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운 이야기를 가볍게 풀어내기 위해 작가들은 종종 풍자나 패러디, 반전 등의 기교를 활용한다. 경직된 사회 분위기 아래서 민감한 주제를 직설적으로 다루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런 기법은 의미를 전달하는데 있어 효과적인 완충 작용을 한다. 분위기는 한층 부드러워지고, 감상자 입장에서도 받아들이는데 부담이 적다. 하지만 때로는 돌려 말함으로써 더 큰 효과를 거두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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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成人开会>, 1997년, 150x180cm / <打不得>, 1998년, 170x220cm ⓒ艺维全球艺术精品网 | ||
탕쯔강(唐志冈)은 앞서 말한 반어적 기교를 즐겨 사용하고, 또 잘 활용하는 작가다. 그러나 그가 처음부터 돌려 말하기를 선호했던 건 아니다. 초기 작품들을 살펴보면 그가 자신의 감정을 얼마나 직접적으로 표현하려 했는지 알 수 있다. 사실적 이미지를 바탕으로 대상의 형태와 내면세계를 거침없이 그려낸 그의 작품은 표현주의적 색채를 띤다. 강압적인 사회 문화를 고발하는 듯한 그의 작품이 중국에서 정치 제재를 받은 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억압에 대한 유쾌한 반항이랄까. 작가는 간단하게도, 그림 속 어른을 아이로 바꿔버렸다.
사실 예술 작품에서 아이의 이미지를 차용하는 일은 흔하다. 당장 우리에게 익숙한 단편소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만 해도 6살짜리 소녀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통속적인 느낌을 줄 수 있는 과부 엄마와 하숙생간의 사랑을 어린아이의 시선에서 아름답게 묘사했다. 로베르토 베니니의 영화 <인생을 아름다워>에서, 수용소의 고통스러운 현실을 보여주기 싫었던 아버지는 ‘1000점을 넘으면 탱크를 상으로 받는다’는 거짓말로 아들을 숨겨두고 보호한다. 전쟁의 폐해가 아이의 눈에 게임으로 비춰지면서 비극성은 배가 된다. 탕쯔강은 여기서 한발 더 나간다. 그는 어린아이의 시선을 빌리는데 그치지 않고, 아예 어른 역할을 맡겨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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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儿童开会>, 1999년, 130x160cm / <儿童开会>, 2002년, 180x210cm ⓒ艺维全球艺术精品网 | ||
작가에게 국제적 명성을 가져다 준 <Children in Meeting>시리즈를 살펴보자.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귀여운 아이들의 모습에 누군가는 “대한민국만세!?”가 외칠지도 모르겠다. 하하 웃는 얼굴, 하품하고 코를 파는 아이들의 행동은 다분히 희화적이다. 회의장에 흩어진 장난감, 고무공과 개는 황당한 무대효과를 연출한다. 가벼운 이미지는 감상자의 마음을 무장해제 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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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中国童话>, 2004년, 150x180cm / <中国童话-大屁股>, 2006년, 150x180cm ⓒ艺维全球艺术精品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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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작품의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다. 인민복을 입고 거수경례 하는 아이들의 행동을 단순히 놀이로 치부하기엔 위험해 보인다. 회의장의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아이들은 무언가를 토론하고 결정한다. 누군가 반대의견을 제시하면 폭력으로 응징한다. 아이들은 그런 광경이 익숙한 듯 바라만 보거나 딴청을 피운다. 이는 획일적이고 폭력적인 현대사회의 이면을, 또 거기에 무감각한 우리의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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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中国童话-玉>,2007년, 168x197cm / <中国童话>, 2006년, 150x180cm ⓒ艺维全球艺术精品网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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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中国童话>, 2005년, 130x162cm / <中国童话>, 2006년, 200x110cm ⓒ艺维全球艺术精品网 | ||
<Children in Meeting>시리즈의 성공과 더불어 작가는 좀 더 근원적인 탐색에 나선다. 이어진 <Chinese Fairytale>시리즈에서 그림 속 아이들은 좁은 회의장을 벗어나게 되지만, 한층 더 기묘한 상황에 빠지게 된다. 군복을 입은 아이들이 절벽인줄도 모르고 행군을 하다 바다로 떨어진다. 맨 위의 아이 하나가 열심히 기어오르고 있는 다른 아이들을 냅다 차버린다. 개의 교미 장면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구경한다. 까마득히 높은 다이빙대 위에 한 아이가 위태롭게 서있다. 하나같이 어딘가 보기 불편한 장면들이다.
작가는 현실에서 자주 마주치지만 입 밖으로 내기 힘든 상황을 은유적으로 그려낸다. 비정한 세계와 순수한 아이라는 상반된 이미지의 결합은 현대사회의 모순성을 증폭시킨다. 작품을 통해 감상자는 외면하고 있던 현실을 문제를 직시하게 된다. 본인이 그림 속 아이와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지도 모르겠다. 둘 중 어느 것이든,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는 것이 유쾌한 일은 아니다. 해맑은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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