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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번 여행기.

박웅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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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티스트매거진=박웅] 다윈을 떠나는 비행기는 오전 1시였다. 저렴한 가격 탓에 야간비행을 즐겨하고는 했지만 언제나 적응이 되지 않았다. 수하물이 11KG이나 초과되어 눈물을 머금고 옷가지와 책들을 국제공항의 쓰레기통에 버린 뒤 씩씩 대며 검색대에 들어갔지만 체크인 수하물에 있는 줄 알았던 가위가 내 가방에 있었던 탓에 두 번이나 검색을 받았고 그 때문에 신경이 예민해져 있는 상태였다. 아마 지난 반년의 시간을 보낸 북부를 떠나 호주의 남쪽으로 내려간다는 사실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멜번으로 향하기 전의 심경은 복잡했다. 예측 가능했던 일상은 견디기 어려웠고 끝이 나기를 바랐었다. 정작 그렇게 끝이 난 다음 드넓은 불확실성의 여정이 내 앞에 펼쳐지자 다시 한 번 모든 것을 내 스스로 챙겨내야 한다는 번거로움과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흥분어린 긴장이 찾아왔다. 나는 그렇게 멜번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불편한 이코노미 석에서 한 숨 자고 나자 발밑에는 오랜 시간 보지 못한 땅이 펼쳐져 있었다. 빅토리아 주의 푸르른 녹지는 내가 5시간을 비행해 왔음을 알려주었고 동시에 멜번이 머지않았음을 알려주었다. 멜번은 추웠다. 입에서 입김이 나왔다. 내 입에서 마지막으로 입김이 나온 것은 9개월 전 인천에서였다. 수하물을 찾자마자 주섬주섬 옷을 껴입고 도심으로 향하는 스카이 버스에 올랐다. 고맙게도 내 호주 친구의 여동생이 내가 멜번에 있는 동안 그 집에 머무는 것을 허락해준 덕에 나는 서던 크로스역에서 20분 가량 떨어진 호손 역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해 룸메이트와 간단히 이야기를 나눈 다음 지갑과 카메라와 가이드북을 챙겨 다시 도시로 향하는 열차에 올랐다.

   
▲ 멜번 시내의 대표적 교통수단인 트램.

호주에 살며 호주인에게든 호주를 여행하는 외국인에게든 멜번이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 도시에 대한 나의 기대감은 한참 올라있었지만 그 이상으로 멜번은 좋았다. 어쩌면 도시가 추워서였는지도 몰랐다. 찬 공기는 6개월 간 적도 부근을 오갔던 나에게 이질감을 안겨주었고 남반구의 런던이라 불리는 멜번의 고풍스러움과 흐린 날씨는 황량한 아웃백 한가운데 머물던 나에게 마치 유럽에라도 온 듯한 느낌을 주었다.

역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남자에게 멜번 센트럴에서 페데레이션 스퀘어로 가는 길을 물었으나 문제는 그 역시 이곳에 도착한지 5일 밖에 안 되었다는 점이었다. 그는 영국의 작은 섬 건지에서 왔다. 워킹 홀리데이 비자를 신청했을 때 그는 취해있었다. 비자는 4시간 만에 승인되었고 여전히 취해있었던 그는 한 달 뒤 멜번으로 향하는 비행기 표를 구입했다. 우리는 함께 페데레이션 스퀘어로 향했다. 멜번의 중심지는 페데레이션 스퀘어이고 그 옆에는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에 등장해 유명해진 플린더스 역이 있다. 역의 뒤편에는 아라 강이 흐르고 강을 따라 걷다 보면 호주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크라운 카지노가 나온다. 우리는 아라 강을 따라 걷다가 가이드북의 지침을 따라 피츠로이 가든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 센트럴 스테이션
   
▲ 플린더스 역. 가장 아름다운 기차역 중 하나다.

   
▲ 고풍스러운 양식의 교회.

호주의 자동차 번호판에는 각 주의 별칭이 붙어있는데 예컨대 노던 테리토리 주는 ‘아웃백 오스트레일리아’ 퀸즈랜드 주는 ‘선샤인 스테이트’ 이다. 현재 빅토리아 주의 별칭은 ‘더 플레이스 투 비’ 이지만 예전 빅토리아 주의 별칭은 ‘가든 스테이트’였다. 그만큼 영국식으로 잘 꾸며놓은 정원의 진수를 느낄 수 있는 도시가 멜번이다. 호주를 처음 발견한 캡틴 쿡의 오두막이 피츠로이 가든에 있었지만 입장료를 내야했고 우리는 그저 걷고 또 걷다가 크리스토프의 추천으로 시내에서 15분 정도 떨어진 세인트 길다 해변에 가기로 했다.

멜번의 대중교통에 아직 익숙하지 않았던 우리는 그만 반대방향의 트램을 타버렸다. 마찬가지로 세인트 킬다로 향하던 독일인 한 명도 함께 낭패를 보았다. 세 이방인은 왔던 방향으로 되돌아가는 같은 번호의 트램을 탔고 내려서 조금 더 걸은 다음에야 세인트 킬다에 도착했다. 세인트 킬다의 바다를 바라보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지금 내가 태어나서 가장 남쪽에 와있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보고 있는 저 바다의 남쪽으로는 타즈메니아 섬이 있고 그 너머에는 남극이 있었다. 타즈메니아를 넘으면 내 앞에 남극이 있다는 사실이 지평선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했다. 크리스토프는 맥주 한 병을 9달러나 주고 마시며 끊임없이 투덜대고 있었다. 호주는 비싼 나라다. 유럽인들도 모두 인정하는 바였다.

해가 저물어가자 우리는 다음 날 차를 렌트해 그레이트 오션로드에 가기로 약속한 뒤 헤어졌다. 호손으로 돌아가 내가 묵는 것을 허락해준 톰스를 만나 인사하고 이야기를 나눈 뒤 멜번에서의 첫날밤을 맞이했다. 추워서 잠이 오지 않았고 자주 깼다. 날이 밝자 크리스토프와 토니와 나는 약속한대로 멜번 센트럴에서 다시 만났다. 더 싼 가격에 차를 빌리기 위해 멜번 거리를 두 시간은 왔다 갔다 한 끝에야 우리는 하루에 74불을 주고 현대 i20을 빌려 도시를 벗어날 수 있었다.

호주는 차로 여행하기 좋은 나라다. 달리다 보면 누구라도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조금의 막힌 구석도 없이 탁 트여있는 풍경과 도시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교통체증 없이 쭉쭉 뻗어있는 도로는 아무 생각 없이 밖을 내다보며 달리기에 좋다. 풋볼 팀으로 유명한 길롱에 들러 잠시 휴식을 취한 뒤 1시간 여 정도를 더 달려 우리는 그레이트 오션 로드가 시작되는 토키에 도착했다. 그 곳을 조금 더 지나 우리는 등대를 보았고 차를 세웠다. 바다가 있었다. 절벽 위에 등대가 있었고 바다의 왼편으로 언덕이 있었다. 바다는 넓고 푸르렀다. 여지껏 본 바다 중 가장 시원한 바다였다. 저 뻥 뚫려있는 무한한 물의 향연이 너무나 시원해 보였다. 나는 좋아서 머리를 싸매며 내 앞에 펼쳐진 모습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사진은 저 대양의 푸르른 시원함의 100분의 1도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고 파도는 연달아 포말을 일으키며 땅을 적셨다 물러나고는 했다. 오래 도록 보고픈 장면이었지만 더 나아갈수록 더 대단한 것들을 보게 되리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우리는 다시 차에 올랐다.

   
여지껏 내가 만난 모든 독일인들은 대단한 여행가였다.

그레이트 오션로드는 이름 그대로였다. 더 적절한 이름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대단했고 바다가 있었으며 그 사이로 난 길이었다. 커브가 많았고 가끔가다 직선 구간이 있었다. 핸드폰 신호는 계속 잡혔다 끊겼다가 했다. 나라가 넓은 호주에서는 자주 있는 일이었다. 우리는 아폴로 베이에 멈춰 장을 보았다. 가난한 여행자답게 빵과 소시지와 칠리소스가 전부였지만 맥주를 사는 일은 잊지 않았다. 오랜 운전으로 피곤해진 몸을 잠시 쉬이며 근처에 적절한 바비큐 장소를 검색한 뒤 다시 차에 올랐다. 보통 외진 지역의 바비큐 장소는 한 번에 1달러 정도를 내야하지만 간혹 공짜로 이용할 수 있는 곳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 곳에서 저녁을 먹고 밤을 보내기 위해 해변 가를 벗어나 내륙 쪽으로 들어갔다. 땅의 풍경은 바다 못지않았다. 짙은 색의 초원은 끝없이 드넓었고 그 초원에서 풀을 뜯어먹는 소와 양 떼는 목가적이었다. 웨일스에는 단 한 번도 가본 적이 없고 자세히 아는 바도 없었지만 자꾸만 웨일스가 떠올랐다. 앞과 뒤에 아무도 없는 길을 때로는 음악을 배경삼아 때로는 대화를 배경삼아 달리고 또 달려 해가 가물 무렵 캠핑장에 도착했다.

문이 굳게 잠긴 건물의 처마 밑에 아무도 청소하지 않아 더러운 바비큐가 있었고 조금 떨어진 곳에 화장실이, 바로 옆에는 개인 소유의 소목장이 있었다. 이방인에 호기심을 느낀 건지 소시지를 굽는 냄새에 흥미가 동했는지 찬 물과 찢은 종이로 대충 바비큐를 청소하고 소시지와 빵을 굽는 우리 근처로 연신 검은 소들이 모여들다 가까이 다가가면 우르르 도망가기를 반복했다. 구운 빵 사이에 소시지를 넣고 그 위에 칠리소스를 뿌린 햄버거와 2달러를 주고 산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크림 파스타, 그리고 맥주와 함께 먹기 위해 산 도리토스가 저녁의 전부였지만 여행 중의 음식은 맛이 아니라 분위기로 먹는 것이라는 아는 사람만 아는 진실을 환기시켜 주기에는 충분한 만찬이었다.

밤은 추웠고 현대 I 20는 세 명의 성인남성이 하룻밤을 지내기에 적절한 장소가 아니었다. 시동을 껐기에 히터가 켜지지 않아 더욱 그랬다. 침낭을 가져온 토니만이 곤히 잠들었을 뿐 나는 중간 중간 허리와 목을 부여잡고 잠에서 깨어났다 다시 잠들려 노력하기를 반복했고 크리스토프는 말 그대로 한 숨도 못 자고 밤을 지새웠다. 추움과 불편함 중 무엇이 더 괴로웠는지는 비교하기 어려웠다. 특이한 의미로 잊지 못할 밤이었다. 아침이 오자 우리는 전날 남은 소시지와 빵으로 아침을 때운 뒤 다시 길 위에 올랐다. 검은 소들은 콧물 까지 흘려가며 우리의 아침식사를 관찰했고 우리는 그런 소들을 관찰하며 밥을 먹었다.

우리는 유명한 12사도 상을 보러 가고 싶었고 지도를 잘못 본 탓에 크게 우회한 다음에야 그레이트 오션로드에 다시 이를 수 있었다. 우리는 길을 따라 달리다 로드 아치의 표지판을 보고 차를 세웠다. 썬더 케이브가 어떤 곳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나름 유명한 장소처럼 보였기에 우리는 화살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좁은 협곡 사이로 거대한 구멍이 나있었으며 그 구멍 사이로 끊임없이 철썩거리며 거센 파도가 쳤다. 그레이트 오션로드라는 이름처럼 ‘썬더 케이브’ 라는 이름 역시 더 적절한 이름을 찾기 어려워 보였다. 물이 바위를 때리는 소리는 천둥 같았고 그 구멍은 동굴 같아 보였으니까. 썬더 케이브의 반대편에는 기나긴 해안절벽이 있었다. 짙은 회색빛의 풀들이 무성한 대지 위의 들판 너머 노란 빛의 해안 절벽은 남쪽 바다를 마주보고 묵묵히 서있었다. 많은 곳을 다녀보았지만 자연이 만들어낸 거대함 앞에 인간이 만들어낸 거대함은 조금의 상대도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풍경이었다.

   
▲ 호주의 남쪽. 거기에도 호주를 둘러싸고 있는 푸른 바다가 있었다.

그레이트 오션로드의 볼거리 중 가장 유명한 12사도 상은 뻔하게도 정말 그랬다. 가장 유명할 만 했고 가장 볼 만 했다. 개중 몇몇은 시간과 파도를 버티지 못한 탓에 남은 바위기둥들은 8개였지만 굳이 세 보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다. 12사도 상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에 대해 그림과 함께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안내판이 있었지만 슥 보고 넘겼다. 중요한 것은 지금 내 눈앞에 12사도 상이 있다는 것이었으니까. 우리는 높은 절벽 위에서 12사도 상을 본 뒤 해안으로 내려가 보기로 했다. 해안으로 내려가는 길은 차로 5분 여 정도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원시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한 바다였다. 주위에 아무도 없었더라면 내가 5만년 전 호주에 와있다고 해도 그대로 믿을 만큼 태곳적의 느낌이 생연한 바다였다. 관광지 특유의 번잡스러움이 없어서 좋았다. 바다가 있었고 그 바다 뒤로 탄탄하게 서있는 절벽이 끝없이 이어져 있었으며 저 멀리 12사도 상이 보였다. 문득 세인트 킬다가 더 남쪽일까 이곳이 더 남쪽일까 고민하다 이곳이 더 남쪽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다면 바로 여기가 내 인생에서 가장 아래로 내려온 곳인 것이다. 남극과 나 사이에 타즈매니아를 제외하면 아무 것도 없다는 생각이 다시 들자 기분이 좋아졌다. 우리는 그곳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크리스토프는 약간 지루해 하는 듯 보였지만 토니는 사진을 찍기에 바빴고 나는 그저 그곳에 오래 있고 싶었다. 파도가 쉼 없이 밀려왔다 다시 쓸려나갔다. 바다의 색은 동해와도 달랐고 발리와도 달랐다. 동해물이 검은 색이고 발리의 물은 달력 표지에서나 볼 법한 총천연색이라면 호주의 남쪽 바다는 시원한 푸른색이었다. 시원한 푸른 색.

   
▲ 호주의 바다는 시원하다. 정말로 그렇다.

토니와 크리스토프는 지친 나머지 바로 멜번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지만 나는 런던 브리지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12사도 상에서 불과 10분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둘은 차에서 휴식을 취하고 나는 혼자 런던 브리지로 향했다. 한 눈에 들어오는 풍경이었으나 온 보람은 있었다. 마지막으로 대양을 눈에 담은 뒤 우리는 멜번으로 향했다. 돌아오는 길은 고되고 길었다. 전날 밤이 고생스러웠던 탓에 모두가 기진맥진이었고 토니는 해변을 걷다가 발까지 다쳤다. 크리스토프의 집에서 렌트한 차를 청소한 뒤 인사를 나누고 호손에 돌아와 바로 잠들고 싶었지만 룸메이트들과 조금 더 밤늦게 까지 대화를 나눈 뒤에야 나는 잠들 수 있었다.

다음 날은 멜번에서의 마지막 날이었다. 그레이트 오션로드로 향한 여정이 워낙 피로했던 지라 낮 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룸메이트들과 수다를 떨며 푹 쉬다 해가 정오를 넘긴 이후에야 주섬주섬 나갈 준비를 했다. 이제는 필요하지 않은 보라색 캐리어를 한국으로 보내고 멜번의 야경을 감상할 참이었다. 캐리어는 다윈 공항에서 많은 짐들을 버린 탓에 상당히 가벼워 져 있었지만 여전히 더 버릴 것들이 남아있었다. 여행을 하면 할수록 짐들은 가벼워 졌고 더 잘 버리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다른 것들은 아무래도 좋지만 책들을 버리게 된 일이 아쉬웠다. 호주에서 꾸준히 받아 읽은 책의 무게가 10KG는 넘었기에 어쩔 수 없었지만 영 찜찜하게 느껴졌다. 가난한 여행자에게 그 책을 모두 한국으로 보내는 비용은 만만치 않았다.

플린더스 스트리트에 위치한 한인 마트에서 45불을 주고 캐리어를 보내자 속이 시원했다. 내내 끌고 다니던 무거운 짐이 사라지자 후련했다. 이제 나에게는 정말 백팩 하나만 남은 것이다. 가벼워졌다. 여행에 좋은 일이었다. 짐을 보내고 나는 퀸 스트리트 마켓을 향해 걸었다. 한국의 재래시장과 비슷한 풍경이었다. 1KG에 2달러 하는 덜 익은 바나나 한 송이를 주섬주섬 까먹으며 여유 있게 둘러보다 한 쪽 구석에 쭈그려 앉아 통화를 하며 눈물을 훔치고 있는 중국인으로 보이는 아주머니를 보았다. 그저 보았을 뿐이다. 바나나를 건네기에는 그만한 용기가 없었고 통화 중인 아주머니에게 다가가 ‘죄송하지만 무슨 일인가요?’ 하고 묻는 것도 주제 넘는 일이었다. 그저 힐끔힐끔 보다가 내 갈 길을 간 것이 전부이지만 이렇게 구태여 적는 이유는 여행 중에는 찰나이지만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순간이 있고 그게 그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순간은 이 날 오후 해가 질 무렵 다시 한 번 찾아왔다.

퀸 빅토리아 마켓을 떠난 나는 무료 트램을 타고 도크랜드를 잠시 둘러본 뒤 로열 보타닉 가든으로 향했다. 플린더스 역에서 다리를 건너 전사 군인들을 추모하는 사원을 둘러본 뒤 로열 보타닉 가든에 도착했을 때는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이라 걷기에 좋았다. 폐장이 가까운 시간이었지만 멜번의 연인과 가족들은 여유로웠다. 그 곳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 아무것도 하지 않음이 마음에 들었고 종일 걸은 탓에 다리가 저릿해졌지만 걷고 또 걸었다.

텅 빈 벤치에는 꽃다발이 놓여 있었다. 멜번 중심부의 고층빌딩 너머로 해가 지는 모습을 볼 수 있도록 서쪽을 향해 놓인 벤치였다. 호기심을 느낀 나는 가까이 다가갔다. 꽃다발은 테이프로 벤치에 감겨져 있었고 안에는 메모가 적힌 종이가 담겨져 있었다.

‘헤이든에게,

당신이 없는 당신의 생일에 일어나야 하는 일은 우리에게 너무도 가슴 찢어지는 일이에요.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함께했던 수많은 소중했던 순간들에 미소지을 수 있어 감사해요. 오늘 우리는 늘 그랬듯 집에서 만든 토스트와 케익으로 밤을 축하할 거에요. 당신이 어디선가 오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길 바래요…..

이 세상에게 당신은 그저 한 사람일 뿐이었지만 당신은 우리에게 이 세상 전부였어요.

남자는 어쩌다 죽게 되었을까. 이 벤치는 남자와 여자의 추억이 있는 곳일까. 여자는 매년 여기에 꽃다발과 메모를 남기는 일이 일상이 되어버렸을까. 이 꽃다발은 언제까지 이곳에서 해가 지는 모습을 바라볼 수 있을까. 이 꽃다발을 치워야할 누군가는 이 메모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까. 지금 지는 해를 받아내고 있는 도시의 빌딩에서 남자의 자리는 어디였을까. 있기는 했을까. 있었다면 남자가 죽고 난 다음 남겨진 아내와 아이들에게도 저 빌딩의 한 구석은 허락되었을까. 수많은 물음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문득 도시는 이야기가 살고 있는 곳이라는 새삼스러운 사실이 떠올랐다. 저 도시에서 수많은 이야기들이 끝이 났거나 막 시작되거나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꽃다발 앞에서 오래오래 머물렀다. 내가 꽃다발 앞에서 오래 머물렀듯 이 꽃다발도 머무르고 있는 자리에 오래 머무를 수 있기를 바랐고 여자가 매년 남자의 생일에 꽃과 메모를 남기는 일에 지치는 순간이 빨리 오지 않기를 바랐다. 그래야 어느 또 다른 이방인이 마법같이 처연한 순간을 맞을 수 있을 테니까.

해가 완전히 넘어간 뒤 멜번에는 밤이 찾아왔다. 5달러가 되지 않는 도미노 피자로 저녁을 때우고 호주에서 가장 크다는 크라운 카지노를 찾았다. 호주는 내가 카지노에 입장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다. 싱가폴에서는 만 21세 이하 인 탓에 거절당했고 이번 겨울에 찾게 될 라스베가스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질 터였다. 호주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니 꼭 찾아보라는 가이드북의 말이 무색하게 카지노의 크기는 생각보다 작았다. 호주의 다른 카지노들과 다를 것이 없었다. 가난한 배낭 여행자에게는 도박에 걸 돈이 없었기에 나는 휘휘 돌아 다니며 사진을 몇 장 찍은 뒤 아라 강을 따라 플린더스 역을 향해 걸었다.

   
▲ 멜번의 크라운 카지노는 호주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 멜번의 야경

멜번에서의 마지막 밤이라는 아쉬운 마음에 플린더스 역과 페데레이션 스퀘어의 야경을 열심히 찍고 사우스 뱅크와 도시를 잇는 다리를 몇 번 오간 다음 나는 호손으로 향하는 열차에 올랐다. 아침 일찍 일어나 울룰루로 가는 비행기를 타야했지만 시간은 이미 꽤 늦어있었다. 집에 돌아간다고 해도 바로 잠들지 못할 것임을 나는 알고 있었다.

멜번에서의 마지막 밤이라는 아쉬운 마음에 플린더스 역과 페데레이션 스퀘어의 야경을 열심히 찍고 사우스 뱅크와 도시를 잇는 다리를 몇 번 오간 다음 나는 호손으로 향하는 열차에 올랐다. 아침 일찍 일어나 울룰루로 가는 비행기를 타야했지만 시간은 이미 꽤 늦어있었다. 집에 돌아간다고 해도 바로 잠들지 못할 것임을 나는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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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웅
qkrdndwkd@thearti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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