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득히 높은 절벽 위에 있다고 상상해보자. 천 길 낭떠러지 아래를 내려다보고는 두려움에 힘이 빠지고 머리가 핑 돌지 않을까. 눈앞에 펼쳐진 허공이 우리를 삼킬 듯하지만, 실상 우리를 위협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언제든지 허공으로 한발 내딛을 수 있다는 선택의 자유가 우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다. 철학자 키르케고르는 이를 두고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이란 말을 남기기도 했다.
오늘날 인간은 선택 과잉의 시대에 살고 있다. 커피 한잔 마시려고 해도 수십 가지 가운데 골라야 하는 세상이다. 물질적 정신적 풍요는 인간의 삶을 윤택하게 했지만, 한편으론 불안을 생산해내는 것이기도 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선택의 순간에 직면하는 현대인은 넘치는 자유 속에서 혼란을 경험한다. 선택의 대가는 누군가 대신 짊어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선택의 폭이 넓어질수록 개인이 감당해야 할 불안의 몫도 커진다. 늘어난 선택의 자유 속에서 인간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강렬한 현기증을 느낀다.
인자오양(尹朝阳)은 <Dizziness>시리즈에서 불안한 현대인의 감정을 캔버스 위로 끄집어냈다. 일견 보아도 그의 작품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중국미술의 모습과 거리가 멀다. 그는 정치적 소재에 천착한 이전세대 작가들과는 달리 개인의 내면 탐구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는 1970년 생으로 중국공산당체제 속에서 서구자본주의를 경험하며 자란 세대다. 70년대 말 시작된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은 경제체제 뿐만 아니라 기저의 사회구조까지 바꿔놓았다. 기존의 공산주의적 가치가 전복되면서 개인은 냉혹한 자본주의 정글에 내던져졌다. 갑자기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져야하는 상황 속에서, 어린 작가가 불안감을 느꼈음은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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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晕眩>, 2011년, 150x130cm / <晕眩>, 2013년, 150x130cm ⓒ尹朝阳 | ||
그림은 언뜻 격렬한 감정을 표현한 추상화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희미하게 얼굴의 형태가 남아있다. 표정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뭉그러진 얼굴, 여러 색이 혼합된 불편한 색의 조화는 감상자의 어지러움을 유발한다. 마구 짓이겨진 터치는 불안정한 현대인의 내면을 폭로하는 듯하다. 여러모로 ‘현기증’이란 제목이 잘 어울리는 작품이다.
작가는 불안이란 감정을 이끌어내기 위해 독특한 방법을 사용한다. 우선 캔버스 위에 유화물감으로 친구나 지인, 혹은 자신의 얼굴을 그린다. 그리고 물감이 채 마르기 전에 손으로 캔버스를 문질러 형체를 짓뭉개버린다. 무슨 표정을 지었는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 그림은 추상과 구상의 경계에 위치하게 된다.
일련의 과정을 통해 본래의 초상이 가지고 있던 의미는 사라진다. 완성된 그림은 오히려 불완전해지지만, 이는 작품에 최종적인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려는 작가의 장치다. 해체된 얼굴은 하나의 의미로 해석되길 거부하며, 보는 이로 하여금 다양한 감상을 유도한다. 감상자는 판단을 부추기는 외형이 아니라 숨겨진 실체를 파악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하게 된다.
불분명한 형태 속에 가려진 실체는 좀처럼 포착되지 않는다. 오히려 작품에 대한 다양한 해석만을 남길 뿐이다. 눈앞에 펼쳐진 해석의 자유 속에서 감상자는 또 다른 불안과 마주하게 된다. 형태의 모호함이 도리어 불안의 감정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불안에 다가서기 위한 작가의 의도가 적중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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