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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비루는 언제나 패배한다_뮤지컬 <유린타운>

이준건 기자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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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티스트매거진=이준건] 고대 로마 시인 오비디우스(기원전 43~기원후17)의 서사시 <아모레스>에는 성 밖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오래전,

어느 누구도 보습으로 땅을 파헤치거나

토지를 분할하거나 노를 지어 바다를 휩쓸지 않았다.

해안은 세계의 끝이었다.

영리한 인간의 희생, 파격적이면서 창조적인,

왜 탑처럼 높이 솟은 벽돌로 도시를 경계 짓는가?

‘성 밖의 사람들’은 고대로부터 하비루(habiru)라고 불렸다. 그들은 문명화의 필연적인 결과로 생겨난 사람들로, ‘쓰레기가 된 인간들’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그렇다, 문명화는 언제나 쓰레기 인간, 즉 하비루를 동반한다. 문명이 생겨난다는 것은 성을 만들고 경계를 짓는다는 의미이며 이는 곧 차별이 생긴다는 것을 뜻한다.

뮤지컬 <유린타운>도 오비디우스의 노래와 다르지 않다. 유린타운에 가지 않기 위해, ‘정당하게 돈을 내고’ 똥오줌을 쌀 권리를 획득하기 위해 부던히 노력하는 이들의 이야기. 등장인물들의 삶은 쓰레기의 삶과 다를 바가 없다.

   
▲ 사진출처: 신시컴퍼니

하비루들의 이야기

물 부족에 시달리는 어느 마을. 이곳에서 대소변을 보기 위해서는 반드시 유료 화장실을 이용해야만 한다. 만약 그렇지 않고 몰래 노상방뇨를 할 경우, 사방에서 눈을 번뜩이는 경찰들에게 잡혀 유린타운으로 끌려 간다. 유린타운으로 끌려간 이들 중 돌아온 사람은 없으며, 바로 그러한 이유로 사람들은 유린타운을 매우 두려워한다.

그러나 과도한 이용요금 때문에 마을에는 점점 불만의 기운이 싹트고 유료화장실의 관리자였던 바비 스트롱은 사장의 딸 호프 클래드웰을 만나 “가슴이 말하는대로 하라.”는 조언을 듣고 혁명을 일으킨다. 그 과정에서 바비 스트롱은 유린타운으로 끌려가 죽임을 당하지만, 그의 뒤를 이은 호프 클래드웰에 의해 마침내 혁명세력은 유료화장실의 사장이었던 콜드웰 클로드웰을 똑같이 유린타운으로 보낸다.

   
▲ 혁명을 일으키는 바비 스트롱과 마을사람들.

이야기는 이렇게 마무리될 듯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워낙 물 부족에 시달렸던 마을이었기에 화장실의 무분별한 사용은 파멸을 불러왔고, 호프 클래드웰은 아버지가 했던 것처럼 엄격하게 화장실을 관리한다.

가볍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 바비와 호프는 서로 사랑에 빠진다.

<유린타운>은 유쾌한 스토리를 통해 가벼운 내용을 담고 있는 듯하지만, 사실 거기에 담긴 내용은 매우 정치적이고 가볍지 않다. 사람들의 생리작용을 가혹하게 조절해서라도 생존해나가야 하는가? 아니면 사람들의 기본적인 권리를 보호해주되 다같이 대안 없이 파멸의 길로 걸어가야 하나? 회의적인 환경론자들에 의하면 이미 지구는 그러한 딜레마에 빠져 있다. 그러므로 뮤지컬에 등장하는 어느 가상의 마을은 지구로 치환해도 될 것이다.

이러한 갈등은 이상과 현실의 대립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재미있는 건 거기서 항상 패배하는 것은 앞에서 언급한 하비루들이라는 사실이다. 하비루가 아니었던 자들, 예컨대 화장실의 사장 콜드웰이나 부패 정치인 피프, 경관 록스탁 등은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과도한 권리를 누렸다. 그러나 혁명 이후, 호프의 주도 아래 이상적인 사회가 실현되면서 모두의 권리가 확보되자 이번에도 고통받는 것은 하비루들이었다. 권리를 보장받든 보장받지 못하든 하비루들은 패배하는 것이다.

따라서 지그만트 바우만이 이야기했듯이 하비루는 ‘쓰레기가 된 인간’일 지도 모른다. 언제나 패배하고, 언제나 권리를 누리지 못하며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는 이들을, 우리는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 또 이들은 어떻게 하면 하비루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웃음이 팡팡 터지는 뮤지컬을 보면서 결코 마음을 쉬이 놓을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경관 록스탁과 바렐. 비록 바렐은 비정규직(!)이지만, 그래도 마을사람들에 비하면 적정한 권리를 누린다.

패러디, 그리고 서술자개입의 즐거움

기본적으로 유쾌한 스토리텔링을 이용해 극을 끌어가지만, 다양한 패러디를 이용해 즐거움을 더한다. <레 미제라블>,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로미오와 줄리엣> 등 유명한 작품들을 본 사람들은 눈치챌 만한 패러디 요소들이 눈에 많이 띈다. 물론 그런 작품들을 보지 못한 사람들은 갑자기 등장하는 뜬금없는 대사나 행동에 당황할 수도 있지만, 어쨌든 내용을 이해하는 데는 큰 무리가 없다.

또한 서술자 개입이 빈번하게 일어나는데, 리틀 샐리와 경관 록스탁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극이 진행되는 와중 갑자기 극에서 빠져나와 ‘스포일러’를 한다. “미리 말해두겠는데 이 뮤지컬은 해피엔딩이 아니란다, 리틀 샐리.”, “아무리 그래도 저같이 귀엽고 깜찍한 소녀가 등장하는 뮤지컬은 행복하게 끝나야 한다구요!” 등, 만담에 가까운 둘의 대화는 소소한 재미를 불어넣는다. 그래서 자칫하면 지루해질 수도 있는 2시간에 가까운 뮤지컬을 온전히 즐길 수 있다.

다양한 패러디와 서술자 개입으로 흥미를 더하는 뮤지컬 <유린타운>. 어쩌면 우리들의 이야기가 될 지도 모르는 하비루의 이야기를 유쾌하게 구경하되, 그들의 고민을 함께 하고 싶은 이들에게 권한다.

   
▲ 사진출처: 신시컴퍼니

기간 2015.05.17~08.02

시간 140분

장소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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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건 기자
seawhale98@thearti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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