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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이버 영화 | ||
[디아티스트매거진=민소영]
시련이란 늘 갑자기 찾아온다. 학생들의 존경을 받는 교수로서의 삶, 훌륭한 남편을 둔 든든한 아내의 삶, 멋진 딸아들을 둔 엄마의 삶. 이 모든 것은 앨리스(줄리안 무어)가 살아오던 찬란한 날들이었다. 어느 하루, 강당에 서서 단어가 기억이 나지 않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고, 갈수록 심각해지자 병원을 찾아간 그녀는 알츠하이머라는 진단을 받게 된다. 아직은 너무나 젊은 나이에 치매의 원인인 퇴행성 뇌질환을 진단받은 그녀는 자기 자신을 잃게 될까 두려움에 떨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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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heskinny.co.uk | ||
이 영화를 보면서 필자가 생각하는 가장 주목할 만한 세가지는 앨리스를 연기한 줄리안 무어의 무려 7관왕 여우주연상에 빛나는 열연, 알츠하이머에 대하는 가족들의 모습,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구절(장면)이다. 줄리안 무어의 연기는 마치 눈앞에서 증발해나가는 기억의 두려움과 애절함을 눈빛만으로도 전달할 만큼 훌륭했다. 그녀의 불안감에 몰입하게 하는 연기는 기존에도 두렵게 여겨왔던 알츠하이머라는 병을 더욱 안쓰러울 정도로 와닿게 만든다. 가장 두려웠던 장면은 바로 그녀가 그녀 자신을 위해 기록해둔 영상을 보는 순간이었다. 자신이 기억을 잃게 된 후, 가족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았던 그녀는 강한 수면제를 다량 구입하고 훗날 기억을 완전이 잃게 될 그녀 자신에게 보내는 영상 메시지를 기록한다. ‘물과 함께 모든 약을 복용하라’라는 지시를 남긴 그 메시지를 이후 앨리스가 우연히 보게 된다. 이미 그 메시지에 대한 기억을 잃어가던 그녀는 과거의 자신이 말하는 대로 시행하려 했으나, 행운인지 불운인지, 아이러니하고 우습게도 그녀는 계단을 오르는 사이 영상 메시지 속 그녀가 전하던 말을 계속 잊어버린다. 결국 노트북을 들고 침실로 이동하여 약을 손에 쥐지만, 가정도우미의 등장에 놀라 그녀는 약들을 바닥에 쏟으며 죽음의 문턱에서 벗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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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rewenotentertained.com | ||
왜 그녀는 가족들에게 피해가 되지 않기 위해 극단적인 대책까지 마련한 것일까? 필자가 보면서 가장 마음이 아팠던 장면이 있다. 희귀 알츠하이머로 가족성 질병인 앨리스의 알츠하이머는 자식에게 50대 50의 확률로 발견된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앨리스는 가족들이 모인 장소에서 이 사실을 이야기하고 용서를 빈다. 큰딸인 애나(케이트 보스워스)와 아들 톰(헌터 패리쉬)는 검사를 받게 되고 각각 양성과 음성의 진단을 받는다. 이 때, 애나는 검사결과를 엄마인 앨리스에게 전하며 다소 차가운 태도를 보인다. 같은 혈육임에도 자신에게 주어진 피해 앞에 애나는 앞으로 생길 아이에 대한 걱정부터 한다. 그런 그녀에게 앨리스는 얼마나 큰 죄책감을 느꼈을까. 다른 가족들의 태도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는 앨리스가 부엌에 있을 때 더 여실히 드러난다. 앨리스의 막내딸인 리디아(크리스틴 스튜어트)만이 그녀 곁에서 그녀의 감정과 안부를 묻고, 나머지 가족들을 테라스 밖에서 그들만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녀와 마주하며 이야기하여 공감하고자 하는 사람은 리디아 뿐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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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villagecinemas.com | ||
이것이 마냥 슬픈 것만은 아니었다. 나머지 가족들은 앞으로 나아갈 길과 자신의 길에 대한 모색을 했을 뿐 그것이 결코 그르다고만은 할 수 없을 것이다. 현재 많은 알츠하이머 질병과 싸우고 있는 가족들이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영화가 시사하는 앨리스와 리디아의 모녀 관계는 더욱 용기 있는 사랑으로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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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eeknewnetwork.net | ||
영화 초반부터 계속 앨리스는 리디아에게 대응책이 필요한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삶에는 무슨 일이 생겨날지 모르므로 그 해결책에 대한 방안이 필요하다는 진부한, 어떻게 보면 당연한 어른들의 시각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지만 리디아는 자신의 목적과 꿈이 뚜렷하고, 노력하기에 대응책은 필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이를 보면서 다분히 꿈에 대한 것이라고만 생각하게 되지만, 영화가 중반을 지나 후반에 다다르면서 이는 단순히 꿈에 대한 것이 아닌 미래를 대하는 태도에 대한 이야기라고 느끼게 된다. 임신한 자신을 돌보기도 힘든 애나, 자신의 공부에 집중해야만 하는 톰, 자신의 미래와 더불어 아내의 치료비까지 고려해야하는 남편 존(알렉 볼드윈). 앨리스를 제외한 모든 이들은 그들 각자 나름의 몫이 있었고, 그들의 대응책은 아마도 앨리스를 요양원이나 전문치료기관에 입원시키는 것이었을 것이다. 무기력하게 졸고 있는 앨리스는 옆에 둔 채 셋이서 마치 다른 공간에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가족들을 보며 개인 앞에 흔들리는 가족의 모습을 보았다. 하지만 유일한 목적 앞에 다른 대응책을 두지 않던 리디아는 엄마인 앨리스가 더 소중했으므로 LA에서 활발했던 연기생활을 접고 집으로 돌아와, 나머지 가족들이 하지 못했던 일을 한다. 그런 딸 앞에서 “네가 나보다 낫구나”라며 나약하게 무너지는 아빠 앞에 그 둘은 꼭 껴안으며 소리 없이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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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ackfilm.com | ||
감정적으로 가장 앨리스와 소통하고자 했던 리디아가 마지막에 읽는 대본의 구절은 매우 인상적이다. 1993년 4월 퓰리처상 수상작인 토니 쿠시너(Tony Kushner)의 희곡 ‘미국의 천사들 Angels in America’의 마지막 구절은 모든 상실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작년에 보았던 영화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의 발렌틴이 얼핏 보이는 듯한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연극적 연기는 마지막 분위기를 더욱 고귀한 위치로 올려놓는다.
“Souls were rising, from the earth far below, souls of the dead, of people who had perished, from famine, from war, from the plague, and they floated up, like skydivers in reverse, limbs all akimbo, wheeling and spinning. And the souls of these departed joined hands, clasped ankles, and formed a web, a great net of souls, and the souls were three-atom oxygen molecules of the stuff of ozone, and the outer rim absorbed them and was repaired. Nothing’s lost forever. In this world, there’s a kind of painful progress. Longing for what we’ve left behind, and dreaming ahead.”
영원히 상실되는 것은 없다. 이를 기억하려는 이들이 있고, 그 기억을 기억들을 거쳐 계속 유지될 것이다. 이 세상이 고통스러운 여정인 이유는 우리가 두고 지나온 것을 뒤돌아보지만, 동시에 미래를 그리기 때문이다. 이 구절을 읽어준 뒤 리디아는 앨리스에게 ‘이 책이 어떠한 느낌이었냐’고 물어본다. 말조차 하지 못하며 더듬거리는 그녀는 마침내 말한다. 그것은 ‘사랑(love)’이라고. 그렇게 궁극적으로 이 영화는 상실 속에 잊혀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하여 잔잔히 여운을 남긴 채 끝을 맺는다. 어쩌면 상실이라는 고통 앞에 그 상처를 감싸 안고 지켜줄 수 있는 것은 오직 사랑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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