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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과 집착 그리고 집착, <페르마의 밀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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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포스터 [ⓒ네이버 영화]

[THE ARTIST매거진=어한빛]

영화의 시작과 끝이라 할 것 없이, ‘집착’이 영화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무엇인가에 집착해 본 적, 있는가. 그 무엇이 사랑이든, 사람이든, 명예든 ‘집착’이라는 것과 함께 하는 순간 그것들은 ‘지독’ 해진다. 어느 것이 더 한가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집착을 따지려고 드는 그 순간마저도 집착의 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집착들이 마주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영화 <페르마의 밀실(Fermat’s Room, 2007)>은 이 질문에 대한 답들을 담아냈다. 서로 다르지만, 집착으로 뭉쳐있는 상황들을 절묘하게 엮어 놓았고, 그 결과는 숨 막히도록 지독했다. 아직, 무엇인가에 집착 해본 경험이 없는 사람이라면, 집착이 곧 ‘파국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한껏 느끼게 될 것이다.

알 수 없는 이로부터 4명의 내로라하는 수학자들이 초대된다. 초대자 페르마까지 총 5명. 사전테스트로 행한 문제풀이는 당연 이들의 구미를 당겼고, 알 수 없지만 정중한 초대를 거부할 이는 없었다. 은밀하고도 잘 차려진 공간에 모인 이들. 문제에 대한 토론은 오가지 않고 묘한 긴장만 맴도는 그 때, 페르마(페데리코 루피분)가 급한 전화를 받고 자리를 뜨면서 문제가 발생한다. 페르마가 떠나고 그의 신분을 궁금해 하던 이들은 서랍 속에서 믿기 싫은 문서를 발견한다. 주최자 페르마가 얼마 전, 대형 압축기 4대를 구입했다는 내용의 문서인 것. 그리고 그 4대의 압축기는 그들이 있는 방의 사면을 감싸고 있다. 도대체 이들은 왜 점점 줄어드는 이 방안에 갇히게 되었는가. 띵-동, 줄어드는 방의소리 사이로 기계음이 들려온다. 문제가 주어진 것이다. 제한 시간은 단 1분, 시간이 초과되는 만큼 방의 크기는 줄어든다. 더 이상 단순 수학문제모임이 아니라 ‘생존모임’이 된 방 안, 그들에겐 두 가지의 문제가 놓여있다. ‘이들은 어떤 연관으로 모였는가’, 동시에 ‘문제의 답은 무엇인가’ 하는 두 가지의 문제가 놓여있는 상황. 이 숨 막히고 심장 떨리는 그 중심에 ‘집착’이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집착의 그림자는 파스칼(샌티 밀란분), 갈루아(알레조 사우라스분), 올리바(엘레나 발레스터로스분), 힐버트(루이스 호마르분) 각각의 비밀을 고백하면서 서서히 드러난다.

중요한 사람을 데리러 가던 도중, 차안에 똥 냄새가 퍼져가는데 비가 너무 많이 와 창문을 열수 없는 상황에서 일단 신발을 바닥에 문지르고 벗은 뒤 운전을 하고 있던 갈루아. 먼 앞에서 웬 여자가 길을 건너는 걸 본다. 멈추지 않은 갈루아. ‘내 양말에 똥이 묻어 냄새가 나면,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생각에 뒤늦게 브레이크를 밟는다. 차에 치여 코마상태가 된 여자는 페르마의 딸. (페르마가 급히 가면서 두고 간 외투에서 지갑이 떨어지면서 딸의 얼굴을 갈루아가 확인하면서 알게 된다.) 갈루아의 고백으로 4명은 실마리를 찾은 듯 보인다. 복수. 더욱 더 살기 위해 발버둥 친다. 각각에게 별명으로 주어진 수학자 이름이, 그들이 그 당시 삶을 마감한 나이대로 붙여진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순간, 출구 없는 이 곳에서 살아남기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없게된다. 그러나 아무리 해도 압축기는 지치지 않고 방은 계속해서 줄어든다. 문제풀기는 계속되고, 이들의 고백도 계속된다.

   
▲ 고백하는 순간들 (위에서 부터 시계방향으로 갈루아, 올리바, 힐버트, 파스칼)

올리바와 파스칼은 대학생 초반시절 사귀었던 사이이다. 헤어진 이유를 모르던 파스칼은 충격적인 말을 듣는다. 온라인 게임으로 체스를 즐겨하던 올리바는 매번 경기에서 이겨왔다. 그러다 누군가와 상대했는데, 그녀가 졌다. 처음으로 게임에서 진 것이다. 그 이후로도 몇 번 진 올리바는 상대가 누군지 궁금해졌고, 그 상대를 만났다. 정확히 말해서, 호화로운 체스게임에 초대 된 것이었다. (호화로운 초대가 건전할 리는 없었을 터.) 그 상대는 방에서 문제를 풀고 있는 힐버트. 힘이 쭉 빠져버린 파스칼은 사는 것이 무의미하다며 “죽어도 상관없다”고 말한다. 순간 범인으로 몰린 파스칼은 곧이어 고백을 한다. 골드바흐의 가설을 증명한 최소연자로 유명했던 파스칼은, 사실 모든 것이 올리바의 관심을 끌기 위해 애초부터 꾸며낸 일이라 실토한다. 아무것도 되어있지 않은 상태에서 사태가 심각해지자, 증명한 종이를 도둑맞은 척 가장한 것이라 말하는 파스칼. 이 모든 것이 올리바 그녀를 얻고자 한 일이었다. 그리고 ‘내가 진정한 1인자였어.’라고 읊조리는 힐버트. 이들을 모이게 한 것은 바로 그였다. 골드바흐의 가설에 대한 증명을 몇 년에 걸쳐 연구하다가 거의 끝이 났을 때쯤, 자신보다 한참 어린 파스칼이 선수 친 것이 분했던 힐버트. 그는 파스칼이라는 어린놈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고, 올리바에게 계획적으로 접근했으며 페르마라는 사람이 이를 꾸민 듯 보이기 위해 갈루아를 초대했다.

이들의 관계가 어찌 되었든 우리가 다시 짚어야 할 점은 관계가 아닌 그들이 ‘왜’ 관계를 가지느냐이다. 집착, 집착이 이들을 엮은 것이다. 남의 시선에 집착한 갈루아, 승리에 집착한 올리바, 사랑에 집착한 파스칼, 그리고 명성에 집착한 힐버트. 결국 이 모든 것은 집착이 만들어낸 모습들이다. 4대의 압축기로 끊임없이 줄어드는 이 밀실은, 집착으로 점철된 공간인 것이다.

가까스로 탈출한 파스칼, 올리바, 갈루아. 집착으로 가득 찬 공간에서 탈출했으면 그만 집착에서 벗어날 만도 한데, 여전히 집착을 놓지 않는 파스칼의 손에 힐버트가 증명한 종이 뭉치가 들려있다. 이를 어찌할지 고민하는 파스칼을 바라보던 갈루아가 종이를 강에 날려버린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대화가 오고간다.

   
▲ 강물에 던져진 증명 종이들

“지금 세상에 무슨 짓을 한 것인지 알기나 해?”  -파스칼-

   
▲ 유유히 지나가는 배, 영화의 마지막 장면.

“…세상은 그대로야.”  -갈루아-

아마, 이 장면을 만들어내기 위해 앞의 지능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하더라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강한 메시지가 영화 가장 마지막에 아주 짧게 드러난다. 그렇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하든, 안 하든 간에 세상은 여전히 그대로 변함이 없다.(세상은 그대를 몰라주니 좌절하라는 말이 아니니 오해 않길.)

혹시, 지금 무엇인가에 집착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 크기가 어떠하든 말이다. 집착에 가려 옳고 그름의 판단은 물론이오, 코앞의 시야가 흐릿하진 않은지 묻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때때로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확인 해 보아야 한다. 집착이 시작되면 그 끝에는 파국으로 치닫는 자신이 서 있을 테니 말이다. ‘이 정도의 집착정도는 끈기지’하는 것, 잘 생각해 보아야 한다. 집착으로 얻은 성과 뒤에 내가 소홀히 하거나 떠나보낸 것들이 어떤 것들인지, 혹은 너무 많은 것을 모른 채 하고 이룬 것은 아닌지 말이다. 끈기와 집착은 분명히 다른 방향을 띄고 있다. 끈기라는 이름으로 가장 한 집착을 앞세우고 있지는 않은지, 다시 한 번 생각 해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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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한빛 기자
uhv1004@thearti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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