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티스트매거진=김성희] 요즘 사람들에게 ‘여행’은 가장 중요한 화두인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거나, 혹은 떠나고 싶어 하는 상태다. 여행을 떠나는 것, 그리고 떠나고 싶어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풍조가 되어가고 있는 듯하다. 특히 아름다운 풍경과 낭만이 있는 유럽은 많은 사람들의 로망인 여행지다.
여행 전 그곳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보고 가는 것도 꽤 괜찮은 여행의 방법 중 하나다. 유럽 여행 전 보고 가야 할 영화엔 아마 이 영화가 빠지지 않을 것이다. 바로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비포 선라이즈>다. <비포 선라이즈는> 오스트리아, 프랑스, 그리스 등 유럽을 배경으로 촬영한 <비포 시리즈>의 시작인 작품이다. 나는 비포 시리즈 세 작품을 모두 좋아하지만, 그 중에서도 이들의 첫 만남이 담겨있는 <비포 선라이즈>를 가장 좋아한다.
![]() |
||
| ▲ 기차에서 셀린을 설득하는 제시-영화 <비포 선라이즈>스틸컷 | ||
<비포 선라이즈>는 미국 남자 제시와 프랑스 여자 셀린이 우연히 기차에서 만나 함께 하루를 보내는 이야기다. 기차에서 제시를 만난 셀린은 제시의 귀여운 꼬드김에 함께 기차에서 내린다. 특별한 목적지가 있는 것도 아니다. 둘은 그저 발길 닿는 대로 오스트리아 빈의 곳곳을 걸어 다닐 뿐이다.
낭만적인 여행지에서의 로맨스를 기대한다면, 이 영화에 조금 실망하거나 영화를 지루하게 느낄지도 모른다. 영화는 내내 특별한 사건이 일어나거나 하지 않고, 제시와 셀린의 대화로만 흘러가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제시와 셀린은 일반적인 여행자도 아니다. 제시는 여자친구를 만나러 유럽까지 왔지만, 떨어져 있던 거리만큼 멀어진 그녀의 마음을 확인하고 돌아가는 중이었고, 셀린은 그저 학교로 돌아가기 위해 파리로 가고 있었을 뿐이었다. 오스트리아 빈이라는 낯선 도시에서 내린 그들이 그 도시의 낯선 여행자라 할 순 있지만,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여행과는 좀 다른 개념인 것이다.
![]() |
||
| ▲ 오스트리아 빈의 아름다운 풍경과 두사람-영화 <비포 선라이즈> 中 | ||
물론 낯선 도시, 낯선 사람, 그리고 주어진 하루뿐인 시간이 더욱 더 짜릿한 긴장감을 주고, 이야기를 더 낭만적으로 만들어 준 건 사실이다. 하지만 영화는 이들이 걸어 다니면서 하는 끝없는 대화, 제시와 셀린 이라는 사람에만 집중하고 있을 뿐이다. 이 영화의 매력은 여기에 있다. 빈의 풍경은 매우 아름답지만, 그들이 빈이라는 도시에 녹아 들었다기 보단, 빈의 아름다운 풍경이 그들의 이야기 속에 배경으로 잘 녹아 들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이다.
시작은 단순한 끌림 이었을 지라도, 제시와 셀린이 서로에게 빠지게 된 건 그런 솔직한 대화를 통해서였을 것이다. 마치 탁구공을 주고 받는 것처럼 호흡이 잘 맞는 대화, 그리고 그들 사이의 미묘한 감정은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들 마저 제시와 셀린에게 빠져들게 한다. 사실 그들의 이야기 자체는 어릴 때 할머니의 영혼을 본 이야기, 과거의 사랑 이야기 등 별 것 아닌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이런 다양한 주제로 끊임없이 얘기할 수 있는 누군가를, 과연 살면서 얼마나 만날 수 있을까. 다른 사람이라면 얘기하기 부끄러울 나의 이상한 얘기들을 진심으로 들어주고, 나 역시 그 사람의 이야기에 공감해줄 수 있는 그런 사람 말이다. 우연히 그런 사람을 만나 아름다운 도시에서 사랑에 빠지는 것, 그건 너무나 완벽한 판타지다.
![]() |
||
| ▲ 두사람의 미묘한 감정이 느껴지는 레코드샵 장면-영화 <비포선라이즈> 中 | ||
사실 요즘 같은 세상에 셀린의 행동은 정말 무모하다고 할 수 있다. 방금 기차에서 만난 남자와 낯선 도시에서 덜컥 내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현실은 <비포 선라이즈>보단 <테이큰>에 더 가까울 지도 모른다. 만약 나에게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나는 그 모든 부정적인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무모해질 수 있을까. 모든 시작엔 어느 정도의 무모함이 필요한 법, 제시와 셀린의 용기가 있었기에 그들의 이야기는 다음페이지로 넘어갈 수 있었다. 언제든 기차에서 내릴 수 있는 용기, 그 용기가 바로 판타지의 시작이 아닐까.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