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티스트매거진=한예령] 사람들이 음악을 좋아하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나에게 그 중의 하나를 꼽으라면 음악이 많은 이야기를 담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고 싶다. 음악은 말로 하기 어려운 이야기나 다 하지 못한 것들을 복잡하고 긴 수식어 대신 간단한 선율만으로도 상대방에게 전할 수 있다. 리듬과 선율에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감정을 담을 수도 있고 가사에 말하고자 하는 것을 실을 수도 있다. 음악을 듣는 사람도 많은 이야기로 답하지 않아도 음악 하나만으로 그 음악을 만든 사람과 소통할 수 있다. 영화 <러덜리스>의 샘도 말로는 하지 못했던 이야기였지만 음악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었다.
번듯한 광고 회사를 다니고 있던 샘은 아들 조쉬를 만나려고 하지만 조쉬가 약속 장소에 나오지 않아 만나지 못한다. 조쉬의 휴대폰에 메시지를 남기고 가게를 나오려던 샘의 눈길을 잡아 끈 것은 조쉬가 다니는 학교에서 총기 난사 사고가 있었다는 뉴스였다. 결국 그 일로 아들을 잃은 샘은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집에서도 나와 초라한 행색으로 보트에서 지내게 된다. 그러다 샘은 조쉬가 만든 노래들을 듣게 되고 조쉬와 음악으로 소통하던 때를 떠올리며 아들의 음악을 연주해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가끔씩 찾던 라이브 카페에서 그 곡 중의 하나를 부르게 된다. 샘이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유심히 보던 쿠엔틴은 샘에게 함께 밴드를 하자는 제안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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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질긴 쿠엔틴의 제안 끝에 러덜리스라는 이름으로 밴드를 시작한 샘은 아들 조쉬가 만든 곡으로 무대에 서고 많은 사람들의 열광을 이끌어 낸다. 하지만 조쉬의 여자친구였던 케이트의 등장으로 샘은 조쉬의 곡을 무대에 올리는 것에 대해 망설이게 되고 조쉬의 죽음과 관련하여 샘이 밴드 멤버들에게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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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조쉬의 죽음을 최소화로 담고 상당 부분을 샘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어 보여준다. 영화 속에서 샘은 쉽게 자신의 감정을 밖으로 내 보이지 않는다. 아들이 죽었다는 사실에도 샘이 보여 준 감정은 많이 절제된 것이었다. 또, 샘은 자신의 감정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려 하지도 않는다. 온전히 혼자 괴로워하고 슬퍼하며 괜찮은 척 스스로를 속인다. 그런 샘이 여러 감정을 표현하는 때가 음악을 할 때였다. 또, 아무런 열정도 없어 보이던 그의 눈동자가 유일하게 빛나는 때였고 다른 사람에게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는 그가 전하고자 하는 것들을 마음껏 표현하는 때이기도 했다. 라이브 카페에서 처음 무대에 오르기 전 떨리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 술의 힘을 빌리기도 했던 샘이었지만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말하지 못한 그가 여러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 바로 음악을 하는 때였다.
갑작스럽게 조쉬를 잃고 삶의 의욕을 모두 잃어버린 사람처럼 살아가던 샘이 음악에 반응했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이제는 어디에도 없는 조쉬를 추억할 수 있는 것이었고 뒤늦게나마 아들의 생각을 간접적으로 들어볼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이야기를 섣불리 말할 수 없고 위로를 받을 수도 없는 상황에서 음악은 샘 자신을 위로하는 것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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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마지막에서 샘이 홀로 무대에 올라 담담하게 불러 나가는 노래는 자신의 감정을 가장 잘 표현한 것이자 조쉬에게 이제껏 해 주지 못했던 말이었다. 그 전까지 조쉬의 죽음에 관한 모든 것을 외면하고 세상에서 숨으려고만 했던 샘이었지만 음악을 통해 그는 조금씩 세상 밖으로 발을 내딛고 있었다.
영화 속에서 샘은 많은 감정선을 보여주지 않았지만 음악을 통해 그가 표현하고자 했던 감정들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를 섣불리 위로할 수도, 비난할 수도 없었지만 한번도 온전히 표현하지 못했던 그의 이야기를 음악을 통해 알 수 있었다. Sing Along이라는 노래를 부르던 샘의 모습이 짙은 여운을 남기고 엔딩크레딧이 올라간 후에도 복잡한 감정이 물밀 듯 느껴졌던 영화 <러덜리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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