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티스트매거진=정은정] 우리는 ‘예술가는 시대가 만든다’고 표현한다. 시대가 수상하고 우여곡절이 많은 절박한 상황일수록 예술가가 태어나기 마련이라는 의미이다. 물론 이러한 상황적 요인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시대의 걸작을 남긴 예술가에게는 시대의 상황과 더불어 그들에게 감흥과 영감을 주는 존재들, 예술적 불꽃을 피우게 하는 존재인 *‘뮤즈’가 있었다.
*뮤즈(Muse)는 본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춤과 노래ㆍ음악ㆍ연극ㆍ문학에 능하고, 시인과 예술가들에게 영감과 재능을 불어넣는 예술의 여신들을 말하는데, 고대인들에게 뮤즈는 그 자체가 예술적 영감이나 학문적 재능을 의미하기도 했다.
작가가 마음이, 시선이 자신을 향하고 작품으로 태어난다는 것은 감격스러운 일일 것이다. 경험해 보지 않으면 잘 알 수 없을 것 같은, ‘예술가의 뮤즈’가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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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카소 作 <우는 여인> 1937 | 테이트 갤러리 | ||
입체파를 대표하는 ‘천재화가’ 피카소(Pablo Picasso) 의 작품 중에는 ‘우는 여인’이 있다. 이 작품의 모델은 당시 피카소의 여인이었던 도라 마르(Dora Maar)였는데, 도라는 어느 누구에게도 기가 죽거나 지기 싫어하며, 소유욕이 강한 타입의 여자였다고 한다. 이런 성격이니, ‘바람둥이’ 피카소의 많은 여자들의 존재에 대해 날카로운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기품 있고 자부심 강하던 도라는 하루가 다르게 점점 신경질적이고 사납게 변해갔고, 몇 년 후 도라의 증세는 정신과 의사의 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로 심각해졌다고 한다. 그림 속 도라 마르의 표정을 보면 그녀가 피카소를 만나는 동안 얼마나 괴로웠을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얼굴이 부서지도록 울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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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환기 作 <두얼굴> 1957 | K옥션 | ||
반면, ‘한국의 피카소’라 불리는 수화 김환기, 그에게는 아내 김향안이 있었다. 김향안의 존재 의미는 김환기에게 예술의 대한 신념과 도전의지를 견고히 지켜주는 수호신이었다고 한다. 백자 항아리를 비롯한 전통가구에 대한 애정으로 골동품으로 집으로 들이는 김환기를 인정해주고 함께 즐기며 김환기의 예술적 사조와 신조 모든 것을 존중하였다. 또한 그녀는 김환기가 파리로 유학을 가 좋은 환경에서 작품에 집중할 수 있도록 절대적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녀는 예술적 동지이자, 삶의 반려자이며 그의 사후에는 재단과 미술관을 만들어 그의 예술 세계를 연구하고 전시하고 세상에 알리는 후원자 역할을 자처하기도 했다.
‘두 얼굴’이란 제목의 포스터 작품은 김환기가 벨기에 브뤼셀의 한 갤러리에서 1957년 전시회를 열 때 제작한 것으로, 작가 자신과 김향안 여사로 추측되는 인물을 직접 그리고 채색했다. 자연을 주로 그리는 김환기의 작품 중 보기 드문 인물화이다. 파리시절의 화풍이 그대로 반영됐으면서도 아내를 향한 애틋한 감정이 스며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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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곤실레 作 <죽음과 여인> 1915 | wikimedia commons | ||
나체를 많이 그린 화가로 알려진 에곤 실레(Egon Schiele)는 화가로서의 삶은 1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330여 개의 유화와 2500여 개의 데생을 그리며 오스트리아의 대표적인 표현주의 화가가 되었다. 실레는 21세에 만난 17세 소녀 발레리 노이질(Valerie Neuzil)과 4년간 동거했는데, 결혼 결심의 상대는 이웃에 살던 중산층 에디트(Edith)라는 여인이었다. 하지만 실레는 결혼 이후에도 발레리와의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싶어 했고, 그의 이기적인 태도를 알게 된 발레리는 그를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실레는 발레리가 떠난 후 ‘죽음과 여인’을 그렸다고 한다. 이 그림 속 연인은 서로에게 매달려 있지만, 남성의 눈은 괴로움에 빠져 경직된 채 멈추어 있다. 이는 실레가 자신의 뮤즈였던 발레리와의 헤어짐이 고통으로 다가오는 은유의 표현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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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중섭 作 <환희> 1955 | 서울미술관 | ||
유난히 소를 많이 그려 ‘소의 화가’라 불리는 대향 이중섭, 그 만큼 아내와 가족을 주제로 많은 작품을 남긴 이도 드물 것이다. 이중섭은 ‘야마모토 마사코’라는 일본인 부인에게 ‘따듯한 남쪽나라에서 온 덕이 많은 여자’라는 뜻의 ‘남덕’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기도, ‘발가락 군’이라는 애칭을 사용하기도 했다. 이중섭은 생활고로 일본에 건너간 부인과 두 아들에게 죽기 전까지 많은 편지 그림을 보냈다. 편지 속에서 이중섭은 “하루라도 빨리 함께 살고 싶소… 세상에 나만큼 자신의 아내를 광적으로 그리워하는 남자가 또 있겠소”라고 고백하기도 했다. 꽃으로 둘러싸인 배경 안에서 푸른색 수탉과 붉은색 암탉이 서로 마주 보며 춤을 추는 듯, 다정하고 따스한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이중섭의 작품 ‘환희’. 이 작품은 일본에 사는 아내를 떠올리며 완성한 그림이었다. 그에게 아내와 가족은 그의 예술적 영감임과 동시에 그리움 그 자체였던 것이다.
예술가의 삶이 창작 작업을 해야 하는 사람은 모두 자유분방하고 한 사람에게 정착하려 하지 않는다거나 일방적인 사랑을 피할 수 없다는 단정은 어렵다. 어떤 이에게는 뮤즈와의 관계에 있어 고통스럽기도, 매우 이기적이기도, 어떤 이에게는 그리움의 대상, 어떤 이에게는 예술적 동지이자 삶의 반려자였다.
예술가의 뮤즈가 된다는 것은 아마도 아름다운 예술이 만들어지는 이면이 아닐까 싶다.
참고자료
예술가의 탄생 | 유경희 저 | 아트북스 | 2010.06.21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김환기 | 박미정 글 | 네이버 캐스트 | 2013.02.25
아티스트 뮤즈가 된다는 것은 행복이며 축복이다 | 헬레나 유 | 티브이데일리 | 2014.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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