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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물며 우리는 시인조차 아니다 <시>

신동혁 기자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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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시> 포스터

[디아티스트매거진=신동혁]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시>(2010, 이창동)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시(詩)는 사전에서 ‘인생에 대하여 일어나는 감흥과 사상 따위를 함축적이고 운율적인 언어로 표현한 글’로 정의된다. <시> 속에서 주인공 ‘미자’는 이렇게 정의되는 그 시를 쓰고 싶다. 하지만 이 시라는 놈이 생각보다 쉽게 쓰여지지 않는다. 이는 그녀 늙은 평생, 인생에의 감흥이 그리 크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그러므로 그녀는 보는 사람마다 끊임없이 “시는 어떻게 써야하죠?”하고 질문한다. 하지만 2시간이 훌쩍 넘는 영화의 러닝타임 동안 단 한 차례도 명확한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다만 힌트는 주어진다. 영화의 초반부, 극 중 ‘김용탁 시인’은 자신의 수업에서 주머니에 준비한 사과를 꺼내며 덤덤히 말한다.

“지금껏 여러분은 사과를 단 한 번도 제대로 본적이 없습니다. 사과를 알고 싶어서, 대화하고 싶어서, 그림자도 보고, 만져도 보고, 베어 물어보고, 스민 햇볕도 상상해보는 게 진짜로 보는 거예요.”

그리고 이 대사와 함께 그는 수강생들에게 ‘시’ 한 편 써보는 것을 숙제로 낸다. 이 숙제는 위의 장황한 힌트와 혼합하여, 예순다섯 평생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던 미자가 인생의 감흥을 찾으려 스스로를 ‘진짜로’ 바라보게 만든다. 이 성찰의 이유는 열반이나 어떠한 경지에 이르기 위함이 아니다. 다만 시를 쓰고자함이다. 따라서 미자는 마치 이 세상을 지금 처음 보는 것처럼, 호기심의 눈초리로 탐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시>는 바로 그 탐구의 과정을 조심스레 소묘한다.

   
▲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시상을 떠올리는 미자

 

<시> 속 미자의 모습은 정확히 전형적인 예순다섯 살의, 중학생 손자가 있는 할머니의 모습이다. 하지만 그녀는 이러한 현실을 거부라도 하는 것처럼 공주풍의 치마와 우아한 말투로 소녀처럼 행동한다. 본인 스스로 경험하는 이러한 시간과 육체의 괴리는 강물에 스스로 투신한 어린 소녀 ‘희진’의 모습을 보며 의문으로 다가온다. ‘나는 늙었는가?’

점점 늙어가고, 알츠하이머 의증 진단까지 받은 그녀는 아마 스스로 생을 마감한 어린 육체를 이해하지 못했으리라. 꽃봉오리 마냥 아름다움의 가능성을 지닌 소녀의 너무 이른 시듦은 늙음에 대한 모독처럼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그녀는 계속 그 소녀가 누군지 궁금해 한다. 그러다 결국 그 소녀의 죽음이 자신의 분신과 같은 손자에 의함(강간)임을 알게 되었을 때의 그 충격은 이미 아름다움을 경험해 보았던 노인의 그렇지 못한 소녀를 향한 안타까움 그 이상의 죄책감으로 다가온다. 따라서 미자가 소녀의 장례식에 몰래 참석하는 것, 그 곳에서 소녀의 사진을 훔쳐 도망 나오는 것, 모른 척 잠에 드는 손자에게 가 “왜 그랬어!!”하며 소리치는 것은 자신이 지향하는 아름다운 모습의 상망(喪亡)에 대한 아쉬움이면서 동시에 강렬한 죄책감이 배태한 도덕적 저림의 일갈이다.

   
▲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펜과 노트에서 손을 놓지 않는 미자

 

사실 그녀는 늙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러한 육체적 시듦을 관념적으로 거부한다. ‘시’라는 소재가 건네주는 ‘소녀 감성’으로, 그리고 ‘늙음’이 환기하는 성(性)적 무딤 또한 여자의 이름으로 날카롭게 거부한다. 그녀의 이러한 시간과의 소통 실패, 괴리는 현실 속 타인과의 끊임없는 소통의 실패로 전이된다. 자신과의 대화를 거부하는 손자, 합의금을 논의하는 가해자 부모들과의 대화 실패,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컴퓨터를 옳은 방법으로 종료하지 못함 등은 노인의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제한된, 힘든 환경에 의지할 곳 없이 외로운 노인의 현실을 그린다. 이렇듯 ‘여자’로서의 의미를 잃어버린 ‘할머니’는 사회에서 마치 자신이 앓고 있는 알츠하이머처럼 쓸모없는 존재로 전락해 잊혀져간다. 이러한 현실은 우산 없이 맞는 비처럼 따끔하다. 그러므로 미자가 다 늙은 노인네, 강 노인의 요구에 성적으로 몸을 내어주는 것은 죽어가는 육체의 의미를 찾고자 시도하는 위로와 같다.

더불어 미자는 ‘시’에서 위로를 얻고자 한다. 영화 중간에 삽입되는 인물들의 ‘내 인생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대한 고백은 아름다운 세상을 노래하는 시 앞에서 행하여지는 고해성사이다. 그러므로 미자가 참석하는 ‘시 낭송회’는 바깥 현실의 소란을 잠시 잊고, 그녀에게 형이상적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곳에서 느껴지는 이물감, 아름다운 시를 읊기보다 음담패설을 즐기는 ‘박 형사’의 존재는 미자가 그토록 벗어나고 싶어하는 바깥의 어지러운 현실을 적확히 전유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시 낭송회에 참여한 많은 이들 모두 아름다운 시를 감상하기보다 박 형사가 내뱉는 음담패설에 폭소한다. 거기서 불쾌를 느끼는 건 오로지 미자 뿐이다. 그녀는 외롭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시 낭송회 뒤풀이 자리의 중간에 참여한 젊은 시인이 “시 같은 건 죽어도 싸!”라고 외치는 건,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시’가 이미 아름답지 못한 세상에서 살아가지 않는 편이 낫다는 선언과 같다. 시보다 음담패설이 난무하는 이 시대는 정녕 아름답기보단 민망하다.

   
▲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소녀의 장례식장을 찾은 미자

결국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는 미자가 타인과의 세상과의 소통에 실패하고 마는 건, 그녀가 이 민망한 세상과는 어울리지 않게 아름답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의 아름다움을 이해하고 소통하기에 다른 이들의 음험함은 너무나 짙다. 그러므로 미자가 죽은 소녀 희진의 사진을 마치 자신의 사진인 듯 식탁 위에 올려두는 까닭은 세상의 음험함에 너무 일찍 시든 아름다운 소녀의 모습에서 자신과의 동질감을 느꼈을 탓이다. 그래서 미자는 소녀와 소녀의 부모에게 도덕적 용서를 구하길 원했다. 내 혈육일지라도 타인의 용서를 대신 짊어지는 결심, 이는 지극히 시적이다. 하지만 이 아름다움을 행하기에 세상의 시선에 맞선 그녀가 가진 용기는 조금 부족했고, 결국 살아있는 이들의 입맛에 맞는 ‘합의’란 이름의 현실적 용서를 구한다. 이 음담패설적인 용서가 진행되는 와중에 피해자의 어머니는 자신을 향해 시적인 말들을 건네던 미자의 이 음담패설적, 현실적 행위에 원망 혹은 배신의 눈초리를 보낸다. 그리고 미자는 그 눈길을 외면한다. 어쩔 수 없이 더러운 세상 속을 꾸역꾸역 살아가는 미자도 사실 이 음담패설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었다.

이처럼 자신도 몰랐던 스스로의 음험함을 경험한 미자는 온전한 자신을 돌아보는데에 성공하고, 결국 시를 완성한다. 이 시는 자신의 내면 성찰을 통해 자아와 반대되는 ‘그림자’를 발견하며 분출된 진실성이다. ‘아네스의 노래’라는 제목을 가진 그녀의 시는 끝까지 자신의 동정을 지킨 성녀에 대한 찬사임과 동시에 죽어간 소녀에 대한 작별과 축복의 노래였다. 더불어 모든 번뇌를 끌어안고 있는 자신에게 주는 위로의 시였다. 따라서 이 시 속에서 그녀는 늙고 죽어가는 노인이 아니라 영원한 젊음을 안고 죽은 소녀로, 영원히 동정을 지킨 성녀 아네스로 변모한다. 이 모습은 지극히 숭고하다. 그렇게 숨겨진 음험한 내면을 회개함으로, 그 음험의 원인이 되었던 손자를 외면함으로, 지극한 현실의 번뇌를 깨침으로 그녀는 진정한 시인이 된다.

   
▲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시를 쓰는 미자

엔딩 씬에서 갑자기 묘연한 그녀의 행방은 확실한 대답 없이 추측으로만 남는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미자의 자취는 아주 먼 옛날의 시의 의미처럼 알 수가 없다. 그 의미에 대해서, 그녀의 행방에 대해서 왈가왈부하는 것은 다 모순이다. 미자가 쓴 시는 우리의 시가 아니기에, 그 결말의 의미는 오직 시인만이 알 수 있다. 하물며 우리는 시인조차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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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혁 기자
ziziyazizi@thearti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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