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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Focus Features | ||
[디아티스트매거진=문설연] 사랑에는 다양한 양상이 있다. 이성간의 사랑,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 넓게 본다면 형제애와 전우애, 그리고 인간이 아닌 것들―애완동물이나 취미―에 대한 사랑까지도 당연하게 사랑의 형태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동성 사이의 사랑에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혐오를 당당하게 드러낸다. 가장 진보적인 축에 속한다는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도 동성애에 관한 기사의 댓글은 인격 모독적 발언이 대부분이다.
보다 개방적인 미국과 유럽에서는 유명 인사들의 커밍아웃이 드물지 않으며, 동성애를 치료해야 할 정신병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인식이 이 정도로 바뀌기까지는 험난한 역사가 있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엄청난 차별과 억압이 존재했다. 증오 범죄가 번번이 발생했고, 동성애 성향은 해고의 정당한 이유였다. 20세기 말이 되어서야 비로소 동성애자들은 정상과 비정상의 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흑인과 여성보다도 한참이 늦은 때였다.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2005)의 배경은 동성애가 금기시되던 1960년대 미국이다. 가난한 두 청년 에니스와 잭은 브로크백 산에서 지내면서 방목되는 양을 돌보는 일을 맡게 된다. 둘은 살아온 배경도 이상도 다르지만 서로에게 이끌리고 사랑에 빠진다. 새벽같이 일어나 양이 코요테에게 잡혀가지는 않는지 지켜보고, 추운 밤에도 텐트에서 웅크리고 떨어야 하는 고된 작업의 연속에서 서로의 존재는 유일한 따뜻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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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Focus Features | ||
산에서 내려온 둘은 이내 각자의 현실로 돌아간다. 에니스는 자신의 약혼녀에게, 잭은 로데오 경기로. 에니스의 딸들이 태어나고 잭이 로데오 경기장에서 만난 부유한 농기계상의 딸과 결혼을 하고… 그렇게 4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어느 날 에니스에게 엽서 한 장이 날아든다. 오랜만에 재회한 둘의 눈에는 감출 수 없는 기쁨과 반가움이 흐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둘을 둘러싼 모든 상황이 변한 후에도 현실의 벽만은 변함없이 굳건했다.
에니스와 잭의 사랑은 둘의 삶을 힘들게 한다. 어쩌면 에니스는 약혼녀와 행복한 결혼 생활을 이어나가며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하게 해냈을지도 모른다. 잭은 부유하고 아름다운 부인과 이혼할 기회만을 엿볼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둘의 사랑은 다른 이들 앞에서 절대 떳떳할 수 없기에 드문 만남조차 조심스러웠고 언제나 다른 핑계 아래 숨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은 관계를 끊어내지 못한다. 애증이 자신들을 갉아먹고 있음을 느끼면서도 또 서로를 바라고 그린다. 이 사랑을 그만두는 방법을 알았으면 좋겠다는, 에니스와의 말다툼 중에 잭이 한 말마따나 시작도 끝도 의지대로 되지 않는 것이 사랑이기에.
영화는 지독히도 건조하고 현실적이다. 주인공의 경제적 궁핍함과 화목하지 못한 가족 관계를, 보는 이마저 막막할 정도로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기적적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동화의 주인공이 아닌 에니스와 잭에겐 사랑의 도피는 사치스러운 단어다. 그렇지만 그 건조함이 영화의 메시지를 한층 더 짙게 한다. 서로의 바닥까지도 온전히 바라보고 위로해줄 수 있을 정도의 깊은 사랑이 잘 드러나기 때문이다. <브로크백 마운틴>에서는 로맨스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낭만적인 밀어는 찾아볼 수 없지만 두 사람의 애틋함과 절절함이 충분히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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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Focus Features | ||
둘의 시계는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던 브로크백에서의 나날들에 멈췄다. 삶을 궤도에서 이탈시킨 그 시간은 역설적으로 둘을 살아가게도 만들었다. 그들에게 허락된 것은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작은 희망이 전부였지만 그 희망 덕분에 모든 고됨을 버텨낼 수 있었다. 브로크백은 언제나 마음 한 켠에 간직해두고 가장 힘든 순간에 소중히 꺼내볼 수 있는 기억이었을 것이다. 차마 꾸지도 못한 꿈과 이루지 못한 소망이 구름과 함께 흩어지고, 들에 누워 경계도 사슬도 없는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그런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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