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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빈 윌리엄스 1주기] 삶을 위한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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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티스트매거진=문설연] <죽은 시인의 사회>는 나의 고등학교 생활을 떠오르게 하는 부분이 참 많았다. 하나부터 열까지 규율로 정해진 생활, 시험기간이면 전혀 흥미가 없는 과목의 교과서를 밤늦게까지 붙들고 있어야 했던 기억, 선생님들과의 마찰. 나 또한 기숙사 생활을 했기에 말 그대로 온종일 학교에서 산다는 것이 어떤 일인지를 잘 알고 있다. 오죽하면 자신의 학교를 지옥이라고 부를까.

하지만 닐의 죽음 전까지 <죽은 시인의 사회>의 학교는 오히려 평온하고 활기가 넘쳐 보인다. 얼핏 보면 학생들은 자신의 의지로, 정말 공부를 좋아해서 학업에 매진하는 듯하다. 저녁에 라틴어와 삼각함수 스터디를 하자는 제안이 자연스럽게 여겨지고 그에 하나같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친구들이라니, 누가 봐도 억지로 학교에 앉아 있던 우리 고등학교 학생들로는 상상할 수조차 없는 장면 아닌가. 영화의 초반에 닐뿐만 아니라 녹스와 찰스도 부모님의 뜻에 따르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 있긴 하지만 그다지 심각하지 않게 마무리된다.
 

   
 

그러나 이는 가장된 평화였음을 영화가 후반부에 치달을수록 극명히 알 수 있다. 아이들은 억눌려있던 생각을 깨워나가기 시작함과 동시에, 이전까지는 당연하게 여겼던 부당함을 의식하게 된다. 그러나 아버지에게서 벗어나려는 닐의 첫 시도는 물거품이 되고, 좌절한 닐이 죽음을 택하면서 학교의 추악한 모습이 드러난다. 어쩌면 이전까지는 아이들에게 <죽은 시인의 사회>는 일종의 놀이였을지도 모른다. 금기를 깸으로써 발생하는 모종의 쾌감과 짜릿함을 얻을 수 있고, 파이프를 피우며 때로는 진지하게, 때로는 장난스럽게 시를 읊어내려 잠시라도 현실의 압박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통로 말이다. 닐의 죽음을 통해 비로소 아이들은 자신들을 둘러싼 현실의 무게를 느낀다. 또한 ‘Carpe Diem’이 정말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죽은 시인의 사회>의 괴짜 선생 존 키팅의 첫 수업은 교실이 아니라 학교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이른바 기록의 방에서 진행된다. 다들 한 번쯤은 들렀을 그 방에서, 키팅이 학생들에게 주목하라고 시킨 것은 번쩍거리는 트로피나 상장이 아니다. 전까지 누구도 자세히 들여다본 적이 없을 평범한 흑백 사진 안의 인물들 하나하나의 눈빛이다. 그저 흘러간 시대의 인물들로 치부되었을 사진의 인물들은 키팅을 통해 유리벽 건너편에 서 있는 학생들 자신의 모습으로 환원된다. 자기의 다른 모습 앞에서 학생들은 기시감과 아우라를 느끼고, 그 오싹함은 키팅의 메시지―인간은 누구나 죽으며, 어떤 야심과 꿈이 있건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앞선 시대의 죽은 이들은 살아있는 자들에게 이야기한다. 현재를 살아라―로 한층 심해진다. 사진 속에 한 줄기 불꽃같은 우연, 여기와 지금, 현실이 그것을 가지고 이미지적 성격을 마치 완전히 태워버린 것 같은 그런 여기와 지금을 찾고, 오래전에 흘러간 순간의 그와 같은 모습 속에 미래의 것이 오늘날에도 깃들어 있는 장소1)를 찾던 학생들은 본인들이 발을 디디고 있는 바로 그 곳임을 알게 된다.

키팅의 다음 수업들도 웰튼 학교의 네 가지 교훈인 전통, 명예, 규율, 최고와는 한참 거리가 멀다. 시를 과학 실험하듯 x축과 y축으로 분석한 뒤 그 곱의 면적으로 시의 우수성을 판단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프리처드의 서문은 사정없이 찢겨 휴지조각이 된다. 사물을 다른 각도에서 보는 법을 배우기 위해 책상 위에 올라서고, 들판에 나가 시를 읊은 다음 공을 차기도 한다. 매 시간을 대학 진학을 위한 준비 과정으로 보는 대신 하나의 온전하고 독립된 영어 수업이라고 생각하는 그의 카르페 디엠 철학이 반영된 수업이다. 웰튼 학교는 그 존재 목적 자체가 대학 입시이기 때문에 수업 방식은 물론 기저에 자리 잡은 철학 또한 무척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처음에는 다소 낯설어하고, 이상하게 생각하던 학생들은 점점 키팅의 이야기를 받아들이게 되며 더 나아가서 각자의 방식으로 실천하기 시작한다.
 

   
 

녹스가 거듭된 거절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크리스에게 사랑한다고 이야기한 끝에 데이트를 즐기고 닐은 갈망하던 연극 오디션에서 주연 자리를 따내는 등 보기만 해도 즐거운 장면이 이어진다. 카르페 디엠이 마치 마법의 주문처럼 삶을 변화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자기 의사 표현에 서투르던 토드는 감정에 솔직해지면서 친구들과도 스스럼없는 사이가 되었다. 아이들은 자신들에게 찾아온 변화를 마음껏 즐긴다. 현재에, 자기 자신의 시에 충실하라니 그 얼마나 재미있는 삶인가.

문제는 아이들의 외부 환경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시작되었다. 닐의 아버지는 아들이 연극을 한다는 사실을 알자 불같이 화를 낸다. 키팅의 충고를 들은 닐은 아버지에게 자신이 얼마나 연극을 하고 싶어 하는지를 용기 내어 이야기하고 허락을 얻어낸다. 학교 공부에 충실하겠다는 말도 빠지지 않았고 닐은 성공적으로 첫 연극을 마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도저히 용납이 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다음날 당장 군사사관학교로 전학시키겠다는 선언을 들은 닐은 처음이자 마지막 연극이 끝난 바로 그 날 밤, 거짓말처럼 자살을 선택한다.

다른 결말이 나오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했을까. 교장의 말마따나 키팅이 학생들에게 프리처드를 가르쳐야 했을까? 확실한 것은, 키팅이 전임자와 다를 것 없는 교사였다면 닐이 죽지 않았을 거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 명제의 역은 성립하지 않는다. 즉, 키팅이 닐의 죽음에 일조했음을 의미하는 것이 전혀 아니다. 오히려 키팅은 닐에게 삶을 되돌려주었다. 처음에 닐은 숨 막히는 아버지의 훈계에도 별다른 말을 꺼내지 않고 순응하는 모습이었다. 동아리 활동처럼 사소한 부분에까지도 간섭을 받지만 그를 당연하게 여긴다. 자신의 인생이 아니라 아버지의 인생을 살고 있던 셈이다. ‘살다’보다는 ‘살아지다’라는 단어가 어울릴 정도로 당시의 닐은 수동적이었다. 과연 그를 진정한 삶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러다가 키팅을 만나면서 삶을 의미 있게 살기 위해, 삶의 정수를 빨아들이기 위해 정신적 독립을 위한 첫 걸음을 뗀다. 하나의 주체적인 인간으로서의 닐은 갓 태어나자마자 죽어 버린 것이다.

물론 닐도 완전무결하다고 할 수는 없다. 문제가 된 그날 밤 닐은 아버지에게 자신의 감정을 설명하기를 지레 포기한다. 모든 것을 바칠 정도로 원하는 것을 얻고 싶었다면 한 번 더 이야기를 시도해봐야 했다. 아예 놓아버릴 것이 아니라, 친구들에게 해주었던 것처럼 자신을 다독이고 격려할 필요도 있었다. 한편으로는, 너의 망할 감정에 대해 좀 이야기해보라는 아버지의 다그침에 입을 닫아버린 닐이 이해가 된다. 나 역시 더 가고 싶은 대학교가 있었고 엄마의 극렬한 반대에 부딪혀 실패했다. 엄마는 그 학과를 나와서 어디에 가겠냐고 소리를 질렀다. 하고 싶은 게 있다는 대답에, 그럼 대체 그게 뭔지 말해보라고 대답을 요구하는 엄마에게 선뜻 입을 열 수 없었다. 거짓말을 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나는 정말 그 학과를 간 다음 하고 싶은 일이 뚜렷했고, 여러 가능성을 탐색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사리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전에 이미 이야기를 했다가 무시당한 경험이 있고 엄마가 그에 대해 뭐라고 반박할지가 뻔했기 때문이다. 평소에 다른 애들과 비교했을 때 자유롭게 자라게 두신 엄마였는데도 그랬다. 하물며 자신의 생애 전체를 쥐고 흔든 아버지였으니 오죽했을 것이다.
 

   
 

키팅이 아이들에게 가르치고자 했던 것은 생각하는 방법, 행동하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동료 선생님들과 부모들은 그 목표를 비웃는다. 생각하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이 근거 없는 편견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기에 아무런 죄책감 없이 아이들의 삶에 그토록 속속들이 간섭할 수 있었다. 생각하기에 어리고 많은 나이가 어디에 있는가. 스무 살이 된다고 해서 어느 날 아침 갑자기 사유하는 능력이 생기지 않고, 더 나이가 많은 사람의 생각이 항상 옳은 것도 아닌 것을. 닐의 아버지는 아이를 자신의 대리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전형이다.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가시 같은 말이 쏟아지는 중에 가장 아프게 다가온 대사는 ‘너는 내가 갖지도 못한 기회를 가졌어!’이었다. 기회라는 건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의미로 적용되는 단어가 아니다. 무언가를 원하는 사람에게 그것을 얻을 수 있는 수단이 생기면 기회라고 할 수 있지만,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에게 다가온 수단은 기회라고 할 수 없다. 닐은 가족이 원하는 직업을 가질 수 있는 기회는 가졌지만, 자신이 열망하는 기회는 가질 수 없었다.

부모가, 그리고 교사가 아이를 교육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살다’와 ‘살아지다’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배움’과 ‘주입’에도 차이가 있다. 학생들이 키팅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가고, ‘Oh captain, my captain’이라고 부를 수 있었던 이유는 키팅이 전자의 길을 활짝 열어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대부분의 학생에게 처음이었을 그 길, 자신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에서 함께 깨닫는 지식의 아름다움을 말이다. 어떻게 인간의 삶에 전통, 명예, 규율, 최고만 있겠는가. 자연스럽고 적극적인 삶이라면 당연히 익살, 공포, 타락, 배설이 있기 마련이다. 뭐든지 잘해서 탄탄대로를 걷기만 하는 주인공이 나오는 드라마는 아무도 보려고 하지 않는다. 자신의 길을 선택하고 그 선택에 책임을 지기 위해서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장하는 것이 인생의 의의다. 건강한 익살과 공포, 타락, 배설은 잘못된 전통과 규율의 강조보다 훨씬 바람직하다.

아무리 아는 것이 많아도 실천으로 옮기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마찬가지로, 머릿속에 제아무리 깊고 넓은 지식이 담겨있다고 해도 그 지식 하나 하나에 자신의 가치가 담기지 않으면 백과사전보다 못하다. 키팅이 다른 교사들의 눈총을 받아가면서 아이들에게 알려주고자 했던 것이 바로 자신의 의미 체계를 엮어나가는 방법이었다. 이미 또래보다 훨씬 높은 지식수준에 도달한 아이들이 보다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돕기 위함이었다. 키팅은 좁은 학교를 넘어서 세상 안에서의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했다.
 

   
 

아이들은 마냥 어리고 보살핌이 필요한 인형이 아니다. 믿음을 주면 충분히 자유롭게 생각을 펼쳐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인격체다. 부모의 대리인도, 학교의 대리인도, 사회의 대리인도 아닌 개별적인 ‘나’라는 존재가 우선한다. 누군가의 목적을 대신 이루어주기 위해 태어난 사람은 없다. 외모와 성격, 재능이 모두 다르게 태어나는 이유가 따로 있지 않다. 모든 사람에게는 각자 자신의 목표를 찾아낸 다음 그것을 실현하고자 하는 본성이 있다.

뮤지컬 <모차르트!>의 곡 중에 ‘황금별’이라는 노래가 있다. 더 넓은 세상을 찾아 빈으로 가고 싶어하는 모차르트를 말리는 아버지 레오폴트를 설득하기 위해 후원자 남작 부인이 부르는 곡이다. ‘황금별’의 가사는 이렇다.

아주 먼 옛날에 한 왕이 아들과 함께 살았다네
세상을 두려워하면서
늘 왕자 걱정에 잠들 수가 없었지
성벽을 높이고 문도 굳게 닫았네
어느 날 바람결에 실려온 그리움
혼자 있는 왕자에게 속삭였네
북두칠성 빛나는 밤에 하늘을 봐 황금별이 떨어질 거야
황금별을 찾기 원하면 그 별을 찾아 떠나야 해
널 기다리는 세상을 향해

사랑이란 구속하지 않는 것
사랑은 자유롭게 놓아주는 것
때로는 아픔도 감수해야 해
사랑은 눈물 그것이 사랑

황금별이 떨어질 때면 세상을 향해서 여행을 떠나야 해
북두칠성 빛나는 밤에 저 높은 성벽을 넘어서
아무도 가보지 못한 그 곳으로
저 세상을 향해서 날아봐
날아올라

 

   
 

닐은 죽었고, 누완다는 퇴학당했으며 키팅은 떠났다. 과연 키팅과 죽은 시인의 사회는 극중극의 제목처럼 한여름밤의 꿈이었을까? 그렇지 않다. 단단한 외피를 깨고 나오는 과정의 험난함을 겪은 아이들은 부유한 사립학교 밖의 세상을 알게 되었다. 세상이 더 이상 자신들을 위한 안락한 울타리가 아님을 깨달은 아이들의 삶은 절대 이전과 같을 수 없을 것이다. 잔잔하던 수면 같던 아이들의 삶에 돌을 던진 키팅 자신도 갑갑한 웰튼의 우수한 졸업생이었다. 마찬가지로, 비록 죽은 시인의 사회는 발각되어 사라졌으나 그 정신은 잊히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최소한 자신들의 전 세대보다는 더 나은 어른이 될 것이다.

그러니 시간이 있을 때 장미 봉우리를 거두라, 피지 못한 채 죽지 않도록.2)

1) 발터 벤야민,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사진의 작은 역사 외』, 최성만 옮김, 도서출판 길, 2007, 159쪽
2) ‘Lest we die, unbloomed’ 영화 <Kill Your Darlings>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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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설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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