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쇼몽>은 일본영화의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의 대표작으로, 한 사내의 죽음을 두고 그와 관련된 네 명의 인물이 차례로 증언하면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들은 모두 같은 사건을 경험했지만, 그에 대한 진술은 모두 다르다. 각자 자신의 입장에 따라 사건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결국 누가 사내를 죽인 것인지는 끝까지 밝혀지지 않는다. 모두가 공유할만한 객관적 사실은 없고, 각자가 기억하고자하는 주관적 욕망만이 남는다.
기억의 속성은 인류의 기억인 역사로 확장된다고 해도 변하지 않는다. 영국의 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기억이란 기록의 메커니즘보단 선택의 메커니즘에 가까운 것이라고 말했다. 역사 또한 기술의 주체나 시기, 정치적 입장에 따라 끊임없이 재구성된다. 이 과정에서 역사는 지배관계 강화의 수단으로 전락하거나 정치선전의 도구로 악용되기도 한다. 과거를 온전히 바라보는 건 불가능한 일일까?
![]() |
||
| ▲ <Taoyuan Airport> , 2012년, 420x620cm ©李松松 |
||
리송송(李松松)은 기억과 역사의 문제를 탐구하는 작가다. 그의 작품은 중국의 정치 역사적 맥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는 신문, 잡지, 필름 클립 등에서 찾은 사진 이미지를 차용하지만, 그것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작품의 질감과 입체적인 효과를 강조하기 위해 유화물감을 두텁게 칠한다. 청록, 적갈, 회색 등 파스텔 톤의 침울한 색조는 명상적인 분위기를 조성한다. 불규칙하게 분할된 그리드는 각각 다른 질감과 색으로 그려져 대비가 뚜렷하다. 여러 층으로 분할된 그림은 포토콜라주를 연상케 하며, 알루미늄 패널 위에 그려져 조각적 성질마저 띤다. 단순한 역사화로 치부하기엔 특이한 점이 너무 많다.
작품의 형태만큼 제작 방법도 독특하다. 작가는 화면을 어떻게 나눌지 정한 후, 각각의 그리드를 따로 작업한다. 하나의 그리드를 완성해야 다음 작업으로 넘어가는 식이다. 하나의 그리드는 형태나 색채 연구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않지만, 모든 그리드를 최종적으로 결합시키면 비로소 하나의 통합된 이미지가 나타난다. 이렇게 완성된 그림에는 원본의 희미한 흔적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 |
||
| ▲ <This Is How We Talk Politics> |
||
해체와 재구성의 과정 중 외형뿐 아니라 그 뒤에 숨겨진 의미 역시 달라진다. 일련의 과정을 통해 본래의 원본 이미지가 지니고 있던 정치적 맥락, 역사적 중요성, 사회적 상징은 제거된다. 감상자는 편견과 선입관 없이 역사적 이미지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이는 역사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유도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진 이미지와의 외적 유사성은 줄었지만, 진실된 역사에는 한 발자국 다가서게 된다.
과거를 제대로 바라보고 이해하려는 시도는 중요하다. 역사에 대한 고찰과 반성 없이 나은 미래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개혁개방 후 중국은 경제성장만을 최우선과제로 삼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한 수많은 부작용은 도외시되었다. 정신없이 달려온 만큼 지나온 길을 되돌아볼 필요도 있지 않을까. 오늘날 리송송의 작업이 더욱 의미 있어 보이는 이유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