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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네이버 영화 | ||
[디아티스트매거진=민소영]
음악은 한 명이 만들어가는 것이 아닌 서로 공감하고 이해하는 과정 속에 놓인 사람들이 함께 완성해나가는 예술, 아니, 인생의 과정 중에 별 같은 순간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마치 영화 <원스>에서 그들이 함께 음악을 만들어나가고 화음을 만들어가면서 느꼈을 감정과, 영화 <프랭크>에서 그룹 소른프르프브스가 해체되고서야 그 중요함을 깨닫고 돌아가 프랭크가 부르던 ‘I love you all’의 눈물처럼 말이다. 혼자가 아닌 함께여야 (그것이 듀엣이던 그룹이던 혹은 음악가와 관객의 관계이던 말이다) 이끌어갈 수 있는 인생의 이면에 대해 음악영화들은 항상 노래해왔다. 작년 이맘때쯤, 청춘 속에서 의미를 찾고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그리던 영화 <비긴 어게인>의 OST인 ‘Lost Stars’가 길거리 곳곳에서 들려오곤 했다. 무대 위에서 자신이 선물한 노래를 부르며 사람들의 환호를 받는 전연인을 뒤로 하고 밤거리를 자전거로 달리던 그녀를 보면서 마음 가득 바람이 불어오는 기분을 느끼던, 별이 빛나는 밤거리의 공기가 느껴졌던 이들도 많았으리라. 그렇게 1년의 여운이 지나고 새로운 음악영화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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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네이버 영화 | ||
하지만 필자는 이 영화를 다른 음악영화들처럼 평가하진 않겠다. 단지 스토리 때문만도, 남녀 듀엣이 아니라서도 아니다. 이 영화의 마지막 4분 35초는 그 어떠한 음악영화에서도, 아니, 어떠한 영화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강렬하고 오묘하지만 고요한 감정을 주었기 때문이다. 멋지게 슈트를 차려입고 화려한 집에서 살던 광고기획자였던 샘(빌리 크루덥)은 센트럴 대학 도서관 총기 난사 사건의 중심이었던 아들 조쉬의 죽음 이후, 간신히 정박한 요트 속에서 살게 된다. 그마저도 항상 민원이 넘치지만 말이다. 그런 그에게 2년 만에 찾아와 조쉬가 남긴 음악 관련 유품들을 건네는 전부인 에밀리(펠리시티 허프만). 요트에 자리가 없다며 그는 밀쳐내고 그런 그에게 ‘아들이 있었다는 존재마저 회피하고 숨으려 하지 말라’며 전부인은 떠난다. 길거리에 놓여있는 유품의 박스들을 방치하다가 결국 일어나 쓰레기통에 넣던 샘은 상자뚜껑을 열다가 그와 조쉬의 추억이 담긴 사진을 발견하게 되고, 결국 요트 안으로 유품들을 들이며 이 영화의 음악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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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thedissolve.com | ||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어느 누구에게나 집이라는 곳은 안식처를 떠올리게 한다. 자신이 본래 존재하는 곳,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곳. 샘이 처음 듣게 되는 조쉬의 데모 곡의 제목은 ‘Home’이었다. 이렇게나 절실하게 집을 그리워하는 노스텔지아는 마치 자신을 잃고 방황하며 배에 머무르는 샘의 상황과도 너무 닮아있었다. 그렇게 그 노래를 들으며 연습하던 샘은 자신이 일 마치고 종종 가던 라이브 클럽에 가서 마이크를 잡게 된다. 그런 그의 감성에 감동을 받은 젊은 기타리스트 쿠엔틴(안톤 옐친)은 술에 취한 채 비틀거리는 그를 따라나와 그의 음악이 얼마나 대단한지 극찬하기 시작한다. 섹스보다 맛있다는 도넛과 커피를 들고 요트까지 찾아와 그의 화음이 되고 싶어하는 쿠엔틴의 열정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던 샘은 그의 기타와 노래 소리를 듣고는 태도가 조금씩 변하게 된다. 함께 음악을 하면서 아마도 그와 비슷한 나이였던 아들 조쉬가 떠올랐던 것일까, 그는 쿠엔틴과 함께 다시 라이브 클럽 무대에 서게 되고, 어느 순간 그는 밴드를 이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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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네이버 영화 | ||
혼자 하는 음악이 아닌 여럿이 감성을 공유하여 이루어가는 음악인 만큼 그들은 일상에서도 서로에게 영향을 준다. 요트 속에서 은둔하며 살던 샘이 쿠엔틴에게 마음을 열어가면서 함께 어울려가는 모습이 마치 아빠와 아들 같다는 느낌을 받은 것이 필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여자친구를 만들어주려고 하는 샘의 모습과 수줍어하면서도 젊음의 열정을 지닌 쿠엔틴을 보면서 이 둘이 풍기는 부자지간의 기운은 보는 이들을 흡족하게 한다. 그들의 노래는 많은 이들로부터 사랑을 받기 시작하였고, 중요한 페스티벌에 초대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밴드 러덜리스의 노래를 들은 조쉬의 여자친구였던 케이트(셀레나 고메즈)는 어떻게 그 노래를 부를 수 있냐며 샘과 밴드 앞에 나타난다. 샘의 아들의 곡들이었다는 것을 안 뒤 쿠엔틴의 태도는 변하게 된다. 중요한 기회라며 이번만 부르고 그만두자는 밴드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른 일’이라며 쿠엔틴은 자리를 뜬다. 낙심한 채 자신이 무엇을 위해 노래했는지 조차 그 의미를 찾지 못해 술에 취해 비틀거리던 샘은 그날 밤, 설상가상으로 담을 넘다가 등으로 바닥에 착지하는 바람에 기타까지 부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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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movie-list.com | ||
그런 그에게 찾아온 변화는 그 노래가 아들의 노래임이 밝혀지는 것이 아니다. 그로 인해 그가 계속 피해왔던 것을 마주하는 것이었다. 아들의 유품 중 하나였던 기타가 부러지면서 그의 노래는 영영 끝나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는 그가 가지고 있던 데모 CD를 전부인의 집에 들고가 건네주며 들으라고 권한다. 영화 초반에서 자신은 부모로서 최선을 다했다며 눈물짓던 엄마였지만, 결국 그녀도 조쉬의 내면을 알기를 피하고 있던 인물은 아니었을까. 샘이 센트럴 대학으로 찾아가 학생들의 추모비 앞에서 오열하며 “내 아들”을 외치는 장면은 그가 그 동안 이 문제를 피해오면서 마음에 쌓인 응어리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자식에 대한 무거운 책임감, 동시에 이해하지 못한 자신에 대한 죄책감의 표출이었으리라. 조쉬의 노래를 듣고 부르고 밴드를 형성하게 되면서야 비로소 그는 아들의 내면을 마주하고 이해하게 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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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네이버 영화 | ||
그 결과를 우리는 마지막 엔딩의 4분 35초 동안 가슴 깊이 확인하고 눈물을 흘리게 된다. 조쉬의 노래 중 미완성된 곡의 마지막 구간을 반복해서 듣는 샘의 모습이 영화 중간 등장한다. 아들이 하고 싶었던 말을 이해하기 위한 ‘마음’으로만 보였지만, 그에 그는 가사를 덧붙여 완성을 하는 ‘행동’을 해나간다. 완성된 음악을 들고 그는 담담히 무대 위로 오른 뒤 입을 연다.
“내 아들의 이름은 조쉬입니다. 2년 전, 그는 6명을 쏴 죽였습니다. 그리고 이 것은 그의 노래입니다.”
‘바라 보지 마’라는 가시 돋힌 내면을 드러내는 가사 뒤로 ‘조심히 발을 디뎌’라며 아들을 달래는 듯한 샘의 가사에 라이브 클럽에서 듣고 있던 이들은 침묵 속에 귀를 열고, 눈물을 훔치던 이도 있었다. 동료 학생들을 죽인 범죄이지만, 마음 속에 상처를 지녔던 한 젊은이였고, 그 내면의 고통을 알지 못했던 부모로서 샘이 느꼈을 괴로움과 이해하고자 하는 치유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리라. 사회 속에서 남들의 내면 속 아픔과 고통을 보지 못한 척 지나치는 우리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고, 동시에 작은 발걸음을 내딛기 위해 건네는 손길이 주는 변화를 이미 우리는 알고있지 않은가? 따라 부르는 힘이, 나 혼자가 아니고 함께라는 것이 주는 사랑을 알고있지 않은가? 다만 ‘숨고 외면하며 도망칠 뿐’이다.
Take a breath and count the stars.
Let the world go round without you.
If you’re somewhere you can hear this song, Sing al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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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네이버 영화 | ||
함께 노래를 부르는 이가 조쉬이기를 바랬던 샘은 쿠엔틴을 통해 조쉬의 내면을 마주하는 용기를 얻었고, 쿠엔틴 또한 자신이 아픔을 마주한 것처럼 용기내어 계속 앞으로 나아가기를 바랬다. 꿈을 포기한 채 알바를 하는 쿠엔틴에게 그가 팔려고 내놓은 기타와 함께 가지고 싶어했던 기타까지 사들고 가서는 말한다.
“포기하는 자는 이길 수 없어.”
우리는 누구나 아픔의 과거, 혹은 이해할 수 없는 고통을 지니고 있다. 그것이 자의였던 타의였던 문제를 마주하고 돌파하기에는 많은 어려움과 용기가 따른다. 그러한 용기를 준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이 문제라 여겼던 것의 중심에 있는 사람의 노래였다. 노래로 서로를 이해하고, 비로소 아픔을 마주할 용기를 얻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비록 자신의 노래는 아니지만, 그 노래를 통해 사랑과 고통을 마주하고, 그로 인해 자신이 얻은 이해를 공유하고자 하는 샘의 발걸음이었을 것이다. 바로 이러한 것들이 음악이 지닌 가장 큰 힘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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