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티스트매거진=김진아]
이토록 부끄러운, 이토록 아름다운 색깔.
-<피부색깔=꿀색>(2012) Couleur de peau : Miel
지난 해 12월 개봉을 시작으로 무려 14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가 있다. 바로 한국전쟁 을 겪은 세대의 삶을 다룬 영화 <국제시장>(2014)이다. 12일 만에 400만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하고 해를 넘겨 지난 1월에는 1000만을 돌파하고 여러 기록들을 경신한 영화이다. 그만큼 영화에 대한 각계각층의 관심으로 다양한 이슈를 만들어낸 영화이기도 했다. 지금 이야기 하고 싶은 영화가 <국제시장>의 이야기는 아니다. 이 영화가 전쟁 후 한국에서의 고달프고 힘든 인생에 대한 성장영화였다면 <피부색깔=꿀색>이란 이 영화는 국외로 입양보내져 겪은 이야기를 다큐애니메이션으로 만든 자전적 영화이다. 이 영화는 프랑스 감독 로랑 브왈로와 공동으로 제작한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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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이버 영화 포스터 | ||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 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 난다”
눈이 소복이 덮힌 마을의 모습으로 시작하며 여러 아이들이 모여 이 노래를 부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바로 실제 주인공이자 영화의 연출자 융(jung)의 나레이션으로 자신을 소개한다.
영화에서 앞서 언급한 <국제시장>을 떠올릴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남북전쟁이 잠정적 휴정을 맞고 넘쳐나는 실향민과 아이들, 그 사이에 가족과 헤어지게 된 아이들, 그러니까 <국제시장>의 막순이가 주인공인, 번외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당시 실제 홀트복지회의 활동 영상은 이 영화를 진정성 있게 접근하게 하기 충분했다. 그도 그럴 것이 실제 주인공 융의 어린 시절이 촬영되어 있는 영상으로 삽입하여 당시 어린아이였던 융이 느꼈던 불안이나 생소의 감정들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것 또한 이 영화의 무게감을 실어 주는 훌륭한 요소가 되었다.
그런데 이 영화의 디테일은 비단 실제 촬영된 것들의 힘만 빌리는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들에 돋보기를 대고 들여다보는 것 같은 섬세한 심리를 잡아내는 그림은, 실로 환상적이다. 이것은 아마도 작가 자신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감정과 심리의 선들을 그림에 고스란히 사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입양이 되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영상 뒤에 감독이 그리고 있는 자신의 이마에는 작은 서랍들이 가득하다. 그것은 감독 자신이 느낀 다양한 생각들의 저장소였을 것이다. 아주 어린 나이에 벨기에라는 먼 나라에 왔지만 자신‘과’ 다른, 아니 자신‘만’ 다른 그 환경에서 느끼는 것들을 해소의 방법이 아니라 참고 가두는 방법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것이 소외의 감정으로 다가오는 순간들은 꽤 많았고 찰나의 순간들이지만 꽤나 상처받기 절적할 곳에 배치되어있다. 누군가 일부러 배열해 놓은 장치들은 아니지만 융의 인생은 꼭 자신의 선택과는 무관하게 누군가의 조종으로 돌아가는 듯 보인다. 그것은 이어지는 그의 나레이션으로 명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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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이버 영화 | ||
“서울에 도착한 후로 궁금한 게 하나 생겼어요. 한국인들은 나를 한국인으로 볼까?”
그리고 그는 굳이 생략된 것 같은 “유럽에서도 나를 유럽인으로 보지 않는데…”라는 이야기는 절대 언급하지 않는다. 단지 그가 버려진 이유들에 대해 추측하기 시작한다. 그것은 별거 아닐 수 있지만 가슴 아픈 대목이다. 어린 아이가 자신이 버려진 이유들에 대해 ‘어쩌면 당연하다’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전후 당시 어쩔 수 없는 최선의 선택의 결과였겠지만 그렇게 사회적인 이유로 융에게 이해를 구하기엔 이 아이의 인생은 늘 위태로웠다. 그래서 이 영화는 융의 이야기가 아니다. 당시의 모든 입양아에 대한 이야기이고 융이라는 실제적 인물이 만든 영화이지만 이 영화는 모두가 용서를 구해야 하는 영화이다. 그것을 부끄럽게도 융이 먼저 손을 내민 것이다. 자신의 어머니의 모습이 궁금해 한국에 와서 어머니의 모습들을 자세히 살펴봤다는 대목은 그의 핏줄인 한국과 그 곳의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이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의 전부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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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이버 영화 | ||
꼭 모든 입양아가 융처럼 위태로운 순간을 맞이하진 않았을 것이다. 분명 누군가 한명쯤은 철저한 행복 속에서 살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융은 양어머니에게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
“넌 썩은 사과야. 썩은 사과를 함께 두면 모든 사과를 썩게 해”
이런 단호함은 융이 다시 한번 버림 받는 순간이다. 어느 곳에도 속할 수 없는, 또 속하고 싶지 않은 그런 불결한 감정들은 그가 차라리 일본인이 되어야 겠다는 생각에 빠져 들게 했고 더욱 그를 어긋나게 했다. 이 영화 또한 여느 청소년의 성장 드라마처럼, 친구들과의 싸움, 돈을 훔치고, 장난을 치고 사고를 치고 다니는 등등의 일들이 결국에는 자신의 마음을 읽어주고 감싸주는 부모의 진심어린 눈물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의 클리셰로 끝나지만 이 영화는 그런 성장영화와는 분명 다른 영화이다. 입양이라는 모티브는 단지 그것에 대한 동정을 이끌기 위한 소재는 분명 아니다. 이것은 많은 생각을 던지는 이야기이자 단서이다. 감정표현이 서툰 양어머니의 눈물은 자신의 뱃속에서 죽은 아이 대신으로 융을 생각한다는 진심어린 고백으로 그를 다시 자신의 사랑의 궤도로 진입시킨다. 그런 후의 융은 안정적이 되었고 모국에 대한 열망이 생겨났다. 사랑이 사람을 치료하고 사랑이 사랑을 찾게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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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이버 영화 | ||
앞서 이 영화가 용서를 구해야 하는 영화라고 말한 이유는 원죄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는 그 세대에 태어나지도 그 세대에 태어나 불행한 시절을 겪은 부모 밑에서 크지도 않았다. 그런 것들의 원죄에 대해서 차라리 무관심하면 그만인 사람이다. 아무것도 개개인의 잘못은 아니다. 심지어 시대적으로 개개인의 실수나 그릇된 행동으로 일어난 일임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개인의 잘못이 아니다. 모두가 숙연하게 잊지 말아야 할 원죄이자 실제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 영화는 자신을 버린 부모를 찾아와준 자식의 용기이고 먼저 찾지 못한 부모의 부끄러움과 미안함이다. 꿀색의 피부색은 자랑스러운 색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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