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도플갱어>
[ 디아티스트매거진=박유신] “당신의 삶이 예술이다.” THE ARTIST MAGAZINE
기안84 작가의 웹툰 <복학왕>을 보다가 박장대소를 했다. 학과 내 무존재감 복학생인 멸치가 자신의 이미지를 좀더 심플하고 패셔너블하게 바꾸어보고자 구매한 흰 셔츠와 검정색 슬랙스 패션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학생 식당에 들어서자 대여섯명이 넘는 학생들이 하나같이 모두 흰 셔츠에 검정색의 슬랙스를 입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 때, 멸치가 말하기를, “다 똑같잖아? 여기저기 모나미 볼펜들이! 이건..문방구냐?” ‘모나미룩’에 이어 연신 나를 웃게 만든 건 페이스북에 올라온 한 게시물. 이름하여 ‘요즘 유행하는 알약 패션’. 흰 티셔츠에 데님 반바지를 입은 여자 다섯명의 뒷모습이 찍힌 사진으로, 마치 언젠가 약국에서 처방받았던 알약 캡슐을 연상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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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안84 작가의 웹툰 <복학왕>에 등장한 ‘모나미 룩’은 무조건적인 유행의 수용을 유머러스하게 보여주고 있다. ⓒ웹툰 <복학왕> 캡쳐. | ||
가장 베이직한 아이템들 위주의 스타일링에도 불구하고 흰셔츠에 검정 면바지, 흰 티셔츠에 데님 팬츠는 유행이라는 이유로 순식간에 모나미 볼펜과 알약으로 웃음거리가 된 이 사태때문에 나 또한 옷을 입을 때 이를 의식하게 된다. 투박한 버클의 매력으로 신고 다니던 버켄스탁 샌들도 이제는 지하철을 타면 정말 민망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신고 다니는 ‘국민샌들’이 되어버렸다. 덕분에 나의 멀쩡한 버켄스탁 밀라노 샌들은 우리집 신발장에 고이고이 모셔지고있다는 점.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sns가 하나의 글로벌 트랜드로 자리잡으면서 사람들은 누구나 정보를 쉽게 얻고, 이를 바탕으로 하나의 유행이 순식간에 번져나가는 것 같다. 유명 여배우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립스틱 사진 하나로, 며칠 안에 전국에 있는 백화점과 면세점의 그 립스틱 제품이 품절되어버리는 것처럼. 또, 연예인 뿐만 아니라 수많은 팔로워를 보유하고있는 인스타그램 스타들의 게시물 밑에는 늘 ‘이거 어디 제품이에요?’ 라는 댓글들이 무수히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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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수진이 SNS에 올린 셀카로 입소문을 탄 입생로랑 루쥬 볼립떼 33호. ⓒ박수진 인스타그램 | ||
이렇게 ‘국민 OO’라는 수식어가 붙은 유행 상품들이 줄줄이 탄생하고 금방 또 잠잠한 파도속으로 사라지는 가운데 나는 종종 회의감을 느끼곤 한다. 쇼핑을 가서 옷을 고를때면 나도 모르게 어디선가 많이 본듯한 스타일의 옷들을 찾게된다. 화려한 패턴의 겐조 스냅백이 유행을 할 때 그것과 유사한 패턴의 보세 스냅백을 찾았고, 드라마 <신사의 품격>에서 김하늘이 신고 나온 웨지힐을 보고는 가격이 비교적 저렴한 SPA브랜드에서 비슷한 디자인과 색상의 웨지힐을 찾았고, 요즘은 밴드 혁오의 보컬 오혁의 빈티지하고 컬러풀한 패션을 보고 핑크색 캡모자를 비롯한 컬러 아이템을 찾고 있다. 현재 대중문화가 만들어내고 있는 트랜드에 영향을 받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나를 포함해서 다들 너도나도 요즘 이슈가 되는 이 캐릭터, 저 캐릭터 등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똑같은 스타일로 흉내내기에 바쁜 것 같다는 생각에 조금은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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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빈티지하고 개성있는 스타일로 주목받고 있는 혁오의 패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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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빈티지&복고 열풍을 불러일으킨 밴드 혁오의 패션 | ||
유행을 개성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면서 다니는 ‘자칭 패셔니스타’들은 길을 걸으면서 받는 사람들의 시선을 즐긴다. 방송에서 모 연예인이 착용하고 나와서 이미 품절된 옷과 악세서리를 풀 착장한 자신의 모습이 마치 스트릿 패션잡지에 실릴 것만 같은 개성 넘치는 패셔니스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모나미룩과 알약 패션과 다를 바 없는 ‘복사-붙여넣기’일뿐이다. 아마 이 사람의 옷장은 유행시즌이 지나면 플리마켓을 열어 모두 처분해야될 지경이 올 수도 있겠다.
반대로 유행을 따라가기보다는 오히려 유행을 거스르고, 이를 통해 또 다른 트랜드와 스타일을 창조하는 케이스들이 있다. 많고 많은 ‘리얼’ 트랜드세터들 중 내가 꼽은 최고의 1인은 바로 공효진. 그녀가 공항, 일상, 드라마 속에서 입는 옷과 악세서리들은 금세 완판이 되고, 카피 제품들까지 나올정도로 화제가 되곤 한다. 나도 예전에 드라마 <파스타>를 보고 빈티지한 귀마개와 야상을 사고, <최고의 사랑>을 보고 치렁치렁한 긴머리를 단발머리로 자르고, <괜찮아, 사랑이야>를 보고 노앙 반팔 티셔츠를 샀으니까. 물론 오래전부터 옷 잘 입는 연예인으로 명성이 자자한 그녀에게 무수히 많은 옷들이 협찬되었겠지만, 공효진은 유행하는 티셔츠 한 장이라도 자신만의 새로운 스타일로 믹스매치하는 감각이 있다. 남들이 베이지색 노앙 티셔츠에 무난한 블랙 팬츠를 매치한다면, 공효진은 연보라색 레이스 스커트를 매치함으로써, 트랜디한 상품 하나만이 빛을 발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입은 전체적인 하나의 룩 자체가 주목받는 다는 점이 공효진을 진정한 패셔니스타 반열에 올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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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드라마 프로듀사에서 공효진이 선보인 여러가지 초커 스타일링. | ||
입생로랑도 생전에 이런 말을 하지 않았던가. “Fashions fade, style is eternal.(유행은 사라지지만, 스타일은 영원하다.)” 평소엔 조금도 예쁘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아디다스 슈퍼스타 운동화가 사고 싶어지고, 몸에 착 감기는 스키니진만을 고집하다가 어느날 갑자기 와이드 팬츠에 눈을 뜨고, 고양이 방울로만 보였던 초커가 공효진 언니가 하고 나온 뒤부터 어딘지 모르게 스타일리시해보였다면 지금 당장 지갑을 열진 말자. 왜냐하면 지금 번잡하고 핫한 홍대 거리에는 레옹의 마틸다같은 짧은 단발머리에 와이드 팬츠를 입고, 아디다스 슈퍼스타를 신고, 검정색 초커를 목에 건 ‘패션 도플갱어’들이 난무하고 있을 게 뻔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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