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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처 : 네이버 영화 <러덜리스>메인 포스터 | ||
[디아티스트 매거진=김여은]<비긴어게인>, <위플래쉬>를 잇는 음악영화라는 포스터의 설명에 단순히 아버지가 더 이상 노래를 할 수 없는 상황인 아들을 대신해서 노래해주는, 단지 음악으로 우리에게 감동만을 주는 영화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놀라울 정도로 복잡하고 무거운 주제를 가지고 있었다.
이 영화의 주인공 샘은 아들의 노래를 대신해서 부른다. 그는 자신의 과거사를 밝히지 않고 완전히 새로운 사람처럼 살아간다. 2년전, 대학생이면서 노래를 만들던 그의 아들 조쉬는 자신의 학교에서 6명을 총으로 쏴 죽이고 자살했다. 그의 아들은 살인마였다. 사람들은 가해자의 입장을 크게 고려해주지 않는다. 물론, 가해자가 벌인, 입에 담기도 끔찍한 이 행동은 잘못한 것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가해자의 입장도 조금은 생각해보자’라고 조심스럽게 얘기하는 듯 이 영화는 너무나도 복잡하고 안타까운 내용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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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처: 네이버 영화 <러덜리스> 스틸 이미지 | ||
조쉬로 인해 그의 주변인물들의 삶은 완전히 망가진다. 조쉬의 아빠, 샘은 잘 나가던 자신의 직업을 버리고, 요트에서 거주하며, 페인트칠로 하루를 벌어먹고 산다. 그는 조쉬의 존재를 잊어버린 척하고 도망간다. 자기 자신의 삶이 자유롭고 근사하다는 착각에 빠진 것처럼 보인다. 그의 전 아내이자 조쉬의 엄마인 에밀리는 그녀의 새 가족 안에서 조쉬의 흔적을 정리한다. 조쉬의 여자친구였던 케이트는 조쉬가 죽은지 2년이 지났는데도 기자들의 전화에 시달리며, 이름을 바꾸고 학교도 그만둘 지경에 빠진다.
에밀리가 조쉬의 음악이 담긴 CD와 기타를 들고 오면서 음악은 시작된다. 샘은 차마 그것들을 버리지 못하고 요트 안에서 듣게 된다. 그는 그 음악을 가지고 그가 직장동료들과 갔었던 라이브카페에서 첫 무대에 선다.
그가 왜 그의 아들의 음악을 가지고 무대에 섰을까? 아빠가 된 입장으로써 아들의 음악을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것일까? 그의 아들이 6명을 총으로 쏴 죽인 살인자임을, 결국 그 노래들은 살인자의 노래임을 그가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마 살인자라는 이름보다는 자신의 아들이라는 이름만이 샘에게는 보였을 것이다. 샘의 첫 무대는 동네의 작은 술집이었고, 들어주는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그 곳에서 쿠엔틴은 샘에게 같이 음악을 하자고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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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처; 네이버 영화 <러덜리스> 스틸 이미지 | ||
사람들의 반응은 예상외로 좋았다. 순식간에 조쉬의 음악으로 샘과 쿠엔틴, 그리고 쿠엔틴의 친구들은 러덜리스(rudderless: 어쩔 줄 모르는, 지휘하는 사람이 없는)라는 밴드를 만들고 큰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를 손에 쥐게 된다. 하지만 샘은 이 노래들이 더 많이 알려지기를 꺼려한다. 이 노래들은 샘이 아닌 조쉬가 만든 곡이었기 때문에. 그러던 중 조쉬의 여자친구 케이트가 쿠엔틴에게 모든 사실을 말하게 되고, 큰 배신감을 느낀 쿠엔틴은 공연을 취소한다.
단순히 조쉬의 음악으로 성공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고 음악을 그만두려는 쿠엔틴에게 샘은 공연 당시에 너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며, 너만의 음악을 하라는 말과 기타 선물을 남기고 떠난다.
조쉬는 살인자였다. 너무나도 잔인하게 자신의 동급생들을 총으로 쏴 죽이고 자살했다. 그는 꽤 훌륭한 노래들을 만들고 있었다. 조쉬의 노래는 살인자의 노래인가? 조쉬의 노래를 들으면 안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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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처: 네이버 영화 <러덜리스> 스틸 이미지 | ||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샘은 처음 노래를 불렀던 동네의 술집을 찾아가서 마지막 노래를 부른다. 부르기 전에, 샘은 관객들에게 말한다. “제 아들의 이름은 조쉬 매닝입니다. 그는 2년전 대학교에서 6명을 총으로 쏴 죽이고 자살했습니다. 이 노래는 제 아들이 만든 노래입니다.” 사람들은 충격에 빠진 표정으로 숨을 죽인 채로 노래를 듣는다. 사람들은 결국 노래의 슬픈 내용에 눈시울을 붉힌다. 그들은 무슨 감정으로 그 노래를 들었을까? 마지막에 눈시울을 붉힌 것은 조쉬를 향한 안타까운 감정이었을까? 노래의 가사에서는 자신이 있는 곳을 감옥으로 표현하면서 ‘어딘가에서 내 노랠 듣고 있다면 같이 노랠 불러줘’, ‘어쩌면 사랑만이 유일한 해답일지 몰라’라고 조쉬의 상황을 말해주는 가사가 적혀있다.
영화의 마지막 노래가 마음을 무겁게 한다. 그 아이가 잘못된 것이었을까? 물론 살인이라는 행동은 잘못된 것이지만, 그 아이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단순하게 그 아이자체만을 욕할 수 는 없을 것 같다. 조쉬가 그렇게 되기까지 누구의 잘못이 있었을까?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잣대, 또 이 사건의 원인은 누구에게 있는 것일까? 그 누가 다른 사람을 판단할 수 있을까? 조쉬의 노래는 너무나도 슬프고 따뜻했지만 그가 한 행동은 너무나도 끔찍했다.
이 영화는 픽션이다. 하지만 이 영화의 내용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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