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조우춘야(周春芽)는 독일산 셰퍼드를 선물 받았다. 작가는 개에게 헤이건(黑根)이란 이름을 지어주고 자식처럼 귀여워했다. 종일 붙어있다 보니 서로 바라보기만 해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개는 곧 그림의 중요한 소재가 되었다. 처음에는 본래 모습에 가깝게 그려졌지만, 1997년 어느 날 파격적인 털갈이를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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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绿狗>, 2004년, 200x250cm ©周春芽 | ||
좌우 2m가 넘는 커다란 캔버스 위에 초록색의 개가 자리하고 있다. 개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는 듯 편안한 모습이다. 헤벌린 입이나 벌겋게 드러낸 배가 눈에 들어오지만, 동물이라 그런지 야하게 느껴지진 않는다. 오히려 초록색과 붉은색의 대비가 그림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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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绿狗>, 2001년, 250x200cm ©周春芽 / <朱耷字画>, 八大三人,필자 편집 | ||
개는 정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금방이라도 움직일 것 같은 생동감이 있다. 이는 작가의 독특한 터치 덕분이다. 붓놀림의 힘과 속도, 대상의 동태, 촉감을 강조한 그림은 명나라 팔대산인(八大山人)의 화조화를 연상시킨다. 힘찬 붓놀림으로 그려진 초록 개에는 일반 회화에서 찾아보기 힘든 묵직한 부피감이 존재한다. 또한 형태의 간결성과 함축성, 배경의 과감한 생략 등에서 중국 전통화의 영향을 엿볼 수 있다.
조우춘야는 중국 전통화를 오랫동안 연구해왔으며 그 장점을 받아들이는데 거리낌이 없다. 그러나 작가는 전통화의 방식을 단순히 차용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변용한다. 서양과 동양, 유채와 수묵, 전통과 현대가 혼재된 그의 스타일을 어느 하나로 규정 짓기는 어렵다. 작가는 형식에 구애받기보다는 개인의 내밀한 심경을 표현하는데 집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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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绿狗>, 2005년, 100x80cm ©周春芽 | ||
초록 개는 애완견을 모델로 한 것이지만, 사랑스러운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그 모습은 야성적이고 본능에 충실한 늑대에 가깝다. 그러나 그림 곳곳에 드러난 동물의 원시적 욕망은 서정적이며 평온한 초록색으로 중화된다. 그 결과 초록 개는 그 본성을 완전히 드러내지 못한 애매한 상태로 남아있다.
거대한 사회 속에서 우리는 다양한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직업인으로서, 가족의 일원으로서, 친구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속마음은 숨겨지기 마련이다. 다른 사람이 원하는 이미지에 부합하기 위해 일종의 연기를 하는 셈이다. ‘타인은 곧 지옥이다‘라는 사르트르의 말처럼, 타인은 나의 실존을 확인시켜주지만 동시에 나의 본성을 억압하는 존재이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해야만 하는 우리는 고독하며, 폭발하는 내면의 욕망을 억제해야 하기에 불안하다.
본성과 욕망을 억누르고 살아가는 우리와 초록 개는 닮았다. 그림 속 개는 단순한 재현의 대상을 넘어, 폭발 직전의 욕망을 나타내는 상징이 된다. 작가는 사회적 역할과 개인 본성 간의 관계라는 무거운 주제를 그만의 독특한 미감으로 풀어낸 것이다. 그리고 그 개성이 독창적인 합리성과 당당함을 지니기에, 그의 작품은 오래도록 강렬한 시각적 잔영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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