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티스트 매거진=박지민] 언뜻 보면 흐릿하게 보이는 꽃 같기도 하고 뽀얗게 피어난 물안개 같기도 한 것이 하늘을 뒤덮는다. 눈 앞 엷은 붉은색의 얼룩이 어두운 풀빛 사이로 배어들 때 다른 쪽에선 쪽빛 얼룩이 하늘 한가득 스며든다. 그런데 아무래도 꽃 필 때는 아닌가 보다. 수면에 피어오른 물안개도 아닌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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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윤희 <무제> [출처]=갤러리현대 | ||
지난 6월 12일 갤러리현대에서 열린 도윤희 작가의 전시회 ‘Night Blossom’은 작가의 2011년 이후 4년 만의 개인전이다. 작가는 이 전시에서 20여 점의 그림을 통해 ‘어둠 속에서 보여지는 색채’ 와 ‘밤에 피어나기 시작하는 세계’에 대한 본인의 해석을 전달하고자 한다. 게다가 이 전시를 더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이 작품들을 탄생시키기 위해, 그녀가 연필과 붓을 내려둔 채 오로지 손만을 이용해 그렸다는 점이다. 캔버스 위 작가의 손자국을 통해 관객은 작가와 한 층 더 가까워진다. 더 직접적으로 소통하고 있는 것이다.
조용한 갤러리 속 도윤희 작가의 그림을 보고 있으니 19세기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이 떠올랐다. 특히나 인상주의 양식의 창시자 중 하나인 모네가 떠올랐는데, 작가의 색채표현과 빛과 명암의 분석이 모네의 그것을 꼭 닮아있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것이 캔버스 위 형형색색 피어오른 신비로움은 특정한 사물을 앞에 두고 그렸다기보단 어떤 찰나의 느낌을 그린 것 같았다. 그 순간이 지나면 그 느낌이 없어져 다른 색의 형체가 자옥이 피어날 것만 같았다. 그렇다면 작가는 도대체 무엇을 그린 것일까.
갤러리현대는 그녀가 ‘밤이 되어서야 드러나는 세계’를 표현하고자 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 세계가 정확히 어떤 것을 일컫는지 모른다. 어쩌면 어스레한 공간 속 작가의 머릿속에서 피어오른 생각이 형상화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빛이 있을 때 느껴지지 않던 것이 빛이 없을 때 비로소 피어난 작가의 내면을 그려낸 것일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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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윤희 <무제> [출처]=갤러리현대 | ||
작품의 정확한 주제가 무엇이든지간에, 전시를 보는 내내 나는 도윤희 작가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고마워요, 제발 이런 작품들을 계속 그려주세요.”
나는 21세기의 예술 속에서 이런 아름다움을 찾고 싶었다. 대부분의 현대미술은 공간 자체를 180도 변화시키는 것만이 목적이라는 듯 관객을 압도하고 싶어한다. 예를 들어, 무채색의 널빤지를 일렬로 나열한 뒤 그런 미니멀리스틱한 느낌만이 시대에 뒤쳐지지않는 것이라는 듯이, 혹은 본인이 어린 시절 가지고 놀던 낡아빠진 장난감의 표면을 과일 껍질로 둘러싼채 천장에 매단 뒤 “어머, 나 정말 아방가르드하잖아.”라며 자아도취하면 끝이라는 듯이 말이다.
이러한 장르의 미술이 싫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나는 다소 파격적인 설치미술을 좋아하고, 즐겨 본다. 하지만 그것만이 현대미술의 정의는 아니다.
나는 좀 더 원초적인 아름다움이 그리웠을 뿐이다. 지나가는 나무, 호수, 이파리에 감탄하듯 그렇게 자연스러운 느낌을 찾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도윤희 작가가 찾아주었다. 수십년간 지속된 그녀의 지조 있는 회화 작업은 이번 전시를 통해 자연을 닮은 아름다움을 선물해줌과 동시에, 결코 어떠한 대상을 사실주의 화법으로 그려낸 것이 아님을 입증하며 작가의 감정까지 엿볼 수 있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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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윤희 <무제> [출처]=갤러리현대 | ||
‘Night Blossom’, 즉 ‘밤에 피어나는 것’이라는 이 전시회의 타이틀은 어쩌면 너무 모순적인지도 모른다. 이 세상에 밤에 ‘피어나는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달맞이꽃도 아닌데 말이다. 그리고 설령 그런 것이 있다 하더라도, 도윤희 작가의 작품 중 어떤 요소가 ‘밤’을 떠올리게 하는가?
나는 잘 모르겠다.
뭐 상관 없다. 어차피 모네나 르누아르, 세잔도 이런 것을 질문하진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그들도 아마 가만히 바라보았을 것이다. 어둠 속, 작가에게 문득 찾아온 캔버스 위의 그 감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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