁 내 벽화들은 미노스 예술이 이집트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미노타우로스 신화를 적극적으로 재해석하는 과정에서 독자성을 획득하게 되었음을 증명한다. 특히, 황소 도상이 다수 등장한다는 것이 미노스 예술만의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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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oreador Fresco, from Knossos, c.1500 BC | ||
부분적으로 복원된 이 벽화에는 궁중 연회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남성들이 자신의 용기와 신체적 힘을 과시하기 위해 쇠뿔을 잡고 공중제비 돌아 등에 올라타는, 당시의 놀이문화가 담겨있다.
황소의 앞 뒤로 서있는 사람은 피부가 하얀 반면, 황소 등을 잡고 물구나무 서있는 사람은 까맣게 칠해져 인종 차를 구분하려 했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인종 뿐만 아니라, 남성과 여성을 표현하는 데에 있어서도 피부색을 달리 칠하는데, 이는 이집트의 기법과 유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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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rince of Lilies fresco, from Knossos, c.1500 BC | ||
이 벽화에서도 마찬가지로 이집트 미술적인 요소들이 드러난다. 작품 속 왕자의 전신은 신체부위 별로 가장 잘 보이는 각도에서 그려져 있는데, 이러한 묘사방식은 곧바로 이집트 벽화를 연상시킨다. 이처럼 미노아 미술은 이집트적 재현기법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던 것이다.
미케네 문명 (c.1600-1300B.C.)
미케네 문명은 기원전 1,600년, 청동기가 중기에서 말기로 넘어갈 무렵, 미노아 문명의 영향권에 있었던 전사 가문들이 그리스 본토 남쪽 지역에 정착하면서 확산된다. 1950년 경에는 미케네 문명 말기에 등장한 그리스어 문자체계인 ‘선문자 B(Linear B)’가 해독되면서, 미케네 인들이 그리스인의 선조인 것으로 증명되었다. (그리스 언어가 기원전 2,000년부터 기원전 8세기까지 사용되었다는 점도 밝혀졌다.)
미케네 문명권은 전사 가문이 주를 이뤘던 만큼 잦은 세력다툼에 노출되어 있었다. 따라서, 튼튼한 성벽을 둘러 도시를 방어하는 것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었고, 성채(Citadel)를 중심으로한 건축문화가 발달한다. 두꺼운 벽과 단순한 방 구조를 한 ‘메가론(megaron) 양식’이 바로 이 시기의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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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ion Gate and Cyclopean wall, Mycenae | ||
<키클롭스 벽>은 벽돌이 너무나도 거대해 키클롭스가 나타나 쌓아준 것이라는 전설이 있는 성벽이다. 세로기둥(post)과 두 개 위에 가로기둥(lintel)이 걸쳐 있고, 그 위에 내쌓기(corbelling)된 돌들이 사자 조각을 둘러싸고 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기에도 자주 등장한 사자 도상은 왕권과 용맹함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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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uneral mask, from Mycenae. c.1500 BC. | ||
일명 ‘황금의 미케네’라고 불리워질 정도로 금이 많았던 미케네. 귀족 계층 사이에는 무덤 속에 금제 부장품을 묻는 풍습이 생겨날 정도였다. 이 금제 장례마스크는 한 때 미케네의 왕 아가멤논의 것이라고 알려지기도 했으나, 이후 어느 귀족 남성의 것인 걸로 밝혀졌다. 고대 이집트의 부장품이었던 초상조각처럼 도식적으로 묘사되었으면서도 초상적 개성이 드러나는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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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aphio Cup, 15c BC | ||
한편, 황소가 새겨진 이 섬세한 컵들은 당시 금속 가공술이 어느 정도로 진보했었는지, 나아가 미케네 문명 자체가 얼마나 고도화되고 풍요로웠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에게해 문명의 미술사적 의의와 한계
19세기말부터 오늘날까지 이루어진 에게해 문명의 발굴은 신화로 전해져온 이야기들을 역사로 영속화시킨 의미있는 작업이었다. 그러한 역사적 고증은 고대 이집트와 고대 그리스 간의 ‘잃어버린 구간’을 어느 정도 회복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문자 자료가 불충분한다는 점과 미케네의 몰락 후의 ‘암흑시대’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에게해 문명은 여전히 반쯤은 전설인 채로 남아있다. [디아티스트 매거진 = 염인화 칼럼니스트] ■
이미지 출처: 구글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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