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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추억의 마니> 포스터

[디아티스트매거진=은서형] 긴 노란 머리에 파자마를 입은 채로 바람을 맞으며 곧 바람과 함께 사라질 듯한 소녀를 그린 포스터, <추억의 마니>. 늘 아련한 동양의 감성과 여자아이의 조화를 추구하여 왔던 일본의 애니메이션계 거장, ‘스튜디오 지브리’에서 영화 타이틀의 <추억>이란 말을 쓴 만큼 ‘ 또 하나의 파스텔톤의 따뜻한 동화의 탄생’ 으로만 생각하였다. 하지만 ‘지브리’는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간 ‘속 깊은’ 동화를 보여주었다.​

​세상에 홀로 서기도 버거워보이는 어린 여자아이가 실은 아픈 ‘상처’를 품고 있다면 어떤가? 그것도 그 상처가 부모를 여의어서 생긴 상처라면 말이다. 이 동화에 나오는 부모를 일찍 여의어 남의 손에 자라게 된 소녀 ‘안나’와 ‘안나’가 요양차 방문하게 된 바닷가 마을에서 만나게 된 소녀 ‘마니'(포스터의 소녀)는 둘 다 ‘자신의 부모’ 때문에 생긴 ‘상처’를 가슴에 품고 사는 소녀이다. 서로 친해지며 실은 서로가 공통된 상처를 지닌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처지란 것을 알게 된 ‘안나’와 ‘마니’는 손을 꼭 붙잡듯 마음도 서로를 꼭 붙잡는다. ‘공통된 상처’라, 이것만큼 사람을 가까이 엮어주는 것이또 어딨겠는가? 이 어린 소녀, ‘안나’와 ‘마니’도 마음으로 그것을 잘 알고 있다.

   
▲ 영화 <추억의 마니> 포토

‘상처’도 시간이 지나면 ‘상처’라 쓰고 ‘경험’이라고 읽을 수 있는 것일까? ‘상처’도 경험인지라 겪어본 사람만이 다른 상처 입은 이를 보듬어 줄 수 있는 것일까? 이 의문에 대한 답을 ‘지브리’는 ‘마니’의 정체를 통하여 보여준다. 요양차 머문 바닷가에 있는 대저택에 사는 소녀, ‘마니’. 그러나 실은 그 저택이 한동안 사람이 살지 않던 ‘폐가’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마니’의 정체에 대한 궁금증을 낳는다. 내성적인 성격탓에 그림만이 유일한 친구였던 외로운 ‘안나’에게 따뜻하게 웃으며 다가왔던 ‘마니’. 이 ‘마니’의 정체는 대저택으로 새로 이사오는 가족과 바닷가 마을에 살던 한 아주머니를 통해 밝혀진다. 그렇다. ‘마니’는 이미 오래 전 이 세상을 떠난 사람이다. ‘안나’가 만난 건 사람인 ‘소녀’가 아니라 사람처럼 보이는 ‘귀신’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지브리’는 왜 ‘마니’를 ‘귀신’으로 만들었으며 왜 ‘안나’를 찾아오게 하였을까?

​이에 대한 답은 이 동화의 굵직한 하나의 키워드인 바로 ‘상처’이다. ‘안나’와 ‘마니’, 둘 다 공통된 씨앗에서 움튼 ‘상처’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안나’를 죽어서도 찾아오는 이유가 되는가? 이에 지브리는 더 충분한 설득력을 얻기 위해 한 발 더 나아간다.  그렇다. 실은, ‘마니’는 ‘안나’의 돌아가신 할머니이다. 어릴 적 ‘마니’는 자신을 하녀들에게 맡기고 향락을 즐기며 소일하는 부모 덕에 늘 외롭게 컸다. 가족의 유대감, 사랑을 느끼지 못하고 자랐던 ‘마니’는 후에 소꿉친구와 결혼하여 딸’에밀리’를 낳고 안정된 가정을 겨우 손에 넣으나 남편은 얼마 뒤 병으로 사별하게 되고 이에 불안증을 겪게 되어 요양원에 들어가게 된 ‘마니’는 딸을 하는 수 없이 기숙학교로 보낸다. 어린 나이에 자신을 기숙학교로 보낸 엄마를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하게 된 ‘에밀리’는 그 생각을 계속 안고 있었고 둘은 에밀리가 성인이 된 후에도 가까워지지 못하였다. 결국 두 사람이 끝내 화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에밀리’는 젊은 나이에 남편과 함께 타고 있던 자동차 안에서 불의의 교통사고로 요절하게 되고 두 사람 사이에 남겨진 딸 , 바로 ‘안나’를 자신이 직접 거두어 키우나 딸마저도 보낸 충격으로 인해 결국 ‘마니’는 손녀’안나’를 남겨두고 하늘로 가버리게 된 것이다. 

   
▲ 영화 <추억의 마니> 포토

자신보다 향락을 중요시했던 부모, 행복했던 결혼생활을 미처 즐기기 전에 병으로 자신을 두고 세상을 떠난 남편 그리고 딸까지 제대로 된 가족애를 오래 유지하지 못했던 ‘마니’는 자신이 두고 온 손녀 ‘안나’를 위해 잠깐 하늘에서 내려온 것일까. 자신과 같이 부모의 사랑을 느껴보지 못하고 남의 손에 키워진 손녀. 자신도 어릴 적 느낄 수 밖에 없었던 외로움, 가족의 울타리가 필요한 나이임에도 마음 붙일 가족이 하나도 없다는 것에서 오는 슬픔 그리고 자신이 미처 클 때까지 지켜주지 못하고 남기고 온 손녀이기에 ‘마니’는 잠시 ‘안나’를 만나러 간게 아니었을까.

​그치지 않는 비는 없듯이 아물지 않는 상처도 없는걸까. 방학이 끝나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할 때 즈음 ‘안나’는 ‘마니’의 정체와 돈 때문에 자신을 거둔 줄 알았던 새 엄마와의 오해도 풀게 되어 돌아가는 날 쨍하게 뜬 해처럼 새로운 마음을 지니게 된다. 하늘에 가서도 자신을 돌보러 온 할머니 ‘마니’의 사랑, 그리고 기댈 곳이 없는 줄 알았으나 이제 기댈 수 있게 된 새 엄마​. ‘안나’는 전보다 더 부유해진 마음을 지니고 돌아가지 않을까. 지상이든 천상이든 어디에도 자신의 편이 되어주고 돌봐줄 이 하나 없다는 세상에 눈물을 머금고 이곳에 왔으나 이젠 지상에도 천상에도 자신을 걱정하고 돌봐줄 이가 있으니 말이다.​

   
▲ 영화 <추억의 마니> 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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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서형 기자
epaz@thearti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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