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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를 입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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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여름이 왔음을 느끼는 요즘, 그간 입으려고 기대하며 꺼내놓은 색색깔의 팬츠들을 걸어 놓고는 행복한 고민을 한다. 스트라이프 셔츠에 무심하게 밑단을 접은 빨간 면바지에 가벼운 로퍼를 신고 나오니 무거운 짐을 벗은 듯 가벼웠다. 약속 없는 주말이지만 그게 오히려 반가울 정도로 시내를 걸었다.

 여름이 되면 남성복의 컬러도 여성복만큼 밝아진다. 블랙, 네이비, 그레이에서 블루는 물론이거니와 오렌지, 레드, 옐로우까지 2~3년전부터 과감한 컬러들이 남성복에서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시작은 조그만한 액세사리부터 셔츠와 바지를 거쳐 지금은 자켓이나 코트까지 다양한 범위에서 일어난다. 보고 있으면 저걸 어떻게 입나 싶지만 막상 입어보면 화사한 컬러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모노톤의 옷들은 시크하고 정제된 매력이 있지만 입고 있다보면 슬슬 지겹다는 느낌이 있다. 그래서 필자가 시도한 것은 레드 컬러의 데님 팬츠였다. 아주 강한 빨간 색은 아니고 살짝 빛바랜듯한 워싱이 들어간 다홍색 데님은 지금처럼 남성들이 컬러를 자유롭게 입기 전인 7년전에 처음 입었다. 패션에 있어서는 과감함을 즐기는 편이지만, 빨간 바지는 사실 좀 꺼려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 때 옷장을 가득 채웠던 모노톤의 옷들을 생각하니 이런 팬츠 하나 장만해두면 간간히 입기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구매를 하게 되었다. 그 팬츠를 입고 다니면 사람들의 반응은 대체로 처음엔 어려워하다가도 점차 컬러가 이쁘다며 관심을 두었다. 특히 여성들이 좋은 반응을 보였는데 대부분 남성들이 입고 다니는 옷의 컬러가 한정적이다 보니 조금 튀는 컬러의 옷이 새로우면서 나쁘지 않게 보인 것이다.

   
 

출처 : StreetFSN

 레드 데님 팬츠에 적응한 나는 후에 아주 선명한 컬러의 빨간 면바지를 구입했다. 면바지이지만 수트 바지처럼 앞에 주름을 잡아 매우 포멀해 보이는 이 바지는 나의 봄/여름 히트 아이템이 되었다. 흰 셔츠와 로퍼를 함께 코디하면 어딜 가든 사람들의 시선을 잡았다. 강렬한 컬러이지만 경쾌한 느낌을 주는 정도의 짧은 기장감은 발목을 시원하게 드러내어 봄과 여름을 나타내는 적합한 스타일을 만들어 주었다.

 그 이후 분홍색의 스트라이프 폴로 셔츠를 구입하기도 하고, 오렌지 컬러의 가벼운 가디건을 구입하기도 하였다. 보통 따뜻한 컬러를 많이 구입하였는데, 이 컬러들이 대부분의 남성들이 잘 입지 않는 컬러군이다. 우리가 대부분 여성들에게나 어울리는 컬러라고 생각하는 것들인데, 막상 입어보면 그런 구분이 무의미하다는 걸 알게 된다.

 생각해보면 어릴 때 우린 색깔로 남성성과 여성성을 나누곤 했다. 특히 남성은 블루, 여성은 핑크로 하여 나눈 적이 많았다. 화장실에 있는 그림은 보통 그렇게 나뉘어진 컬러로 칠해진 것들이 많은데, 이런 구분이 옷에서도 적용되어 우리에게 다양한, 특히 따뜻한 컬러를 입기 주저하게 만든 것이다. 왜 분홍색 셔츠를 입으면 여자아이라고 놀림받을 것 같은 기분이랄까.

 그러나 패션에서 컬러만큼은 남성과 여성의 구분이 없다. 여성들이 그런 것과 상관 없이 블루 컬러를 입듯, 남성들 또한 핑크 컬러를 입어도 무방하다. 아이템의 문제이지 컬러의 문제는 아니다. 다만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걸릴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컬러가 강한 아이템을 입는데 주의해야 할 점이 없는 건 아니다. 가령 예를 들어 핑크색 스트라이프 셔츠에 빨간 면팬츠를 입는다면 어떨까. 과하다는 생각부터 든다. 이전 컬럼에서 언급한 것처럼 강한 아이템을 입을 땐, 나머지는 모두 베이직한 것을 고르는 것이 좋다. 가령 레드 면팬츠를 입을 때는 화이트 셔츠나 티셔츠에 무난한 운동화나 로퍼가 좋겠다. 쉽게 말해 레드 팬츠만 살리는 룩을 연출하면 된다. 괜시리 컬러 맞춘다고 어설프게 다른 아이템에서도 비슷한 컬러로 갔다간 광대 같다는 놀림을 받을 수도 있다.

   
 

출처 : StreetFSN

 그리고 가능한한 디자인이 절제된 옷이 좋겠다. 배기 팬츠가 대부분 모노톤인건 컬러마저 들어가면 너무 과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컬러가 강한 옷은 최대한 디자인은 베이직한 것이 좋다. 컬러만으로도 충분히 강하기 때문에, 그리고 컬러가 강할 수록 디자인은 베이직한 것이 하나에만 힘을 줄 수 있다. 또한 다른 아이템도 가능한 베이직한 아이템으로 코디하는게 좋다. 레드 면팬츠에 베이직한 화이트 셔츠, 그리고 짙은 네이비 블레이져면 딱이다. 컬러가 강한 옷을 입을 땐 어떤 디자인도 시도하지 말자. 오로지 보는 사람이 나의 컬러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게 좋다.

 만약 컬러 있는 옷을 처음 시도해본다면 셔츠나 니트처럼 상의 중에서도 탑(TOP)이 좋겠다. 핑크 스트라이프 셔츠나 핑크 셔츠는 폴로나 빈폴 같은 디자인이 어렵지 않은 브랜드에서 매시즌 판매되는 아이템인데, 옥스포드 소재 ( 소재의 조직감이 육안으로 보이는 캐주얼한 셔츠 소재 ) 로 된 것은 캐주얼하여 컬러의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컬러도 조금 연한 편이여서 처음 시도하기에 어렵지 않다. 이 셔츠에 네이비나 베이지 면팬츠 혹은 생지 데님 팬츠를 같이 입어주면 부담 없이 컬러를 즐길 수 있다. 탑이 시작하기에 부담없는 이유는 이미 셔츠 같은 경우 다양한 체크 셔츠를 통해 컬러를 표현해왔기 때문이다. 또한 컬러가 강해도 상의는 자켓이나 가디건처럼 가릴 수 있고, 시선 또한 하의보다 덜 간다. 하의의 컬러가 강하면 그만큼 사람들의 시선도 오래도록 고정되고 기억도 오래 된다. 그간의 남성들이 입는 하의의 컬러는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처음 시도할 때는 포멀한 느낌보다는 캐주얼을 추천한다. 앞에서 언급한 폴로나 빈폴의 핑크 셔츠처럼 캐주얼한 아이템은 컬러가 조금 강해도 디자인이나 소재가 담백한 느낌이 들어 그다지 부담감이 없다. 포멀한 아이템은 그 자체만으로도 살짝 부담이 될 수 있는데 거기에다가 컬러까지 가면 더 부담이 커진다. 컬러가 아직 어렵다면 캐주얼한 아이템들을 먼저 시도하는 것이 좋겠다.

 이번 여름을 위해 나는 레드 린넨 재킷을 구입하였다. 재킷을 레드로 입는 건 정말 용기가 필요하지만 그만큼 재미가 있다. 사람들의 반응, 어디에서나 쉽게 보지 못하는 스타일, 무엇보다도 여름에 가장 어울리는 모습이랄까. 만약 서울 어디에선가 레드 린넨 재킷을 입는 남자를 본다면 나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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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영훈
natu84@thearti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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