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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턴의 강박에서 벗어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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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티스트매거진=감지나]  이따금씩 잠을 자는 중에도 두 눈은 바쁘게 움직인다. 만들어진 세상 속에서 치열하게 사는 동안 지쳐있던 마음이 또 다른 세계를 만든다. 한 밤중의 꿈속에서. 가끔은 너무 현실 같고, 어떤 때이면 예언 같기도 한, 꿈 이야기. 감독인 미셸 공드리(Michel Gondry)는 영화 <수면의 과학>(La Science des reves, The Science Of Sleep, 2005)의 주인공 스테판을 통해 상상과 현실 혹은 우리가 쉽게 인지하지 못하는 재현의 경계를 표현한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어디서부터 꿈이고 언제부터 현재인지 장면의 전환이 애매모호하고 산만하기까지 하다. 마치 현실을 정의할 수 있는 가능한 모든 조건들을 거부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틈틈이 출현하는 귀여운 소품들과 엉뚱한 발명품들이 영화의 재미와 환상적인 분위기를 더해준다.

   

▲ ⓒ 프랑스어판 영화 포스터

부모님의 이혼 후 아버지를 따라 멕시코에서 살던 스테판(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은 독특한 생각을 지닌 발명가이다. 그는 보통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할 만큼 독창적인 사고를 지닌 예술가이지만 어머니의 권유로 프랑스의 한 달력 회사에 취직하게 된다. 하지만 달력삽화를 담당하게 될 거라는 스테판의 예상과 달리, 그는 인쇄된 필름 활자를 붙이는 단순 작업을 떠맡는다. 낙담한 그에게 사수인 기(알랭 샤바)는 커다란 포트폴리오에 담겨있던 스테판의 그림을 사장에게 보여 줄 기회를 제공한다. 그러나 아무도 그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며 비웃음거리가 된다. 일에 적응해 보려고 노력하지만 손이 거대해지는 꿈을 꾸는 등, 현재의 일은 스테판을 괴롭힐 뿐이다. 이 장면은 실제 감독이 어린 시절에 꾸었던 악몽을 각색한 것이라고 한다(wikipedia).

   
▲ ⓒ 네이버 영화 스틸컷=기와 스테판
   
▲ ⓒ 네이버 영화 스틸컷=스테판의 독심술기계를 시험해 보는 스테파니와, 지켜보는 조이

때로는 일상보다 꿈이 더 즐겁고 현실에 가까운 스테판에게 스테파니(샤를로뜨 갱스부르)라는 대상이 나타난다. 그는 점차 자신의 영혼과 너무나 닮은 옆집의 그녀에게 이끌린다. 하지만 그것이 이성간의 사랑인지 형제같은 우애인지 알아채지 못하는 스테판. 어린아이와 같은 스테판은 독심술 기계, 1초 타임머신, 달리는 말 인형을 스테파니에게 선물하면서도 자신의 감정이 무엇인지 정리할 수가 없다. 스테판과 스테파니, 이름도 취향도 성격도 비슷한 그들은 서서히 끌린다. 하지만 너무 닮아서일까, 같은 극끼리 밀어내는 자석처럼 그들은 너무 가까이 있지만 현실에선 완전히 함께하지 못한다. 70세가 넘어서 결혼하자는 스테판의 황당무계함, 그에게 사랑이란 정의할 수 있는 감정이 아닌것 같다. 

재미있는 점은 그가 스테파니를 좋아하는 이유가 자신처럼 무언가를 만들기 때문이었다. 스테판은 그녀가 만들던 배를 본 뒤 배경을 만들기 위한 작업에 동참하기로 한다. 특히 그들은 바다를 잘 표현하기 위한 방법을 연구한다. 그러던 중 동시에 번쩍이는 아이디어를 떠올리곤, 흰색과 파란색의 셀로판 용지를 이용해 꾸미기로 한다. 그런데 스테판의 작업을 지켜보던 그녀의 한마디,

“자연스러움을 얻기란 힘들어. 잠깐 한눈팔면 금세 질서가 끼어들지.”

이 말은 세상에 얼마나 많은 패턴 혹은 형식들이 나 자신의 자연스러움을 방해하고 있는지 돌이켜 보게 한다. 그리고 스테판 역시 동의한다, “모든 질서에 죽음을!”

   
▲ ⓒ 네이버 영화 스틸컷=스테판의 스튜디오

영화는 끊임없이 패턴(pattern)과 체계성(organization)을 거부한다.

즉 무엇도 정의하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친다. 특히 내용의 시점을 정확히 구분하기가 힘들다. 종이박스 같은 방 안에 있는 스테판이 현재인지, 스토리가 전개되는 달력회사 직원인 스테판이 진짜인지, 눈을 감고 폐허가 된 세계에서 주변 사람들과 만나는 스테판의 이야기가 진심인지, 알 수가 없다. 심지어 장면들이 넘어가는 경계선도 선명하지 않다. 또한 인물들 사이에서 스페인어, 영어, 프랑스어가 수시로 뒤섞인다.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스테판의 정신세계가 끊임없이 영화를 보는 시청자의 두 눈과 귀를 어지럽힌다.

영화의 첫 번째 장면과 마지막 장면을 떠올려 보면 확실히 현실의 차원과 거리가 멀다. 스테판이 자신의 꿈속에 들어가 그리워하던 아버지를 만나는 영상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은 스테파니의 말 인형으로 변신한 스테판이 그녀와 함께 배를 타고, 함께 만든 바다를 건너는 그의 꿈속이 펼쳐진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우리가 보고 있는 영상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진짜 스테판의 기억이고 허구적 상상일까. 무언가 명확하게 정리하고 싶은 욕구가 솟아오르지만 할 수가 없다. 정의할 수 없는 상태, 우리의 정신을 무방비로 만들어 버리는 것, 그 곳에서 다시 생각해보자는 명령. 영화는 이 모든 작업을 실천하면서 마치 스테판의 창의적인 두뇌를 체험하도록 만든 것 같다. 인간이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신이 될 수는 없지만, 공드리는 <수면의 과학>을 통해 모든 경계를 허물고 인간으로서 무언가를 창조해낼 수 있는 가장 순수한 상태를 만들고, 재현하려던 것이 아니었을까.

   
▲ ⓒ 네이버 영화 스틸컷=마지막 장면에서 스테판과 스테파니

가끔은, 아니 습관적으로 어떤 사건이나 사람에 대한 의미를 찾고 정의하기에 급급한 것 같다. 그것은 나에 대해서도 예외가 아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이 일이 내게 왜 일어나는 것인지, 나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등등에 관해서 말이다. 그런데 과연 ‘알고 있다’는 사실 속에, 얼마나 많은 형식과 개념들이 불순물처럼 끼어드는지 가늠해 볼 수나 있을까? 영화는 마치 잠깐이라도 나에게 덧입혀진 직조물을 찢어버리자고, 그 틈새로 세상을 바라보고 살아보면 어떠냐고 말하는 것 같다. 그리고 때로는 내가 아는 것들에 대해 한 번쯤 진지하게 고민해보자는 공드리의 속삭임과 더불어, 이제 영화는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스테판과 스테파니의 어떤 세계와 엔딩을 진실로 믿을 것인가? 혹은 스테판이 잠에서 깬 이후의 또 다른 결말을 만들어 보는 건 어떤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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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지나
gkam@thearti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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