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건대극장 ‘웰컴 투 동막골’의 팜플렛과 풋풋한 티켓 | ||
[디아티스트매거진 주동일] 영화 ‘킹스맨 : 시크릿 에이전트’를 보고 극장을 나오며 드는 생각은 ‘유쾌하다’와 ‘개머싯’이었다. 하지만 며칠 뒤 영화 밑에 깔려있는 영국 하층 계급 차브(Chav)들의 신데렐라 환타지에 대해 듣게 되었다. 그러자 ‘킹스맨’이 지금처럼 열렬한 환호를 받는 것은 유쾌하고 멋있는 것을 넘어 우리 시대의 젊은이들이 가지고 있는 답답함을 대신 풀어주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차브들에 대해 알고 난 뒤 다시 본 ‘킹스맨’에서 주인공 ‘에그시’는 이전과 완전히 다른 인물이었다. 관객을 끌어당기다 못해 ‘빨아들이는’ 캐릭터였고, 보는 내내 에그시가 실존인물일지도 모른다는 철없는 환상을 계속 품게 되었다.
‘건대극장’의 이번 연극 ‘웰컴 투 동막골’ 역시 ‘킹스맨’과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할 작품이다. 물론 화려한 수트도, 참신한 액션신도, 콜린퍼스 급의 훈남 배우도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연극이 끝났을 때의 짙은 감정이 다음 날 아침에 눈을 뜰 때 까지 저릿하게 남아있다면, 당신도 모르고 있던 내면 어딘가의 갈증을 풀어준다는 점에서 ‘킹스맨’ 못지않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
[원작 연극의 스토리]
건대극장의 ‘웰컴 투 동막골’은 장진 감독의 연극과 박광현 감독의 영화를 원작으로 한다. 이번 공연은 건대극장의 예병현 연출가가 맡았다. 연출자와의 사전 인터뷰에 따르면, 이번 공연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영화 원작의 색채를 많이 입혔지만 기본 스토리는 연극 원작을 따랐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인물 구성뿐만 아니라 설정, 인물들의 이름이 영화 ‘웰컴 투 동막골’과 다르다. 배우 강혜정이 맡았던 ‘여일’ 역은 ‘연희’라는 이름으로 등장하고, 같은 마을의 열 살 꼬마 ‘동희’와 훗날 연희의 이름을 딴 동희의 딸 ‘연희’가 등장한다. 이번 연극은 동희의 딸 ‘연희’가 꿈속에서 동막골의 ‘연희’를 만난다는 동화 같은 설정으로 시작되었다.
[원작 영화의 연출]
하지만 스토리와 달리 연출은 훨씬 영화에 가까웠다.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영화와 비슷한 장면이 자주 등장해 편안한 기분으로 연극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팝콘 씬’처럼 영화에서만 가능한 장면들은 삭제되거나 연극에서의 기법들로 대체되었다. 예를 들면 멧돼지가 등장하는 장면은 암전을 이용한 몽타주로 긴박한 장면을 빠르게 진행시켰다. 그런데 스크린과 달리 눈앞에서 배우들이 직접 연기를 하다 보니 딱히 영화의 장면이 연극적 한계로 ‘대체’되었다는 느낌보다는 연극이 그 자체로 영화와 독립적인 연출을 했다는 인상을 받았다. 오히려 영화의 일부 흥미유발 장면이 빠지면서 관객들은 극에 집중하게 되고, 이것이 후반부의 높은 몰입도로 이어지며 눈앞에 펼쳐진 무대의 ‘동막골’을 실제로 어딘가에 존재하는 공간처럼 느끼게 된다. 특히 높아진 몰입도가 극 특유의 따뜻한 스토리와 공간 배경인 ‘동막골’을 만나는 순간부터는 공연이 진행되는 내내 아늑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영화 원작에 등장하는 ‘동막골’은 동화와 환타지의 요소가 섞여있는 이미지다. 반면 건대극장의 연극은 중심 소재인 ‘동막골’의 이미지를 영화 원작과 달리 따뜻하고 아늑한 느낌으로 설정했다. 그러다보니 영화 원작과 건대극장의 연극은 같은 원작을 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에게 서로 다른 이미지와 메시지를 전달한다. 중심소재의 이미지가 바뀜으로써 두 작품 전체의 색깔이 바뀌고, 거기서 도출되는 메시지의 색채까지 변화하는 것을 비교해보는 것도 이번 연극을 관람하는 색다른 방법이 될 것이다.
[건대극장만의 연출]
말하면서도 조금 부끄럽지만, 대학교 극단의 연극이다 보니 나는 배우들의 연기에 관대하겠다는 ‘경솔한 관대함’을 품고 극장의 객석에 앉았다. 물론 대학로의 극단에 비해 부족한 부분들이 종종 보이는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대학로의 극단 배우들을 뛰어난 연기가 종종 튀어나와 놀랄 때도 많았다. 배우들은 발성과 대사에서 ‘무리가 없다’의 수준을 넘어섰고, 관객들까지 몰입시키는 강렬한 감정연기를 보여줬다.
무대 활용도 흥미로웠는데, 이번 연극이 열린 극장은 객석이 무대를 ‘ㄴ’자로 둘러싸고 있었다. 관객들에게 보여줘야 할 부분이 두 곳으로 늘어나며 이번 연극은 일반 극장에서 공연되는 연극들보다 훨씬 입체적으로 연출되어야 하는 어려움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건대극장은 무대 곳곳에 쳐진 세 장의 검은 천막과 극장 출입구를 무대와 백스테이지를 이어주는 입구로 활용했다. 배우가 곳곳에서 등장하고 퇴장하는 방식을 사용함으로써 연극은 입체적으로 바뀌어 여러 각도에서 봐도 관람에 문제가 없었다. 뿐만 아니라 관객들로 하여금 무대 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 들도록 하면서 극장의 구조적 단점이 오히려 장점으로 바뀌기도 했다.
장면 전환도 인상적이었다. 암전을 이용하는 평범한 장면 전화도 이뤄졌지만, 장면 전환 이전의 장면이 따뜻한 내용이었을 경우에는 저녁노을처럼 어둡고 따뜻한 색감의 조명을 켜지고, 잔잔한 음악을 깔려나왔다. 그러면 한복을 입은 배우들은 각각의 역할에 맞춰 무대를 다음 장면에 맞게 전환했다. 할아버지는 천천히 평상을 펼치고, 연희는 바위를 굴려 무대 바깥으로 치우는 방식의 독특한 장면 전환은 극의 흐름을 끊지 않을 뿐만 아니라 관객들이 이전 장면에서 받은 감정도 그대로 이어가는 효과를 지녔다. 특히 인물들의 캐릭터를 그대로 유지하며 배우들이 무대 위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마치 극 속의 인물들이 눈앞에 살아나서 동막골의 평범한 일상을 보여주는 느낌이 들어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 외의 돋보이는 연출은, 극의 중간 중간에 짧게 등장하는 패러디들과 군인들이 한복으로 옷을 갈아입으면서 패션쇼를 하는 식의 개그요소들이 관객들을 웃기는 데에 성공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극에 패러디 등의 개그요소를 넣는 것은 관객들을 웃기는 데에 성공하더라도 극의 몰입도를 떨어트릴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매우 조심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스토리의 흐름에서 적절한 순간에, 너무 길지 않게 패러디를 삽입함으로써 극을 보는 데에 방해를 받지 않고 높은 몰입도를 끝날 때 까지 유지할 수 있었다.
![]() |
||
| ▲ 건대극장 ‘웰컴 투 동막골’ 포스터 | ||
–
극의 후반부에 가면 군인들은 살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동막골을 지키기 위해 유도사격을 하러 떠난다. 김영하 작가는 일본의 가네하라 히토미 작가의 책 뒤편에 평을 남길 때 ‘생리적 반응을 유발할 수 있느냐의 문제로 이 소설을 평가하자면’이라는 표현을 쓰며 그녀의 소설에 극찬을 남겼다. 군인들이 유도사격을 떠난 뒤 암전 내내 남들 몰래 눈가를 손으로 찍어대느라 정신이 없었던 것을 생각하면 이 연극은 훌륭했다고 생각한다.
사전 인터뷰에서 연출자 예병현씨는 관객들이 생각해주길 바라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웰컴 투 동막골에서 군인들은 각자에게 아무 의미를 갖지 않는 이데올로기 때문에 싸운다. 그러다 우연히 완충제인 ‘동막골’에서 서로를 만나고, 서로가 괜찮은 사람들임을 알게 된다. 이 이야기는 이데올로기에서 더 나아가, 개인들에게 큰 의미를 갖지 못하는 ‘성공’에 떠밀려 서로 경쟁을 하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과 닮았다. 이 연극이 어떻게 공연될 수 있었는지를 생각해주길 바란다.’
연극의 후반부를 보는 내내 눈물을 찍어댔던 이유는 연출자의 말이 떠올라서였을 것이다. 건대 극장의 연극은 잘 짜여진 원작들을 영리하게 섞고 그 위에 참신한 요소들을 적절하게 배치해 그 자체로도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차브 계급에 대한 이야기를 밑에 깔아둔 ‘킹스맨’처럼, ‘웰컴 투 동막골’ 역시 극중 인물들의 심리를 젊은 관객들과 연결해 그들에게 가슴이 먹먹할 정도로 짙은 감정을 전달한다. 그 사이 관객들은 자신도 모르고 있던 내면의 갈등과 갈증을 마주하고, 해소의 실마리를 찾게 된다. 그렇게 연극을 본 다음날, 내가 눈을 뜨자마자 했던 생각은 ‘왜 이렇게 먹먹한 기분이 들지’였다. 잠시라도 모든 것을 내려놓고 웃을 수 있는 ‘동막골’에 간 것은 극중 군인들만이 아니었다. 치밀한 연출로 관객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군인들을 따라 동막골에 함께 앉아 있었다.
우리는 ‘인생에 답이 없다’며 한숨을 쉰다. 하지만 아무도 ‘인생에 낙이 없다’며 한탄하지 않는다. 성공은 이데올로기가 되었고 경쟁이 일상이 된 우리에게, 연극 ‘웰컴 투 동막골’은 한 번도 어루만져지지 않은 상처를 해맑게 쓰다듬고 지나간다. 답이 없음을 고민하는 것은 어른스럽고, 낙이 없음에 좌절하는 것은 철없다고 평가받는 이 시대에 우리는 우리가 무엇에 목말라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