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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묻기엔 아름다운 그날 그리고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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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양연화 포스터

‘사랑이 그대들을 손짓해 부르거든 그를 따르십시오.

비록 그의 길이 힘들고 가파를지라도.

사랑이 그대를 감싸 안으면 그에게 몸을 맡기십시오.

비록 그 날개속에 숨겨진 칼이 그대들에 상처를 입힐지라도..’

– 칼릴 지브란, ‘예언자’ 中

[디아티스트매거진=은서형] 러브 스토리를 좋아하는가? 사랑은 두 글자로 이뤄져 있지만 실은 사람을 앞 못 보는 이처럼 어두컴컴한 감정동굴 속에서 ‘암중모색'(暗中摸索) 하게 만드는 것인지라 보기보다 참 어렵다. 인생은 처음엔 햇빛에 의지해 살아가지만 돌이켜보는 인생날이 많아질수록 달빛에 의지해 살아가는지라 그 달이 사랑이라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인생이 그렇듯  내 뜻대로 되기는 커녕 내 뜻을 요리조리 피해가는 것이 사랑이라, 칠흑같은 인생을 밝히는 달이 되주진 않고 칠흑같은 인생을 더 칠흑으로 칠해버려 참 얄궂게 보인다. 이럴 땐 로미오와 줄리엣의 대사 한 마디는 읊을 수 있으리라.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What a fate!)

세상엔 이제 사랑의 정의도 인류의 구성원의 수만큼 많아졌고 흔해졌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인생 영화’ 라는게 있듯이 당신의 인생에, 당신 가슴의 그것도 아주 밑바닥에 깔려 있는 당신에게 기억되는 한 사람, 한 사랑이 있으리라. 그것은 피천득 시인의 ‘인연’에서처럼 ‘만나지 말았어야 했다’ 며 고사 ‘단장(斷腸)’ 처럼 목놓아 울만한 것일 수도 혹은 물에 풀어놓는 물감으로 그린 수채화처럼 이제 그 날의 색(色)도 바래진 저 편의 기억의 일일 수도 있다. 어찌됐건, 사랑은 이루어진 사랑보다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이 더 기억에 남고 가슴에도 남는다. 아마 단순히 이루어지지 않아서라기보단 왜 우리의 연은 닿을 듯 한번도 엮이지 못하였느냐 는 비감(悲感)의 감정 때문일 것이다.

​잠깐 고전 얘기를 하자면, 고전으로 내려오는 ‘사랑의 비극’을 다룬 소설들이 많다. 그 중, 필자가 꼽는 고전은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그리고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다. 그 이유는 감히 사랑의 깊이를 잴 수 없어서이다. 독자가 속단하기엔 그 사랑이 파멸적이고 깊으며 한 사람의 몸으로 지탱하기엔 사랑이 주는 두려움에서 비롯된 떨림이 크다고 생각됐기 때문이다. 세상엔 이렇게 숭고하면서도 두렵게 하는 사랑이 있다. 위까지 차올라 곧 터져버릴 듯한 사랑이 있다. 반면, 자신의 감정을 아래로 억누르는 사랑도 존재한다. 이런 경우는, 자신의 사랑을 표현해서는 안된다는 내적(內的) 목소리 때문일 것이다. 같은 날, 이사 온 ‘차우(양조위 役) 부부’와 ‘수리첸(장만옥 役) 부부’, 곧 알게 된 두 배우자의 바람, 그 후 홀로 된 외로움을 함께 달래며 피어나게 된 두 사람의 끌림 그리고 밀어냄. 이를 몽롱한 붉은 빛으로 그려낸 영화 <화양연화> 가 바로 그렇다.

   
▲ ⓒ 화양연화

​’사랑의 가장 큰 결점 가운데 하나는 그것이 비록 잠시라고 해도

우리에게 심각한 행복을 안겨줄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

– ‘알랭 드 보통’의 소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 中

​개인적으로 왕가위 감독의 영화를 좋아한다. 한 왕가위 감독의 팬이 말하길, ‘왕가위 감독은 영화를 소설 읽듯이 그려낸다.’ 라고 말했다. 이 영화가 그렇다. 1962년의 홍콩, 영화 대부분의 장면을 비추는 몽롱한 홍(紅)등, 마치 고혹적인 꽃병이 서 있는 듯한 자태의 ‘치파오’를 입은 ‘첸 부인'(장만옥 役), 그런 ‘첸 부인’에게 더 다가갈 수 없어 애처롭게만 쳐다보는 ‘차우'(양조위 役), 주 배경은 좁은 골목과 이웃집 사이의 벽 하나로 손 한번 뻗으면 그만이었을 거리를 건너지 못한 두 사람의 인연. 이것들이 ‘패치워크’처럼 이뤄져 한 편의 영화는 ‘안개의 언어’처럼 잡힐 듯 잡히지 않게 그리고 황홀하게 펼쳐진다.

   
▲ ⓒ화양연화

‘Siempre que te pregunto que cuando, como y donde

항상 나는 당신에게 언제, 어디서, 어떻게 냐고 물으면

tu siempre me respondes Quizas quizas quizas

당신은 대답하죠, ‘아마도, 아마도, 아마도’ 라고.’

– Nat King Cole의  ‘Quizas, Quizas, Quizas’ 中

왕가위 감독이 개인적으로 좋아하여 삽입했다는 영화 주제곡, ‘Quizas, Quizas, Quizas'(아마도, 아마도, 아마도)는 위 노래에서 남자의 물음에 답하는 여자의 애매한 말처럼 위 두 사람의 관계는 서로를 꼭 잡을 듯 하면서도 스치고 지나쳐버린다. 아무리 서로의 배우자가 외도를 했어도 속사정을 모르는 주변인의 눈에는 ‘배우자를 둔’ 기혼자 로만 보이기 때문이다. 두 사람도 안다. ‘첸 부인’이 ‘우린 그들과 달라요.’ 라며 돌아서 가버리듯 그들의 사랑은 어디까지나 ‘불륜’ 으로 보일 뿐이므로 안된다며 ‘첸 부인’이나 ‘차우’나 섣불리 다가설 수 없어 다가고픈 감정을 애써 억누른다. 계단을 몇 번씩이나 오르내리게 만드는 감정을 계속 억누르기만 할 뿐이다.

   
▲ ⓒ 화양연화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 것이라는 두려움을 기초로 해야만 생길 수 있다.’고 스탕달은 말했다. 날 홀렸던 사랑은 결국 끝나게 되고 그 후에 맹목적 사랑에 빠진 벌은 이별 후에 나 홀로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말대로라면 사람은 결국 헤어질 걸 알면서도, 아플 걸 알면서도 사랑을 한다는 것이다. 이 두 사람도 둘의 운명이 어떻게 흘러가는 줄 알았다. 하여, ‘차우’는 싱가폴로 떠났다. 두 사람이 이상할 정도로 함께 하는 시간이 많다는 것을 알아챈 이웃들의 시선으로 인해 결국 사랑하게 된 ‘첸 부인’을 위한 남자의 선택이었다. 피어보지도 못하고 눈물로 끝낸 사랑을 두고 할 수 있는건 시간에게 속절없이 맡겨버리는 것, 나중에 한번 뒤돌아 보는 것이리라. 이래서 혹자는 사랑을 두고 부질없다 고 하는 걸지도 모른다.

십 년이 지난 후, ‘첸 부인’이 가엾은 사랑에 할 수 있는 건 들키지 않게 조용히 흘린 눈물이었고 ‘차우’는 벽의 구멍에 조용히 말하고 비밀로 덮어버리는 것이었다. 이것이 허락될 수 없는 사랑을 한 자들에게 허락된 것이다. 사랑이 끝난 것이지, 인생이 끝난 것이 아니라지만 사랑을 한 댓가가 너무 씁쓸하잖은가. 이 영화의 제목은 ‘화양연화’이다. ‘인생의 가장 행복한 때’ 라는 뜻이다. 맨 위에 썼듯, 사랑은 하는 이에 따라서 어둠같은 인생을 비춰주는 ‘달’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 달빛을 받는 사람은 ‘이 시간을 견딜 수 있겠다.’며 행복해 할 것이다. 그러나, 이 둘의 사랑은 <화양연화>라고 말하기엔 그들이 짧지만 함께할 때에도, 십 년 후 돌아다볼 때도 흘린 것은 눈물뿐이었으니 <화양연화>라고 하기엔 옛 소설 ‘운수 좋은 날’만큼 역설적이게 들린다.

‘가장 마음을 크게 흔들어놓는 아름다움은 가장 빨리 사라지는 아름다움’

 이라는 말을 예전 소설책에서 본 적이 있다. 이 말을 읽고서 느껴지는 공허함이 너무도 커 이 말을 그동안 어디에 써야 할지 몰랐다. 알고보니, 이 말을 이 영화에 쓰기 위해서 그동안 아껴두었나보다. 가을날의 단풍잎처럼 붉은 빛 아래 나눴던 잠깐의 사랑 그리고 아픔이 제목과 대비되어 더욱 슬프게 보였던 영화, <화양연화> 였습니다.

   
▲ ⓒ 화양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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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서형 기자
epaz@thearti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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