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티스트매거진=박희진] ‘하나뿐인 청춘, 바로 지금 이 순간 입니다.’ 푸르른 청춘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씩은 듣거나 보았을 듯한 이 문구. 바로 내일로 기차여행을 홍보하는 포스터에 적혀있는 문구이다.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욕구가 내 머릿속을 뒤덮었을 때, 참 우연스럽게도 내일로 포스터를 보았다. 그 길로 당장 티켓을 구매했지만, 혼자 국내 여행은 처음 이라는 생각에 떠나기 전부터 설렘보다 걱정이 나를 감쌌다. 몇날며칠을 계획도 짜지 못하고 어리벙벙하게 있는 나를 하늘이 아셨는지, 친하게 지내던 동기 언니가 연락 와서 같이 가지 않을래? 라고 물었고, 나는 기쁜 마음으로 동의했다. 학창시절 수학여행 빼고, 제대로 된 국내여행은 처음이었기에 내일로를 떠나는 당일 아침까지도 완벽한 계획을 세우지 못한채 기차에 몸을 실었다. 그래서인지 여행 중 길을 잃기도, 조금이나마 세워 놓은 계획 조차 무너지는 경우가 많았다.
자고 일어나도 피로가 풀리지 않을 만큼, 몸은 점점 더 지쳐갔지만 ‘우리는 젊다!’ 이 생각 하나로 즐겁게 여행을 이어갔다. 여행의 막바지에 다다른 4일차. 전날과 다름없이 아침 기차를 타고, 목적지인 전라남도 보성으로 향했다. 보성 하면 떠오르는 ‘녹차 밭’을 보기 위해 보성으로 왔지만, 이 역시도 제대로 알아보지 않았던 우리는 자그마한 보성역 앞에서 우왕좌왕 대다가 한눈에 봐도 내일러(‘내일러‘란, 내일로 티켓을 이용해서 작게는 5일, 길게는 1주일 동안 전국을 여행하는 학생들을 일컫는 말이다.) 임을 알 수 있는 큰 배낭을 멘 사람들 뒤를 따라갔다. 녹차 밭으로 가기 위한 버스를 타기 위해 버스정류장 앞에 섰을 때, 비로소 내가 보성에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을 차리고 바라본 보성의 첫인상은 우리 외할머니를 본 것 같았다. 처음 와보는 전라도, 처음 와보는 보성. 낯설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마치 외할머니 댁에 온 듯 포근하고 편안했고, 배낭이 무거웠음에도 불구하고 입가에는 내내 미소가 번졌다.
보성은 정말 작은 곳이라서 버스 시간표가 정류장에 붙어있었다. 한 시간 간격의 배차간격 때문에 한 번 버스를 놓치면 다음 일정에 차질이 생길 수 있었기에 나무처럼 정류장에서 자리를 지켰다. 그렇게 20분정도가 지났을까. ‘녹차 밭’ 팻말을 커다랗게 붙인 버스가 사람들이 북적대는 정류장 앞으로 왔고, 모두들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일제히 줄을 섰다. 완전히 콩나물시루가 된 버스가 녹차 밭을 향해 달리기 시작할 무렵, 이른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정신 없이 보성으로 달려온 우리는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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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녹차 먹인 돼지로 만든 ‘보성 녹차 떡갈비’ | ||
버스창문에 밀착되기 일보직전이었던 나는 ‘배가 고프면 먹어야 한다.’ 라는 불굴의 의지로 재빠르게 검색을 하기 시작했고, 3분도 채 되지 않아 보성역에서 녹차 밭으로 가는 길에 보성하면 떠오르는 ‘녹차’ 그 녹차를 먹여 키운 돼지로 만든 녹차떡갈비를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식당을 알아냈다. 곧 이어 식당이 있는 정류장에 도착해 녹차 밭을 가는 수 많은 사람들 틈을 비집고 내렸다. 방금 검색해서 본 ‘보성녹차떡갈비’라고 적힌 빨간 간판을 보자마자 마치 학창시절 점심시간으로 돌아간 듯 하이에나처럼 달렸다. 신발을 벗고 배낭을 내려놓고 나니 한결 살 것 같았다. 그렇게 먹은 보성녹차떡갈비는 이제껏 살면서 먹은 음식 중에 정말 맛있다고 손꼽을 정도였다. 눈 깜짝 할 사이에 밥그릇을 깨끗이 비우고, 기분 좋은 배부름을 뒤로하며 식당을 나섰다. 문을 열고 나가려는 순간. 바로 눈 앞에 보이는 버스 시간표. 아뿔싸, 불과 몇 분전 버스 한대는 지나갔고, 다른 버스는 1시간 뒤에 온다고 적혀있었다. 한참을 벙쪄있다 식당 주인분께 여쭈어보았다. “택시는 어디서 타요?”. 이 곳은 택시가 잘 다니지 않을 뿐더러, 녹차 밭으로 가면 승객 수가 적기 때문에 택시 왕복 요금을 내야 한다고 하셨다. 가난한 여행자인 우리는 택시는 꿈도 꾸지 못하고, 다음 버스를 기다려야 하나 생각하던 즈음, 옆에 있던 언니가 다시 한번 여쭈었다. “그럼 걸어가면 얼마나 걸리나요?”. 주인 분께선 걸어가도 1시간 밖에 걸리지 않아 무리가 없다며, 길을 따라 걸어가면 ‘녹차 밭’이라고 쓰여져 있을 것이라고 하셨다. 소화도 시킬 겸 걸어가기로 결정했고, 다음 일정 중 하나를 미련 없이 포기하기로 했다. 묵직한 배낭과 함께 10분 정도 걸었을까? 눈 앞에 ‘녹차로’ 라는 표지판이 보였다. 그 때 알았다. 우리는 국도로 진입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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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 국도 ‘보성 녹차로’ | ||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이어진 도로를 보니, 순간 정신이 아뜩해졌다. 날개 달린 듯 가볍던 발걸음은 발목에 쇠사슬이 묶인 것처럼 느려지기 시작했고,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려고도 생각해보았지만 그러기엔 너무 많은 길을 와버렸었다. 5분에 한 번씩 볼까말까한 자동차들에 히치하이킹은 TV에서만 볼 수 있는 그림의 떡일 뿐이었다. 녹차 밭으로 가기 위한 수단은 오직 걷는 것 하나 뿐. 이왕 걷는 것 즐겁게 걸어가자 라는 생각으로 고요한 국도 위에서 노래를 틀고, 사진을 찍으며 걷기 시작했더니 발걸음은 다시 깃털처럼 가벼워졌고, 시간은 어느새 1시간이 지나있었다. 거의 도착해간다고 생각했던 그 순간, 조금 떨어진 곳에 자그마한 찻집이 보였다. 찻집에서 잠시 길을 여쭈어보기로 했다. 휑한 도로만 보면서 왔더니 너무 반가운 마음에 힘든 줄도 모르고 조심스레 찻집 문을 두드렸다. 친절한 찻집 주인은 여기서 길 하나밖에 없으니, 그 길로 20~30분 정도만 가면 된다고 설명해주었다. 아직 조금 남았지만, 조금만 더 힘내자며 상쾌한 기분으로 찻집을 나섰고, 나오자마자 바로 보이는 구불구불한 오르막길을 따라 올라갔다. 오르막길은 끝이 없었고, 많이 지쳤는지 우리는 점차 말이 없어졌다. 아마 그 때부터 이상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겨우 오르막길을 올라 평지가 나왔을 때, 아까 걸어온 국도의 만큼의 길이 펼쳐졌고 차는 물론 지나가는 사람, 심지어 개미 한마리 조차 보이지 않았다. 평지를 다 걸었을 땐 새로운 오르막길이 펼쳐졌고, 우리는 잠시 걸음을 멈췄다. 그 곳은 편백나무로 가득 차 있었고, 시냇물이 졸졸 흐르는 소리, 살랑살랑 바람이 부는 소리, 작은 새가 지저귀는 소리. 자연을 느끼니 머리 속으로 시원한 바람이 부는 듯 했다. 또 다시 오르막길을 오르니 지도가 나왔다. 하지만 눈을 씻고 찾아봐도 녹차 밭은 보이지 않았다. 허탈한 마음에 너무 짜증이나고 아무도 없다는 생각에 너무 무서웠다. 넋이 나간 채로 허공만 바라보고 있는 나를 대신해 언니는 재빠르게 보성군 주민센터에 전화를 했고, 우리가 힘들게 올라왔던 길을 다시 내려가 다른 길로 가야한다는 정보를 알아냈다. 내려올 때 역시 길에는 우리 밖에 없었고, 내려왔을 땐 처음 출발한 시간에서 2시간이나 지나있었다. 옆을 보니 전화하신 분 께서 알려주신 길이 보였고, 그 길을 따라 걷고 또 걸었다. 너무 힘들어서 도로 가에서 주저앉아 쉬기도 했고, 되지 않을 걸 알면서 히치하이킹도 시도해보았다. 얼마나 열심히 걸었을까. 저 멀리서 녹색바탕에 커다랗게 ‘대한다원’ 이라고 적힌 간판이 보였다. 무거운 배낭이 발목을 부여잡는 듯한 힘듦이 느껴졌지만, 우리는 녹차 밭을 향해 정말 열심히 걸었다. 총 3시간에 걸쳐 녹차 밭에 도착을 했고, 무거운 배낭을 내려놓고 나니 주위의 아름다운 자연들이 하나 둘 씩 눈 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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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름다운 보성 녹차 밭 ‘대한다원’ | ||
그리고 녹차 밭과 만난 그 순간. 그 희열은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2월, 추운 겨울이었지만 한여름에 길을 걷듯이 땀을 흘렸고, 아무도 없는 국도를 걷고, 3시간동안 녹차 밭을 찾아 길을 헤맸을 땐 배낭을 저 멀리 던져버리고도 싶었다. 엄청난 시간 소비 덕분에 뒤 일정에 많은 차질이 생겼지만, 지금 와서 웃으며 생각해보면 내가 청춘이니까, 젊으니까 할 수 있었던 경험이 아닌가 싶다. 누군가와 함께하는 여행이 여행 중 내 마음 속에 나도 모르는 안전띠를 메주었다. 길을 잃었을 때, 힘들어서 주저앉았을 때 나 혼자 였다면 소리 없는 울부짐을 지었을 것이다. 녹차의 수도 보성. 남들에겐 그저 녹차로 유명한 곳이지만, 나에겐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의 장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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