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티스트 매거진=서유진] 유럽여행의 시작을 알리는 첫 도시였던 런던에서의 나날들이 숨 가쁘게 지나가고 어느덧 마지막 날이 되었다. 저녁에 있을 뮤지컬 관람을 제외하고는 딱히 계획이 없었던 나는 일단 코벤트 가든으로 가서 식사를 하고 트라팔가 광장, 피카딜리 서커스 근처를 구경할 예정이었다. 오늘이 런던에서의 마지막 날이었기 때문에 남은 파운드를 처리하기 위해 커피도 한 잔 사서 코벤트 가든을 쭉 돌아다니는 중, 빨간 조끼의 남자를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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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www.bigissue.com | ||
‘응? 빅이슈가 왜 여기에..? ’라는 생각도 잠깐. 맞다, 빅이슈는 런던이 원조였지. 나 지금 빅이슈의 고향에 와있는 거구나!
빅이슈는 1991년 11월 런던에서 처음 출간되어 현재 37개국에서 발행되고 있는, 노숙자들의 자립을 돕는 잡지이다. 한국에서도 <빅이슈 코리아>가 2010년 7월 창간호를 발행한 것을 시작으로 아시아에서 세 번째로 잡지발간이 계속되고 있다. 허가를 받고 정식으로 등록된 홈리스만이 이 잡지의 판매원이 될 수 있으며 런던에서는 ‘vendor’, 우리나라에서는 ‘빅판’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사진 속 홈리스가 입고 있는 빨간 조끼는 빅이슈 판매원임을 나타내는 상징이기도 하다.
나는 빅이슈를 구매한 경험도 몇 번 있었고, 발표 동아리에서 빅이슈를 주제로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했을 만큼 평소에 빅이슈에 대한 관심이 많은 편이었다. 그런 나의 눈앞에 런던의 vendor가 빨간 조끼를 입고 빅이슈를 팔고 있다니! 이건 꼭 사야만 했다. 하지만 내일 새벽 런던을 떠나는 나에게 남은 돈은 0.5파운드, 런던의 빅이슈 가격은 2.5파운드. 혹시나 해서 물어봤지만 역시나 당연하게도 현금만 가능.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그를 지나쳐 트라팔가 광장으로 갔다. 멍하니 앉아 커피를 마시는데 계속 아까 보았던 vendor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결국 피카딜리 서커스역으로 가 오이스터카드의 보증금을 환급받아 현금 5파운드를 수중에 넣었고, 다시 코벤트 가든으로 되돌아갔다.
그런데 내가 아까 보았던 그 빨간 조끼의 아저씨는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한 번 의식하고 나니 주변에 vendor들이 굉장히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왕이면 맨 처음에 보았던 그 아저씨에게 사고 싶어 몇 바퀴를 돌았지만 결국 찾을 수 없었고 근처에 있던 다른 아저씨에게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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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벤트가든에서 만난 vendor아저씨 | ||
선한 인상의 아저씨는 동양인 여자아이가 잡지에 관심을 보이며 먼저 말을 걸자 조금은 의아해하셨다. 하지만 내가 한국에서 왔고, 한국에도 빅이슈가 있으며 구매 경험도 있다고 말하자 너무나 반가워하셨다. 일본에 빅이슈가 있는 건 알았지만 한국에까지 생긴 것은 모르고 계셨다고 하시면서 잡지를 건네주셨다. 빨간 조끼는 입고 계시지 않았지만, 목에 걸고 있는 초록색 ID카드가 빅이슈 정식 판매원이라는 상징이라며 꼭 확인해야 한다고 하셨다. 잡지를 구매하고 사진을 찍고 싶다고 하자 흔쾌히 허락을 해주셨고, “Good luck to you!”를 외치며 짧았지만 강렬했던 만남에 작별을 고했다.
빅이슈는 단순히 경제적인 지원만으로는 홈리스들에게 제대로 된 도움을 줄 수 없다는 인식에서 출발한 잡지이다. 따라서 그들에게 빅이슈 판매원이라는 정식 직업을 주고 오직 그들을 통해서만 잡지를 구입할 수 있게 하고, 판매 가격의 일정 부분을 가져갈 수 있게 함으로써 스스로 자립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런던에서는 매주 월요일마다 빅이슈를 발행하며 가격은 2.5파운드이고, 한국에서는 매달 1일, 15일 두 차례에 걸쳐 발간하며 가격은 5000원이다. 현재 런던과 한국 모두 잡지가격의 50%가 빅이슈 판매원에게 돌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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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산 잡지는 2015년 6월 8일부터 14일까지 발간되는, bob dylan이 표지모델인 1157호이다. | ||
아저씨와 헤어지고 다시 트라팔가 광장으로 돌아가면서 앞으로의 일정을 생각했다. 뮤지컬이 끝나는 시간은 대략 10시 반, 극장에서 숙소까지는 도보로 약 40여 분. 내 손안에 있는 오이스터 카드는 더 이상 무용지물, 남은 건 내 튼튼한 두 다리. 좋아, 숙소까지 쿨하게 걸어가기로 결정했다. 비록 다리는 아플지언정 마음이 행복한데 무슨 상관인가!
유럽여행을 다니다보면 거지들을 참 많이 볼 수 있다. 그들은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고 있으며 축 처진 목소리로 please, help 등의 단어들을 나지막이 읊조릴 뿐이다. 이들은 구걸을 하며 일방적인 원조를 요청하지만, 빅이슈 판매원들은 자립의 의지를 가지고 일을 하며 잡지를 판매한다. 스스로 일어서고자하는 사람에게 상품을 구매하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자립에 보탬이 된다니, 구매자에게도 참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는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런던에 가면 지하철역, 공원, 광장 근처 등 다양한 곳에서 빨간 조끼를 입고 있거나 초록색 ID 카드를 목에 걸고 있는 빅이슈 판매원 vendor들을 만날 수 있다. 유럽여행을 꿈꾸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런던을 루트에 넣을 것이고, 코벤트가든을 한 번 쯤을 방문하게 될 것이다. 그곳에서 2.5파운드를 내고 그 이상의 가치를 돌려받을 수 있는 진귀한 경험을 해보기를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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