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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디아티스트매거진, 한국의 팝페라 선구자, 팝페라 테너 ‘임형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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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이 지난 후 어디에선가
나는 한숨 지으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고,
나는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했다고
그리고 그것이 내 모든 것을 바꾸어놓았다고.
‘
Road not taken (가지 않은 길) 中
– 로버트 프로스트
[디아티스트매거진=은서형] 영롱한 목소리, 투명해서 깨질 듯한 유리구슬이 제 몸을 바르르 며 굴러가는 그 떨림을 목에 간직한 한 소년이 2003년 1월 ‘The Salley Gardens’ 라는 앨범을 들고 나타났다.과거 사랑했던 그녀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여 후회만 남은 눈물을 표현한 ‘The Salley Gardens’ 외에 ‘Ave maria’, ‘Over the rainbow’ 등 대중에 친숙한 클래식으로 채워진 앨범을 들고 나타난 소년, 투명하고 영롱한 음색에 마치 선녀가 옷깃으로 내 얼굴을 스치는 듯한 느낌을 주던 목소리의 주인공, 우리나라 최초의 팝페라 테너 ‘임형주’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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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의 데뷔 앨범, ‘The Salley Gardens’ | ||
‘팝페라'(Popera), 오페라를 팝처럼 부르거나 팝과 오페라를 넘나드는 음악 스타일을 가리키는 ‘팝'(Pop)’과 ‘오페라'(Opera)’의 합성어로 다소 무겁고 진중해보이는 ‘오페라’의 이미지에 대중과 친숙한 ‘팝’을 가미한 장르로 해외에 ‘사라 브라이트만’, ‘안드레아 보첼리’와 같은 유명 가수들이 대표적인 ‘팝페라’ 가수이나 국내에는 당시만 해도 장르간 크로스 오버를 한다는 것이 생소하게 느껴졌으며 ‘팝페라’ 란 말에 친숙하지 않은 대중에게는 더욱 그랬다. 당시 국내에 ‘성악가’는 있었지만 ‘팝페라’를 하는 사람이 없던 시절, 국내에 ‘팝페라’시장을 개척했던 자는 바로 만 17세의 소년인 ‘임형주’였다.
초등학교 방과 후 특별활동으로 ‘동요 부르기’반을 했던 그는 선생님에게 ‘성악’을 해보라는 말을 듣고 ‘노래 부르는 것’에 관심을 갖게 된다. 그러나 부모님의 시큰둥한 반응에 그는 출전했던 ‘서울시 청소년 동요 부르기 대회’에서 ‘대상’과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하며 자신이 될성 부른 떡잎임을 입증해보였으나 부모님은 여전히 미덥잖다는 반응을 보이셨다고 한다. 그 후 초등학생 시절이 끝나갈 무렵 음악의 길을 포기할 때쯤 크리스마스 날, 이모가 준 세계적인 오페라 가수 ‘마리아 칼라스’ (Maria Callas) 의 베스트 앨범을 듣고다시금 성악에 눈을 뜨게 된 그는 ‘성악이 이런거였어? 그럼 나도 성악을 하고싶다. 란 다짐을 하게 되고 급하게 예원학교 입시 준비를 마친 후 단 2개월만에 예원학교에 입시에 성공하며 본격적으로 ‘음악인’으로서의 길을 걷게 된다.
예원학교에서 1등을 하며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던 그였지만 여전히 그의 부모님은 아들이 일반고에 진학하여 공부의 길을 걷길 바라셨다고 한다. 그런 그는 중학교 시절이 끝날 무렵, 자기 인생을 위한 ‘터닝포인트’를 스스로 만들었다. 바로 세계에서 제일 간다는 미국의 ‘줄리어드 음대 예비학교’의 입학을 위해서였다. 그는 부모님께 명목상 미국 관광을 위한 비행기 티켓을 받고서 홀로 ‘미국 유학 원서’를 마련한 후 자신의 높은 꿈과 함께 비행기에 탑승한다. 동행을 했던 다른 탑승객들에겐 ‘미국행’이었겠지만 그에겐 ‘아메리칸 드림’ 행 이었던 것이다. 빛도 안 들어오는 옷에 곰팡이가 생기는 지하에 살았지만 그의 꿈의 높이는 이미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보다 더 높았다. 그는 웹서핑으로 자신의 지원군이 되줄 유명 선생님들을 만나 실기시험 무대에 서기 전 무료로 레슨을 받게 되고 자신의 재능을 높이 평가받으며 자신감을 얻는다. 그 후, ‘줄리어드 음대 예비학교’ 실기시험을 보는 날, 그는 높아진 자신감을 한껏 두 어깨에 싣고 무대에 올라 재능을 아낌없이 발휘하였으며 그는 성악과 심사위원들에게 만장일치로 합격을 받아내었다. 그렇게 어린 소년은 스스로 그리고 홀로 자신의 인생길을 자기가 닦아 마침내 빛을 보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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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의 팝페라 테너, 임형주 | ||
2003년 1월 만 17세라는 나이의 ‘The Salley Gardens’ 라는 국내최초 팝페라앨범을 발매 후 바로 다음달에 있던 2월 25일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에 애국가를 선창하며 ‘최연소 나이로 대통령 취임식에 애국가 선창’ 이란 기록을 세웠으며 당시 취임식은 역대 대통령 사상 최초로 지상파3사 외에 해외 140개국의 송출되었던 취임식이었으며 그는 이를 계기로 국내는 물론 대외적으로도 그의 이름을 알렸다. 그 후 같은 해 6월 뉴욕 카네기홀에 서며 ‘세계 남성 성악가 사상 최연소의 나이의 해외 성악가의 독창’이라는 기록을 세웠고 이후 미국 영국 일본 독일 오스트리아 프랑스 이탈리아 체코 중국 대만 등 세계무대에서 활약하며 링컨센터 앨리스툴리홀(미국), 런던 세인트 존스 스미스 스퀘어홀(영국), 빈 콘체르트 하우스, 잘츠부르크 미라벨 궁전(이상 오스트리아) 등 세계 정상급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며 그의 ‘팝페라 테너’로서의 세계적인 입지를 확실히 굳히게 되었다.
그에게 ‘최연소’, ‘최초’라는 수식어는 끊임없이 붙었다. ’카네기홀의 3개 홀을 모두 정복한 최초의 한국인 음악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역대 4번째이자 최연소로 단독 콘서트’, ‘대한민국 팝페라/크로스오버 음악가 최초 개인음반 누적판매량 100만장 돌파’, ‘세계 4대 메이저 음반사 모두와 독집 음반계약을 체결한 첫 한국인 음악가’,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평화예술 친선대사(한국 최초)’, 2010년 UN ‘평화메달’ (한국인 최초 및 역대 최연소 수상) , 최근 2015년 미국 오바마 대통령상 수상 (한국 문화예술인 중 최연소 나이로 수상)’ 까지 만 17세의 나이의 맑고 영롱한 목소리로 대중을 사로잡았던 소년은 어느새 놀랍도록 ‘일진월보'(日進月步)’ 하여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기록을 세운 그는 이제 국내를 넘어 세계에서 인정받는 어엿한 팝페라 테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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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의 팝페라 테너, 임형주 | ||
예원학교 다닐 적, 자신이 존경하던 마리아 칼라스, 조수미,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자서전, 영상을 보고 끊임없이 자신을 자극하며 꿈을 키웠던 ‘임형주’는 이제 ‘청소년이 존경하는 100인’의 문화/예술 부문에서 자신이 존경하던 성악가 ‘조수미’와 함께 나란히 선정되되었다. 그녀가 후배 임형주를 본다면 ‘청출어람'(靑出於藍) 이라며 흐뭇하게 그를 바라보지 않을까.
부모님께서 어릴 적 그에게 지도를 보여주며, “대한민국은 이렇게 조그만 나라야, 넌 이렇게 큰 세계를 무대로 활동해야해.” 란 몇 마디 안되는 말이지만 큰 가르침을 받은 그는 당신의 말 그대로 ‘세계’에서 노는 성악가가 되었다.
“한국에도 노래 잘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보여줄거야.”
라며 당차게 ‘줄리어드 음대 예비학교’ 실기시험 무대에 올랐던 그는 정말로 한국에도 노래 잘하는 사람이 있다는걸 전 세계에 보여주었고 세계는 두팔 벌려 그를 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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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의 팝페라 테너, 임형주 | ||
1998년 ‘Whispers of Hope”란 만 12세에 낸 비정규 앨범까지 합산하면 올해 30세의 나이에 벌써 데뷔 18년이 되는 임형주. 자신이 성악의 꿈을 꾸게 한 ‘마리아 칼라스’처럼 ‘정통 성악’을 고집했던 그는 미국 유학길을 떠나 어두컴컴한 지하에서 문득 내가 바라는 것은 ‘대중과 호흡하는 성악가’ 임을 깨닫고 레슨 선생님께서 제안한 ‘팝페라 가수’가 되겠다는 결심을 한 그는 국내에 팝페라 시장을 개척했을 뿐만 아니라 국내 클래식 시장을 고양(高揚) 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최근 4일 영국 BBC 뮤직 매거진에 영국의 사라 브라이트만, 이태리의 안드레아 보첼리, 미국의 조시 그로번, 다국적 그룹인 일 디보와 함께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팝페라 가수 ‘Top 5’에 꼽힌 그는 이제 ‘King of Popera(팝페라의 제왕)’ 이라는 말을 듣는 세계에서 내로라 하는 팝페라 가수로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이제 팝페라 시장에서 불과 서른 살의 나이로 정상에 자리에 오르게 된 그이나 지금 이 순간에도 또 다른 자신의 터닝 포인트를 만들고 있을 듯한 그, 임형주.
”기회는 왔을 때 잡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서라도 잡는 것이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보다도 더 높게, ‘뉴욕 카네기 홀’보다도 더 크게 꿈을 품었던
그, 임형주. 그는 이제 그의 다음 도약을 위해 어떤 꿈을 싣고 다음 비행기에 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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