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과 환상>전-사실과 사실적인 것, 그 사이에서 벌어지는 모든 것에 대해
고대영 기자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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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빌딩의 꿈 ©고명근, 국립현대미술관 | ||
[디아티스트 매거진=고대영] 현실과 비현실. 이 둘을 가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우리의 사고일 것이다. 사고는 경험으로부터 비롯된 갖가지 것들의 융합적인 덩어리일 테고 말이다. 경험적 사고를 지닌 인간은 하루를 살아가면서 수많은 사물과 맞닥뜨리고 그 사물들의 존재를 인정한 채 지나간다. 따라서 일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우리 앞에 놓인 수많은 증거들을 통해 현실이라는 공간을 무의식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극사실주의가 가져오는 비현실성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이는 앞서 말한 무의식적으로 현실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사고와도 관련이 깊다. 어쩌면 인간은 자신도 모르게 현실과 비현실간의 뚜렷한 구분을 지향하고 있는지 모른다. 쉽게 말해 당연시 여기는 것들의 일종의 반란을 원치 않는 것이다. 거기에 놓인 그것은 그 자체로 존재하기 때문에 더 이상 이에 대해 의문을 갖지 않는 것. 어쩌면 현실에서만 살아온 인간이 보이는 부족한 단면으로도 볼 수 있겠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극단적인 사실을 추구하는 작품들이 일련 적으로 등장을 하게 되었다. 이번 전시가 바로 그러하다. 사실보다 더 사실적인 묘사를 통해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로 하여금 현실을 부정하게 만든다. 전시를 보는 내내 현실에서 스쳐지나간 것들을 하나의 초점에 기대어 바라보게 되면서 우리는 기존의 사고와 우리 앞의 작품 사이에서 작은 충돌을 맛보게 된다. 부정하고 싶을 정도로 사실적으로 표현된 그 무엇. 이는 환영과 환상으로 표현된다.
환영이 1차원적으로 즉 시각적으로 우리에게 무언가를 전달한다면 환상은 그러한 환영을 통해 우리를 현실로부터 벗어나게 해준다. 결과가 아닌 과정에 가까운 것이다. 그 결과는 각자의 것이기에 단정하기 어렵다. 작품 속 극 사실주의는 우리가 경험해온 사실과, 사실감을 표현해냈다는 인지 사이에서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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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림이 된 남자 ©유현미, 국립현대미술관 | ||
그중 유현미의 ‘그림이 된 남자’의 경우 이러한 환상을 영상을 통해 극대화해주었다. 그녀는 사진을 회화화한 그림을 통해 먼저 관객들에게 극사실주의적 표현을 감상하게 한다. 그러나 여기서 그치지 않고 한 남자가 액자 속 그림이 되어가는 과정을 영상을 통해 보여줌으로써 한 단계 더 깊은 환상을 체험하게 한다. 마치 자신의 그림이 실제로는 한 남자를 향한 사진이었던 것처럼 느끼게 하는 그녀의 작품이다. 여기서 ‘그림이 된 남자’는 예술을 인간의 소유라고만 생각했던 기존의 사고에서 벗어나 그 반대의 경우에 대해 느끼게 하고, 나아가 우리가 보는 것이 갖는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결국 이번 전시는 현실 속에 실재하다고 생각하는 사고를 뒤바꿈으로써 우리에게 환상을 경험하게끔 한다. 물이 든 컵과 그 컵에서 쏟아져버린 물, 그 사이의 과정을 환상이라는 경로를 통해 직접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물이 흘러넘치는 일련의 시공간 속에서 우리는 부정하고 싶었던 잠재된 사고를 깨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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