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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케인, 촬영기법으로 탐구하는 현대인의 ‘본질’

염인화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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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손 웰즈 감독의 <시민 케인 Citizen Kane(1941)>은 ‘역대 위대한 미국 영화’ 1위에 선정된, 영화사적으로 중요한 작품이다. 영화의 시사점과 주인공의 이야기가 직접적으로 서술되기보다 다양한 촬영기법으로 묘사되는 것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인데, 이 기법들은 후대 영화에 큰 영향을 미친다.

   

영화의 첫 장면은 설경 속 한 고풍스러운 저택을 원거리에서부터 서서히 줌인하는 ‘딥포커스(deep focus)기법’으로 시작한다. 풍경인 줄 알았던 이 장면은 죽음을 앞둔 주인공 케인이 쥐고 있는 스노우볼 속의 미니어처 조각물과 정확히 일치하며 ‘오버랩(overlap)’된다. 이윽고 그는 영문 모를 단어 “로즈버드(rosebud)”를 유언처럼 읊조리며 생을 마감하고, 그 순간 스노우볼은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난다. 그의 마지막 순간을 결정화시킨 스노우볼이라는 오브제와 “로즈버드”라는 대사는 케인에 매캐한 동정심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중요한 장치들이다.

   
 

힘겨운 어린 시절을 이겨내고 미디어 거물로 살며 신문 1면지를 화려하게 장식해온 케인은 사후에도 사람들의 궁금증을 자극한다. 이 때, 스노우볼과 로즈버드라는 두 결정핵을 그의 죽음에 대한 중요한 단서로 여긴 어느 기민한 기자는 케인의 ‘본질’을 알아내고자 케인를 회고하는 5명과 인터뷰를 한다. 그들의 과거 회상장면은 일명 ‘플래시백(flashback)’으로 표현되는데, 이는 현실의 씬이 과거로 오버랩되며 넘어가 일정 시간동안 과거의 기억을 드러내는 한 기법이다.

기자의 인터뷰 질문이나 그가 수집한 문서자료 내용을 기준으로 영화는 과거와 현실을 오가고, 케인에 대한 사람들의 기억들을 보여준다. 기자는 마치 깨진 스노우볼같이 잘게 조각난 기억의 단편들을 맞추기 위해 애써보지만 늘 실패하고 만다. 그도 그럴 것이, 기자가 케인을 알기위해 접근했던 5명의 사람들은 객관적인 정보가 아닌, 그저 머릿 속에 떠도는 이미지들만을 전하기 때문이다. 기자라는 제 3자의 개입으로 유도된 플래시백들은 노화나 건망증, 그로 인한 기억의 상실, 왜곡 등에 자연스레 노출되어있는 것이다. 때문에 진실을 논하기에는 다분히 논란의 여지가 있고 의심할만하다.

오손 웰즈 감독은 기억의 허점을 강조하기 위해 독특한 기법을 사용한다. 그는 케인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던 갈등을 1인칭 시점에서 연대기적으로 설명하기 보다는, 사건에 관련된 인물들 각각의 입장을 한 ‘플랑(Plan)’에 동시에 담아낸다. 플랑Plan은 카메라가 켜졌다 꺼지기까지의 시간을 뜻하는 ‘샷(Shot)’의 불어 표현으로, 단순한 2차원적 평면감이 수평적으로 보여지는 미국영화의 샷 개념과는 달리, 3차원적 깊이감까지 담아내어 모종의 미학성까지 띈다.

   

예컨대, 케인의 어린시절을 설명하는 어느 플래시백 장면에서는 딥포커스로 잡힌 원경으로부터 초점이 확장되어 중경과 근경까지 ‘롱테이크 샷(long-take shot)’으로 한번에 잡힌다. 저 멀리 창밖에는 집 앞에 쌓인 눈을 보며 마냥 좋아하는 순진무구한 소년 케인이 있고, 근경에 잡힌 집 안에는 방금 막 그를 입양보낼 결정을 내린 어머니의 내러티브가 담겨있다. 원근법적 시점 이동에 따라 흐르는 시간 속에서 각기 다른 장면과 화자가 설정되는 것이다.

보여지는 장면들과 인물들 사이의 화해될 수 없는 간극은 보는 이로 하여금 이 모든 걸 총체적으로 이해하기 보다는 선택적으로 정보를 취하게 만든다. 특정 순간이나 화자에 자신의 시각을 고정시킴으로써 말그대로 ‘고정관념’을 형성하게 것이다. 때문에 기자는 케인에 대한 정보를 수집할수록 첩첩이 쌓이는 편견들을 직면하게된다. 그리고 더 많은 의문을 갖게 된다. 애초에 그 역시도 케인의 본질을 파악하기엔 불충분한, 제 3자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영화 속 그 누구도 케인을 제대로 이해하기는 커녕, ‘순수하게’ 기억하지조차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점에서 관객은 생전에 수차례 스캔들을 일으켰던 케인에 대해 경멸감 보다는 묘한 동정심을 느끼게 되고, 그의 ‘비하인드 스토리’에 대한 궁금증은 자연스레 증폭한다. 

   

감독은 인간 기억력의 한계와 그것의 비본질성 내지는 허무성에 대해 질문 던진다. 영화의 끝 부분에서 케인을 거울에 무한대로 반사되어 다각도의 이미지를 내비치며 쓸쓸히 걸어가는 모습으로 연출한 것은 작품이 시사하는 모든 것을 말해준다. 요컨대 우리는 어느 대상을 기억해낼 때 거울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존재가되어 오직 그 대상의 일면만을, 그것도 다분히 왜곡된 상태로 비춰낼 뿐인 것이다. 영화 속 일그러진 천장의 형상은 기억 속의 시각적 정보가 얼마나 환영적인 것인지를 보여준다. 결과적으로 타자화된 이미지를 제거한 케인의 본질은 오직 케인 본인만이 알 수 있는 것이다.

아니, 케인 스스로도 그의 본질을 알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오직 겉모습만을 혼란스럽게 반영하는 거울들에 둘러쌓인 사람은 자신의 온전한 정체성을 파악하기 힘들다. 타인의 머릿속에 각인된 기억들은 당사자의 그것보다 완전하지도 순수하지도 않을 뿐더러, 그러한 기억들이 개인의 언어로 표현되는 순간 더더욱 왜곡되기만 한다.

   
 

타인의 시선과 언어로 점철된 어느 자아의 본질적 존립불가능성. 그로부터 추측되는 우리의 인식 체계 불완전성을 묘사하는 데에 있어, 영화는 결코 인물의 대사나 사건의 정돈된 흐름을 빌려 ‘직설적으로’ 서술하지 않는다. 비단 케인이라는 다사다난한 인물뿐만 아니라 그 못지 않게 복잡한 관계망에 얽혀있는 현대인을 그려내는 데에 있어 그러한 단편적인 서사방식이 얼마나 무의미한지 감독은 이미 인지했을 터이다. 따라서 그는 두뇌작용의 한계를 극복해야만 볼 수 있는 결정화된crystallized 순간들을 담기 위해 ‘직관적으로’ 케인을 그려내는, 전례없는 촬영기법들을 시도한 것이다. 

그로써 <시민 케인>은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영원히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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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인화
charlottom@thearti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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