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티스트매거진=김정아] 개념미술의 살아있는 거장, 존 발데사리(1931~)의 개인전이 국내에서 약 20여년 만에 열렸다. 전시된 작품들은 2008년부터 2015년까지 제작된 근작 15여점으로, 언어와 시각성의 상관관계에 주목한 발데사리 특유의 형식이 드러난 회화 작품들이었다.
발데사리는 1960년대 말 새로운 예술의 생산 및 유통방식을 모색하고자 했던 여느 개념미술가들과 달리 전통적인 회화 매체를 사용했다. 그러나 그가 회화를 통해 나타내고자 했던 의도는 오히려 회화의 ‘실패’ 를 보여주려 한 것으로 보인다. 이미지가 지닌 서사성에 바탕을 둔 작업 방식은 이미지가 전하는 메시지에 대한 관습적 인식체계를 비판하기 위해 대중 매체뿐만 아니라 고전 명화에서 차용한 다양한 이미지들을 해체하고 재조합함으로써 새로운 내러티브의 가능성을 시사한다. 발데사리는 미술작품이 일반적인 지각 또는 인식과 차별되는 특별한 미적 경험을 제공할 것이라는 관객의 믿음을 보다 효과적으로 전복시키기 위해 ‘예술적 기호가 내포’ 되어 있는 회화 매체를 사용한 것이다.
가령, 발데사리의 대표 연작들은 영화 스틸을 연상시키는 익숙한 장면과 원색의 컬러 패널 그리고 발데사리 작품의 주요 특징인 수수께끼 같은 문구가 모여 하나의 커다란 화면을 이루고 있다. 강력한 서사적 요소를 내포하면서도 정작 어떤 장면을 묘사하는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또한 이를 위해 작가는 이미지의 일부를 절단하거나 가리는 등 특정한 상황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신중을 기한다. 필자는 발데사리의 작품을 하나의 ‘기호 체계’ 로 읽는다. 실제로 그의 작품은 텔레비전이 잉태한 사회, 정치 이념적인 차원의 의미에 대한 언어학적 연구처럼 보인다. 그러나 너무도 복잡하고 이질적인 요소들이 집성되어 있어, 이미지와 캡션을 기표와 기의로 해석하는 것은 혼란을 가중시킬 뿐이다. 작품에서 캡션은 필수적인 반면 매우 잉여적이기까지 한 정보를 부가한다. 발데사리의 작품은 이러한 대립과 모순을 둘러싸고 공전하며, 관람자로 하여금 시각적인 것과 언어적인 것 두 요소를 동시에 스치듯 파악하게 하면서 다소 불편한 연상방식에 연루되게 하는 것이다.
이처럼 발데사리의 작품은 언어와 이미지가 충돌함으로써 기표와 기의가 부유하는 ‘읽혀지지 않는 서사’ 이다. 그 분절된 관계와 의미의 틈새를 채우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관람자의 몫일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읽혀지기를 거부하고, 서로 읽히는 관계를 해체하는 그 지점에서 발데사리 특유의 ‘알레고리의 미학’ 을 발견하길 바란다. 그것이 곧 발데사리의 예술에 대한 개념적 태도와 전략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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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toryboard (In 4 Parts): Man Carrying Ladder, 2013. Varnished inkjet print on canvas with acrylic and oil paint, 191.8 x 196.9 cm. [사진제공= pkm갤러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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