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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기에 살아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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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티스트매거진=감지나] 이 시대에 모든 청년들은 취업이라는 무거운 추를 달고 산다. 심지어 살기를 포기할 정도라니, 그 무게가 예사롭지 않다. 그런데 지나 온 이십대를 곰곰이 돌이켜보면 가진 에너지의 절반이상은 사람관계의 줄다리기에 쓴 듯하다. 사실, 그 형태는 다를지라도, 누군가를 향해 전심을 다했고 집중했음을 부정하긴 어렵다. 하지만 나이를 더 먹어도 변하지 않을 것 같이, 분하게도 여전히 ‘사랑’은 끝나지 않는 자기계발의 삶에서 유일하게 계산을 하지 않아도 좋은, 그런 힘을 준다. 그리고 바로 ‘예술가’라는 자들이 조금더 힘을 보탠다.

   
▲ ⓒ 국내 영화포스터
   
▲ ⓒ Newsweek=사랑 없이 파린과 결혼하는 나세르-알리

주인공 나세르-알리(마티유 아말릭)는 어머니의 권유로 수학교사인 파린(마리아 데 메데이로스)과 사랑 없는 결혼생활을 지속한다. 그녀는 생활력이 없는 남편에게 홧김에 그의 소중한 바이올린을 부숴버린다. 사실 이 악기에는 깊은 사연이 담겨 있다. 한때 저명한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주인공은 기술적으론 완벽하지만 애절함이 없다는 스승의 질책을 받는다. 그러던 중 그에게도 첫 눈에 반하는 아름다운 연인 이레인(골쉬프테 파라하니)이 나타난다. 하지만 가난한 예술가라는 직업 때문에 그녀의 아버지로부터 결혼승낙을 얻지 못한다. 한편 아이러니하게도 현실에서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은 예술로 승화된다. 그의 애절함은 이제 바이올린의 선율 속에서 영원히 살아가고, 스승은 비로소 그의 연주를 인정하며 간직해 온 악기 하나를 건네준다. 결국 이 바이올린의 파괴는 나세르-알리에게 예술과 사랑의 소멸이며, 살아갈 이유가 빼앗긴 셈이다. 그리하여 그는 죽기로 결심한다. 영화는 그 동안의 일주일을 보여주며, 그 시간동안 주인공의 상상과 공상이 펼쳐진다.

   
▲ ⓒ 영화 원작 포스터 (프랑스)

실제로 영화를 보고 있으면 주인공은 ‘어느 예술가’뿐 아니라 ‘예술’ 그 자체인 듯하다. 이 영화가 개봉되었던 2011년, 국내에서는 제16회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어느 예술가의 마지막 일주일>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었다(공식적으로는 2013년 개봉). 그런데 사실 이 영화의 원제목이 (번역하자면) “자두치킨”(Poulet aux prunes; Chicken with Plums)이라는 다소 우스운 이름이라는 걸 아는지? 아마도 국내에서는 보다 흥미를 끌어 관객을 유도하기 위해 제목을 변경한 듯하다. 하지만 실제 원제목를 생각한다면, 이 영화가 말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애매모호하다. 그 비밀은 <어느 예술가의 마지막 일주일>에서 나세를-알리의 바이올린에 얽힌 사연과 순간의 한줌을 표현하는 연출방식에 숨겨져 있다. 이따금씩 나타나는 자욱한 담배연기와, 시각을 사로잡는 영상예술, 그리고 중간에 삽입된 애니매이션은 영화의 공동 감독이자 원작자인 이란 출신의 프랑스 작가 마르잔 사트라피(Marjane Satrapi)의 이야기와 연장선에 있다.

   
▲ ⓒ 영화의 원작 책표지

영화의 원작은 ‘그래픽 노블'(Graphic noble)이라고 불리는 새로운 문학형식이다. 영화에서도 잠깐 언급되는데, 이 영화를 작업하기 전에 사트라피는 자전적 내용이 담긴 <페르세폴리스>(Persepolice, 2000)라는 책으로 유명해졌다. 이 작품은 2007년 빈센트 파로노드(Vincent Paronnaud)와 공동 작업을 통해 애니매이션으로 탄생한다. 여기에는 그녀가 직접 경험한 이란의 역사와 오스트리아 빈에서 지낸 유학생활, 그리고 다시 돌아 간 이란에서의 삶들을 어린아이의 시각으로 묘사해 두었다. 그녀는 책 소개와 대학 강의를 비롯한 인터뷰를 통해, 많은 국가들이 무기개발에 돈을 쓰는 대신에 해외에서 아이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지원하며 삶에 여러 경험을 하도록 애써야 한다고 외친다. 그러면서 자신은 “평화주의자”라고 불리길 원한다. 이처럼 그녀에게 ‘사랑’은 남녀 간의 것으로 그치는 요소가 아니다. 그것은 가족 간의 애정, 자신의 뿌리에 대한 열망, 한 개인으로서 자신의 인생을 사랑해야 한다고 어필한다. <어느 예술가의 마지막 일주일>은 이런 맥락에서 함께 탄생한 작품이다.

“삶은 곧 예술이고, 예술의 완성은 사랑이다.”

   
▲ ⓒ 영화 스틸컷=이레인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나세르-알리

이런 사트라피의 배경을 생각해 본다면, 영화에서 나세르-알리의 유일한 사랑이었던 이레인은 여성 이상의 의미를 상징한다. 그녀의 이름은 거의 정확히 ‘이란’이라고 들린다. 여기에는 고국에 대한 원작자의 애정을 상기시켜 보게끔 만든다. <페르세폴리스>에 의하면, 그녀가 이란을 떠난 이유는 이슬람 근본주의라는 체제에 대한 반감보다는 여성 혹은 이슬람 사상을 벗어나는 행위를 절대 허용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에 대한 비판의식에 가깝다. 비슷한 맥락에서 <어느 예술가의 마지막 일주일>에서 주인공에게 이레인의 존재는, 민족(가족)에 대한 영원한 사랑을 표시하는 사트라피의 생각과 일맥상통해 보인다. 그녀에 대한 영원한 사랑을 연주하는 나세르-알리의 바이올린처럼, 사트라피에게 작품활동은 희미해지는 고국에 대한 향수를 포착하기 위한 예술적 행위이다.

   
▲ ⓒ 영화 스틸컷

많은 비평가들은 페르시아의 벽화에서 사용하는 기법처럼 보이는 사트라피의 그림체에 대하여 질문을 던진다. 색채가 풍부한 페르시안 벽화기법은 이슬람 문화가 권력을 장악하기 이전, 민족의 역사와 찬란했던 유산에 대한 사트라피의 향수를 반영한다. 반면 원작인 책과, 영화의 첫 장면과 이어지는 마지막 장면은 흑백으로 그려져 있다. 여기서 나세르-알리와 이레인은 극적으로 스치는데, 그녀의 외면으로 둘은 재회하지 못한다. 이후 그의 장례식을 지켜보는 이레인의 모습으로 영화는 끝이난다. 사트라피는 일러스트를 그릴 때 채색을 하지 않는 이유로, 그 상황을 허구로 인식하지 않고 실제를 드러내기 위함이라고 설명한다. 때론 우스꽝스럽고 황당무개하던 장면들이 그치고, 이제 무언가를 생각해 보라는 듯 흑백으로 연출되는 장면들, 대부분은 모두 죽음이 가까워 올 무렵이다.

   
▲ ⓒ 영화 스틸컷=저승사자와 마주 앉은 나세르-알리

간헐적으로 등장하는 담배연기와 흑백 장면의 대립은 시공간의 변화를 순간적으로 전환시킨다. 영화에서 나세르-알리는 죽고 싶지만 무서워서 자살을 택하지 못한다. 그는 무기력하게 침대 위에서 시간만 보낼 뿐이다. 재미있게도 화면은 순식간에 과거와 미래를 넘나든다. 그의 우울함과 감성적인 기질이 어떻게 예술가로 성장시켰으며, 또 그를 닮은 딸의 미래가 어떤 죽음을 맞이하게 될지를 냉소적으로 제시한다. 한편 우습게도 마침내 저승사자가 그를 찾아 왔을 때, 그는 죽기로 한 것을 뼈저리게 후회한다. 그러나 때는 늦었다.

영화는 ‘죽음’을 선두에 내세우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살아감’을 말한다.

사트라피는 “우리가 살아있는 존재”라는 것을 되새겨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아마도 그녀가 그림이나 영화를 통해 말하려는 바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 즉 나 자신과 나의 인생에 대해 생각하게끔 하는 것 아닐까. 한편 함께 사랑을 나누는 일이야말로, 나를 불편하게 하고 아프게 하지만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해 줄 만한 연결고리인 듯하다. 여기서 다시, 영화 원제목인 “자두치킨”을 기억해보자. 그것은 무뚝뚝하고 현실주의자인 파린이 나세르-알리의 죽음을 두려워하며 만든, 남편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표현하는 음식이었다. 결혼생활 중 그는 아내가 만든 자두치킨을 먹었을 때 미소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파린은 영화 속 멜로드라마의 주인공이 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이 음식은 회상 씬이 아닌 현재시점에서 유일한 사랑의 표상이다. 나세르-알리의 바이올린과 파린의 자두치킨, 무엇이 더 순수하고 사랑스러워 보이는가? 우리가 말해야 할 예술이란 무엇일까.

   
▲ ⓒ 영화 스틸컷=여섯째 날 저승사자가 찾아오다

너는 어찌하여 지나 온 길을 되돌아와 겪었던 일을 고하려 하느냐

미처 하지 못한 일에 연연한들 무엇하리오

한 번 떠난 길은 돌아오지 못할 길인 것을. – 저승사자

만약 사랑이 나의 생존은 보증할 수 있다면, 예술은 그것을 응축된 시공간으로 만들어 다른 세계들과 화합한다. 나세르-알리의 마지막 일주일은, 망상에 빠져 최고의 바이올린 소리를 찾아 헤매던 연주자의 우울한 최후일까. 적어도 관객의 입장에선 그렇지 않다. 사트라피는 “오직 어리석은 사람만이 결코 자신의 마음을 바꾸지 않는다”라는 아버지의 말을 늘 기억했다고 한다. 이제 그녀는 우리에게 그 말을 넘겨준다. ‘죽고 싶다’ 다짐했던 어느 예술가의 후회를 보면서, 혹은 영화의 아름다운 영상들을 마주 하면서, 어쩐지 이제는 ‘살아야겠다’ 말하고 싶지 않은가? 삶이 있다면 예술가들은 사랑을 멈추지 않을 것이고, 예술은 계속해서 우리 곁에 남아 함께 호흡할 것이다. 그들의 공을 봐서라도 어떻든지 생을 포기하지 마시길. 저승사자 앞에서 매달려봤자 “조금 늦은 게 아니라, 이미 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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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지나
gkam@thearti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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