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티스트매거진=이준건] 그런 사람들이 있다. 속된 말로 어장관리를 한다는 사람들. 조금 낡긴 했지만 꽃뱀이라는 단어도 이들을 설명하기에 나쁘지 않은 단어다. 그래서 <건축학개론>의 승민 같은 ‘호구’들은 그들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썅년!” 그렇다면 연극 <햇빛샤워>의 주인공 광자는 어떨까? 리플렛에 나와 있는 소개문구처럼, 광자는 썅년이 맞다. ‘호구 오빠’를 등쳐먹고 자신이 일하고 있는 매장의 과장과는 그렇고 그런 사이다. 남을 짓밟아서라도 매니저 자리를 얻으려고 하고, 다른 사람들과는 일절 교류하지 않는다. 이 정도면 분명하지 않은가? 광자가 썅년이라는 사실이.
광자는 썅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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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햇빛샤워> 포스터 | ||
그러나 연극을 관람하는 사람들은 광자가 단순한 썅년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녀가 그렇게 탐욕스러운 행동을 하는 이유는 오로지 하나, 광자라는 자신의 이름을 바꾸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광자가 개명하고 싶어하는 이유는, 광자라는 이름 때문에 모든 일이 틀어진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실로 광자의 인생은 험난하기 짝이 없었다. 아버지는 술병으로, 어머니는 담배 때문에 일찍 사망한 탓에 고아로 어렵게 살아갔다. 학창시절에는 광자=미친년이라고 놀리던 친구 녀석의 얼굴을 면도칼로 그어버린 뒤 감옥에 들어갔다. 그리고 출소 후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썅년으로 살아가는 그녀. 때문에 그녀의 인생을 단순히 ‘썅년’이라 치부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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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자는 썅년이다. 그러나 썅년일 수밖에 없는 썅년이다. | ||
작품에서 광자는 의사로부터 비타민D가 필요하다는 조언을 듣는다. 그리고 흔히 알려진 바대로, 비타민D는 햇빛을 통해 만들어진다. 그러나 광자는 햇빛을 쐬는 일조차 버거운 일이다. 낮에는 자본의 매장 안에 갇혀, 밤에는 반지하 방에 갇혀 도무지 햇빛을 볼 일이 없다. 그래서 광자가 반지하 방, 침대 위에 앉아 ‘햇빛샤워’를 하는 장면은 무척 인상적이다. 어떻게든 살아가려는 의지, 싱크홀에서 탈출하려고 노력하는 광자의 의지가 엿보이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광자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불안불안하게 목숨을 지탱해나간다. 그 과정에서 관객들은 그녀가 ‘삶 같은 삶’을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자본주의의 폐단에 매몰된 채 오로지 개명에만 몰두하는 그녀의 모습은, 극중 인물인 이동혁 과장의 말처럼 ‘시뮬라시옹’의 삶을 사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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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전의 양면처럼, 동교와 광자는 비슷한 듯 전혀 다른 속성을 지닌 인물이다. | ||
반면 또다른 주연이라 할 수 있는 동교의 삶은 조금 다르다. 다소 수셈은 느려도 사람의 본질을 꿰뚫는 말을 할 줄 안다.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람에게 손을 내밀 줄 알고, 반대로 도움을 요청할 줄도 안다. 평생 관계를 이용해 삶 같은 삶을 지탱해왔던 광자와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다만 동교 또한 광자처럼 고아로 살아왔기에 그만의 상처와 고통이 있었고, 둘은 서로를 치유해주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물론, 연극은 그렇게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는다.
인물에는 박수를, 서사에는 비판을
개인적으로는 작가의 인물 구성에 박수를 치고 싶다. 광자라는 인물은 윤리적 잣대를 들이댈 때 결코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없는 인물임에도 관객들의 연민과 공감을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작가가 인물에 많은 공을 들였다는 인상을 받았다. 특히 장우재 작/연출자가 “저는 이 시대에 수많은 광자들을 봅니다.”라고 이야기했듯이, 광자라는 인물은 상당한 보편성을 지니고 있기에 자칫하면 뻔하고 얄밉기만 한 캐릭터가 될 수도 있었는데, 작중인물 광자는 그러한 진부함이나 얄미움이 덜한 편이었다.
또한 무대 구상도 눈에 띈다. 거대한 싱크홀이 되었다가 광자의 반지하 방이 되는 무대 중앙은 일종의 알레고리로 작용한다. 즉, 싱크홀에서 결코 빠져나올 수 없는, 그리하여 ‘햇빛샤워’도 마음놓고 하지 못하는 광자의 인생을 대표하는 공간이 바로 광자의 방이기 때문이다. 특히 마지막 장면은 무대 중앙이 광자의 방에서 싱크홀로 바뀌는데, 싱크홀을 보고 깜짝 놀라는 사람들의 모습은 광자의 삶을 ‘피해가고 싶은 것’으로만 치부하는 우리의 모습과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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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자라는 인물의 보편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캐릭터 고유의 특성을 잘 살렸다. | ||
다만 서사에는 비판을 가하고 싶다. 2시간이라는 제한된 시간 탓에 그런 건지 몰라도, 이야기의 구성이 용두사미다. 광자가 이아영이 되기까지의 길고도 고통스러운 과정은 흡입력 있고 재미있게 구성했지만, 정작 동교와 광자의 교차는 불확실하고 불분명하다. 아무 관계가 없는 두 사람이 교차하는 지점은 단 두 장면에 불과하며, 이마저도 그리 인상적이지 못하다. 광자가 폭주하는 부분에서 동교가 유령 같은 목소리로 응답하긴 하지만, 이는 ‘결말을 위한 결말’에 불과해 보였다.
이 작품이 수많은 광자들을 위한 연극임은 분명하다. 어둠과 절망의 싱크홀에 갇혀 그저 살아남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연극. 따라서 광자와 동교가 끝내 햇빛을 보지 못한 채 절망 속에서 죽어야 하는 결말로 끝냈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조금 의문이 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리얼리즘을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비록 칼부림이 그렇게 낯익은 장면은 아니지만, 우리 주변의 광자들은 지금도 싱크홀에 떨어져 죽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기간 2015.07.09~26
시간 평일 8시/토요일 3시, 7시/일요일 3시
장소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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