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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티스트매거진=문설연] 살인 범죄율 0%. 모든 수사 기관의 이상일 이 수치를 누구든 한 번쯤 꿈꾼다. 2054년 미국의 워싱턴 D. C.에서는 몇 년째 단 한 건의 살인 사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바로 범죄 예방 시스템 ‘프리크라임’덕분이다. 프리크라임은 인간의 능력과 최첨단 과학 기술의 결합으로 탄생한 시스템으로, 약물의 효과 때문에 늘 잠들어 있는 세 명의 예지자가 보여주는 영상을 분석해 살인 사건의 가해자와 피해자, 발생 시점을 알려준다. 수사관들이 예언 영상에 나타난 장소가 어디인지 알아내어 제 때에 용의자를 체포하기만 하면 임무 끝.
범죄예방국 수사팀장 존 앤더튼은 시스템에 대한 굳건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 평소 동료들에게 친절해 수사국 내에서 평판이 높은 존은 경보가 울리면 그 누구보다 열성적으로 살인이 일어날 장소에 대한 단서를 찾아내고 앞장서서 출동한다. 여느 날처럼 살인 예언 알람이 울리자, 존은 피해자와 가해자의 이름을 확인한다. 놀랍게도 가해자는 바로 존 앤더튼 자신이었고 피해자는 평생 들어보지도 못한 이였다. 쫓기는 신세가 된 존은 시스템의 개발자를 찾아가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 완전하고 절대적이라고 믿었던 시스템은 사실 효율성을 위해서 세 명의 예지자 중 하나의 예언 내용이 다를 경우, 그 예언을 무시하도록 설계되어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경우에도 하나의 다른 예언, 마이너리티 리포트가 존재할 거라고 확신한 존은 그것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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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보면 프리크라임은 안전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줄 수 있는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다. 앞날을 손바닥처럼 훤하게 들여다보고 권선징악을 실현한다는 점에서, 인간에게 신적인 능력을 부여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범죄를 미리 인지하고 범인을 잡아내면 애초에 그 범죄는 발생한 적이 없는 일이 된다. 0%의 신화는 이렇게 탄생했다. 문제는, 예측에 기초한 체포에 따르는 엄청난 모순이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 때문에 누군가를 범죄자라고 단정하여 신체와 정신을 구속시키는 것이 과연 정당한 절차일까? 이 시스템이 잡아낸 범죄자들 중 그 누구도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
흔히 운명은 바뀌기 위해 존재한다고들 한다. 수학적으로 정밀하게 계산된 기계와는 다르게 인간은 자신의 의지에 의하여 움직인다. 기본적으로 인간의 머릿속에는 찰나에도 수십 줄기의 생각이 스쳐지나가며 그에 따른 반응도 수백 가지가 될 수 있다. 모두는 각자 다른 동기에 따라서 다음 행동을 수행할 수 있는 자기결정권을 갖고 있다. 프리크라임은 수치로 계산될 수 있는 효율성을 위하여 측정할 수 없는 영역인 인간의 의지까지도 강제로 절대화시켰다. 그 결과 낮은 범죄율과 시스템의 전국 도입이라는 목표를 달성했지만 정당하지 못한 절차를 통해 얻어낸 성과는 결코 당당할 수 없다. 운영 원리를 투명하게 밝히지 못하고 모두를 속이기 시작한 시점에서부터 시스템은 정당성을 잃어버렸다. 모두가 안심하고 웃으며 뛰어놀 수 있는 안전하고 아름다운 거리는 효율성이 인간성보다 우선시되는 세상의 허상일 뿐이었던 것이다. 현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차가운 기계에 짓눌리고 심판당하는 디스토피아였다.
재미있게도, 그토록 범죄 예방에 열을 올리는 존에게서는 정의를 위한 사명감을 딱히 찾아볼 수 없었다. 범죄예방국장인 ‘프리크라임의 아버지’ 버지스와 돈독한 관계를 다지고 수사에 헌신하며 팀장의 자리에 올랐는데도 말이다. 사실 시스템에 대한 존의 신뢰는 개인적인 트라우마로부터 기인한다. 그의 아들은 실종되었다. 시스템이 도입되기 고작 얼마 전에. 시스템이 조금 더 일찍 사용되기 시작했더라면 아들을 살릴 수 있었으리라 생각했기에, 자신이 잠재적 가해자로 낙인찍히기 전까지는 시스템에 대해 쌀알만큼의 의심조차 품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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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은 시스템과 마찬가지로 결함과 모순을 지닌 인물이다. 완벽해보이지만 밤이 되면 뒷골목에서 마약을 구입하고 아들을 잃은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그렇기 때문에 무결해 보이는 시스템을 통한 수사에 집착적으로 매달린다. 존 자신은 깨닫지 못했지만 그에게 프리크라임 수사란 마약과 다를 바 없이 자신을 둘러싼 현실과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임시방편이었을 뿐이었다. 늘 같은 모습을 한 영상 속의 아들과 같은 대화를 반복하는 장면에서 알 수 있듯 시스템은 존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존이 시스템에서 벗어나 인간성을 되찾는 회복의 여정이라고 할 수 있다. 존을 구해줄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또 다른 예언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었다. 예언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흘러간 상황 속에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이는 오직 자신뿐이라는 것을 깨달은 존의 의지와 내재되어 있던 선이, 시스템의 희생양이 될 뻔 했던 그를 구원한다. 해결의 열쇠는 기계에 대한 의존이 아니라 인간적인 마음이었던 셈이다. 시스템의 신봉자였던 존이 직접 인간 의지의 우월성을 입증함으로서 프리크라임은 중지된다. 대의를 위한 고귀한 희생이라는 허울 아래에서 몇 년을 살아있지도 죽어있지도 않은 상태로 꼼짝없이 다른 이들의 미래를 바라보아야만 했던 예지자들도 비로소 이름을 되찾는다. 강제로 부여된 신의 자리에서 내려와 인간이 되었지만 그들은 오히려 행복했을 것이다. 다른 누군가 혹은 무엇을 위해서가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한 새로운 삶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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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가 마치 시작과 끝이 정해져 있는 게임처럼 정교하게 짜여 있다면 좋은 점도 있을 것이다. 지금 자신이 내리는 선택의 결과가 이미 결정되었음을 알기에 위험 부담을 덜 느끼는 삶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때로 덮쳐오는 고난에도 꿋꿋이 살아내는 이유가 무엇인가. 더 나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있기에, 바꿀 수 있는 미래에 대한 소망을 믿기에 모든 순간을 소중히 여길 수 있는 게 아닐까. 한 치 앞을 알 수 없지만 그렇게 불투명하며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더욱 신비하고 아름다운 것이 인간의 미래다.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이를 넘쳐나는 상상력과 뛰어난 연출력의 조합을 통해 세밀한 필치로 그려낸다. 각각의 장면은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긴박하고 생동감이 넘친다. 그리고 영화가 막을 내린 후 한 발 물러서서 바라보면, 촘촘하게 연결된 시퀀스들이 어느새 한 폭의 풍경화를 이루어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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