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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사랑을 위하여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신동혁 기자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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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포스터

[디아티스트매거진=신동혁]***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2003, 이누도 잇신)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의미를 알 수 없는 단어의 나열들, 이 영화는 시작도 전에 의문을 자아낸다.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걸까’. 그리고 영화는 이 질문에 대답이라도 하는 것처럼, 오프닝을 연다.

“한 겨울의 여행이었다.”라는 나레이션으로 시작하는 영화의 오프닝은 한기가 도는 풍경의 사진이 차례로 보여진다. 사진, 흘러가는 시간을 일순간 붙잡는 지극한 집착의 의미를 가진 이 오브제는 앞서 밝혀지는 나레이션을 통해서, 몇 해 전 겨울에 떠났던 여행에 대한, 그 여행을 함께 했던 ‘조제’라는 여인에 대한 그리움을 소묘한다.

잠깐의 숨을 고르고 시작한 서사는 ‘마작 게임 방’의 모습을 비춘다. 한참 게임을 즐기는 여러 손님들의 입에 한 꼬부랑 할머니가 오른다. 십 년 동안 아침이면 웬 유모차를 끌고 꼬부랑 꼬부랑 걸어 다니는 그녀의 유모차 속엔 무엇이 들었을까하는 궁금은 손주라는 당연스런 추측에서 보물, 돈, 마약까지 다양하게 펼쳐진다. 이렇듯 다양한 추측을 남긴 그 의문은 그러나 의외로 금세 해결된다. 그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알바생 ‘츠네오’의 퇴근길. 소문이 무성한 꼬부랑 할머니와 유모차가 마치 운명인듯 내리막을 한 달음에 굴러와 그의 앞에 나타난다. 그리고 그 유모차의 안에는 유모차를 타기에 조금 많이 큰 소녀 ‘쿠미코’가 들어있다. 귀여운 외모 뒤에 감춰진 움직이지 않는 다리, 여린 손에 들려진 칼과 그를 휘두르는 공격적인 태도는 유모차 안에서 답답하게 갇혀 지낸 만큼 쌓인 그녀의 외로움을 가늠할 수 있게 한다.

   
▲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이런 그녀의 지극한 외로움은 폭력을 낳았고, 그 폭력은 젊은 남자 츠네오를 집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쿠미코와 츠네오는 ‘밥’을 매개로 관계를 형성한다. 자취를 하는 츠네오에게 따스한 집 밥이 건네주는 안정감은 그 뒤로 그를 계속해서 쿠미코의 집으로 향하게 한다.

이후 그녀의 유모차는 앞선 궁금증을 지닌 많은 사람들에게 습격을 받는다. 장애를 가진 손녀를 감추기에 급급한 늙은 할머니는 쿠미코는 물론 스스로도 지킬 힘이 없었으므로, 쿠미코의 얼굴에는 언제나 상처가 가시지 않는다. 그 상처를 바라보는 츠네오는 “산책을 나가는 건 그만두지, 왜 산책을 나가는 거야?”라는 질문으로 걱정을 드러낸다. 그러자 쿠미코는 그 질문에 “꽃과 고양이를 보고 싶어.”라는 대답을 건넨다. 그녀가 꺼낸 꽃과 고양이에 대한 고백에 숨은 의미는 아마 ‘스스로’란 단어가 생략된 자유로운 다리를 향한 갈망이었을 것이고, 자신을 감추기에 바쁜 할머니의 억압에 대한 도주의 희망이었으리라. 그래서 그녀는 스스로 소설 속에서 너른 들판을 자유로이 뛰노는 ‘조제’의 이름을 스스로에게 명명한다. 하지만 이러한 희망을 실현하기엔 사회적 약자에 불과한 자신에게 사회는 언제나 위협이었다.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다리에 대한 좌절, 편견 어린 시선이 환기하는 불쾌는 그녀로 하여금 언제나 산책 시에 칼을 들고 나가게 했고, 여린 입술로 중국산 권총 토가레프를 갖고 싶단 말을 꺼내게 했다. 그리고 이 모습은 츠네오에게 쿠미코에 대한 동정과 애틋함의 감정 싹을 심었다.

   
▲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츠네오와 쿠미코는 한 눈에 보기에도 서로 판이하게 달랐다. 쿠미코는 움직일 수 없는 다리가 자유를 제약하였기에 한 겨울의 호숫가처럼 조용하고 정적이다. 반면 츠네오는 자유로이 움직이는 다리로 스스로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인다. 그가 쿠미코의 집으로 매번 찾아오는 까닭은 ‘밥’으로 대표되는 식욕을 채우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쿠미코의 집 바깥에서 그는 학교 동기 카나에와 노리코 사이를 왔다갔다하며 성욕을 해결한다. 정적인 여성과 동적인 남성. 서로의 차이는 아이러니하게도 결국 반대를 향한 필요로 드러난다. 정적인 여인은 억압과 장애에서 벗어나 움직임의 자유로움을 꿈꾸고, 동적인 남자는 쓸쓸히 고독한 자취 방에서 벗어나, 따스한 밥이 주는 안정스런 정지를 바랐다. 결여에의 충족. 이 필요의 소통은 서로를 향한 집착을 낳았고, 그러므로 그들은 함께 걸어가는 길을 단 한순간도 놓치지 않겠다는 집착성의 의지를 발현하며, 함께의 흔적은 시간과 공간의 소유물인 ‘사진’으로 고정된다.

쿠미코의 장애를 감추려고 했던 그녀의 할머니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고, 그녀는 일순간 세상을 향한 통로를 잃는다. 이제 그녀의 곁에 남은 건, 츠네오 뿐이다. 그렇게 쿠미코는 츠네오의, 츠네오는 쿠미코의 온전한 필요가 되었다. 이 필요는 그 동안 결핍되어 있던 것의 충족, 즉 상상계 영역에서 꿈꾸었던 결여의 회복을 의미한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이 결말이 보이는 듯 뻔한 이야기의 주연들이 그 사랑의 시작에 망설임이 없는 것은 서로가 서로의 전부가 되는 지극히 상징적이고 실재적인 합일의 가능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는 전적인 의지가 불가능한, 단지 상상적인 합일에만 그치는 여타 사랑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그래서 할머니의 죽음 이후에 찾아온 츠네오에게 “가버려”라고 외치던 쿠미코는 그에게 “여기 있어”라는 수줍은 고백을 건네고, 동시에 이 사랑의 완전함에 대한 가능성을 엿보았기에 이전까지 단 한 번도 열지 않았던 자신의 처녀를 츠네오에게 선사하며 상징계의 영역으로 입장한다.

   
▲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하지만 아쉽게도 그들이 바라던 완전한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 “너랑 세상에서 가장 야한 섹스를 할거야”라고 외치는 쿠미코의 발언이 현실이 될 수 없는 것처럼.

츠네오와 쿠미코가 서로 간의 사랑을 확인하고, 그로부터 1년 뒤. 서로의 모든 것을 사랑하던 둘은 ‘결혼’이란 현실의 큰 벽 앞에서 망설인다. 그리고 마치 그 벽에 가 닿지 않겠다는 의미인 것 마냥, 츠네오의 부모님에게 인사가던 길에 차를 돌려 둘은 바다로 향한다. 이내 도착한 바다에서 그들은 반짝거리는 물과 하늘에 설렌다. 하지만 오직 그것을 바라보기만 할 뿐 더 앞으로는 나아갈 수 없다. 츠네오의 등에 업혀 “저쪽, 저쪽”하고 외치며 손가락으로 방향을 가리키는 쿠미코, 하지만 츠네오는 그녀가 가리키는 방향을 잘 인지하지 못하고, 둘의 이상은 각각 다른 곳을 향한다. 온천 여관에서 자려는 츠네오와 ‘물고기의 성’이란 모텔에서 자고자 하는 떼를 쓰는 쿠미코의 모습처럼, 둘은 바라보는 방향이 달랐다.

반짝반짝 빛이 나는 침대 위에서 쿠미코는 담담히 고백한다. “나는 빛도 소리도 없는 심해에서 왔어” 이는 그녀가 왜 그토록 물고기를 찾아 헤맸는지에 대한 대답으로 다가온다. 거대한 바다의 형상으로 그녀의 앞을 가로막은 현실의 벽을 가로질러 가고 싶은 희망, 이는 바다에서 밀려오는 파도에 뒷걸음질 치는 츠네오와 함께 할 수 없는 ‘현실’의 은유로 작용한다. 이 현실을 바라보는 쿠미코는 “츠네오가 떠난다면 난 조개껍질처럼 해저를 굴러다니겠지”라며 혼자 남겨진 암울한 미래를 소묘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 뒤의 키스는 무디지만 날카롭게 아프다.

   
▲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그로부터 몇 달 뒤, 영원할 것처럼 시작했던 츠네오와 쿠미코의 사랑은 끝이 났다. 요란한 칼부림으로 시작했던 관계가 무색하게도 그들의 이별은 무척이나 담담했다. 짐을 정리하고 집을 나선 츠네오는 몇 걸음 가지 않고 ‘카나에’를 만난다. 한때 그와 함께 쾌락을 나눴던 그녀와의 재회는 반갑지만 그곳에서도 역시나 완전한 사랑의 가능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길 한복판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린다.

   
▲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더불어 혼자가 된 쿠미코가 어색하게도 혼자서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그 뒷모습은 왠지 쓸쓸하다. 매일 같이 2인분을 준비하던 식사도 이젠 1인분만 준비할 뿐이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생선 꼬리를 요리하는 그녀의 쓸쓸함에 다시 바다로 돌아가길 거부하는 인어공주의 향기가 나는 건 왜일까? 그녀에게 물거품이 되는 최후보다. 외롭게 혼자 살아가는 육지가 더욱 아프지는 않을까? 엔딩 씬에 사진처럼 고정되는 부엌의 모습은 흘러가는 시간에 대한 아쉬움의 집착이 엿보인다. 그 집착은 아마 아름답던 추억에서 조금씩 멀어지는 아쉬움이 배태한 반발이었으리라. 그리고 이제 까맣게 암전되는 화면은 감은 눈 안에 펼쳐지는 추억만큼 생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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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혁 기자
ziziyazizi@thearti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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