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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눅한 냄새, 이별의 기억_<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이준건 기자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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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많은 기억, 첫사랑

[디아티스트매거진=이준건] 사랑을 할 때면 말이 많아진다고 했던가. 나는 말보다 손이 바빠지는 타입이었다. 사랑할 때의 설레는 감정, 이별한 후의 아픈 그리움. 그런 것들을 노트에 꾸준히 적어 넣고 한동안 그걸 쓰는 데 미쳐 살다 시간이 좀 지나면 책장 한구석에 처박아 둔 채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갔다. 그러다 우연히 짐정리를 하다가, 혹은 센치해진 새벽에 문득 떠올라 그 노트를 펼쳐 보면 너덜거리고 눅눅한 느낌이 손끝에, 그리고 인중으로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리 향기로운 냄새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역겨운 냄새도 아니다. 아마 첫사랑의 기억은 그런 노트의 눅눅한 냄새가 아닐까? 이제는, 음미하기에 달콤하진 않아도 그리 밉지만은 않은 아련함.

   
▲ 학창 시절에 함께 어울렸던 친구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는 첫사랑이 무엇인지 나(커징텅)의 기억을 통해 보여준다. 고등학생 시절, 한 소녀를 좋아하던 4명의 친구들. 한 소녀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으로 묶인 이들은 오로지 그녀의 관심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정작 나는 관심이 없지만, 우연한 계기로 그녀(션자이)와 친해지게 되고 사이는 긴밀해진다. 션자이가 좋아진 나도 션자이에게 고백하지만 그녀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리고 대학생이 된 우리들은 점점 만나기도 어려워졌고 결정적으로 나와 션자이는 다투게 된다. 그렇게 갈라진 첫사랑은 15년 뒤 결혼식장에서 다시 만난다. 그녀의 옆이 아닌, 그녀를 바라보는 입장에서.

당연히 이루어질 줄 알았던, 그래서 더 아팠던

첫사랑은 뭘까. 도대체 무엇이기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첫사랑에 집착하고 첫사랑을 아름답게 기억하는 걸까? 곰곰이 따져 보면 첫사랑은 아플 수밖에 없는 기억이다. 모든 진심을 다하지 않았더라면 첫사랑이 아니라 풋사랑일 터이고, 모든 진심을 다했더라면 어떻게든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으니. 그래서 사람들이 “첫사랑, 첫사랑”하는 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법도 몰랐으나 무엇보다 사랑 받는 법도 몰랐다. 사랑 받기가 두려웠다. 나름대로 사랑은 이런 것이다, 하고 노력해 보지만 오히려 그 노력이 사랑을 방해할 줄이야. 그래서 찌질하게 혼자 울먹거리다가 마침내 첫사랑이 끝나고야 만다. 순진하게도, 당연히 이루어질 줄로만 알았던 사랑은 그렇게 무너져 내리고 절망의 시간이 지나 성숙하게 된다.

커징텅 역시 션자이가 첫사랑의 기억이었다. 그는 싸움 대회까지 열어서 그녀의 주목을 끌고자 하지만 정작 그녀는 그를 향해 ‘유치하고 바보 같다.’며 질타한다. 나름의 노력과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커징텅은 그녀에게 실망하여 떠난다. 영화의 마지막에 나오는 바지만, 그녀 역시 그를 사랑했음에도 커징텅은 끊임없이 그녀의 사랑을 확인받기 원하고, 그녀의 사랑을 정식으로 인정받기 위해 노력한다. 이런 걸 보면 만족을 모르는 사랑, 그것이 바로 첫사랑의 특징이 아닐는지. 그래서 당연히 이루어질 거라 헛된 기대를 하고 부풀어진 기대만큼 더 아픈 감정을 느끼는 게 아닐까.

   
▲ 사랑하길 원했고 사랑받길 원했으나 미숙했다.

그러나 첫사랑의 기억은 커징텅만의 것이 아니었다. 션자이 역시 커징텅이 첫사랑이었다. 고백했을 때 왜 거절했냐는 커징텅의 물음에 션자이는 대답한다. “사람들이 그러는데 누군가를 사랑할 때 가장 아름다운 시간은 시작하기 전 설레는 감정이래. 사귀고 나서는 좋았던 감정이 사라져버린대. 그래서 네가 좀 더 오래 나를 좋아하도록 곁에 두고 싶었어.” 커징텅은 사랑 받는 법을 몰랐지만, 션자이는 사랑하는 법을 몰랐다. 그녀는 자신이 커징텅을 사랑하기 시작할 경우 그가 떠나갈까 두려워했다. 흔히 말하는 철벽녀의 심리랄까. 사랑받기 위해 벽을 쌓아올렸던 션자이 역시 첫사랑이 아닌 다른 사람과 결혼할 수밖에 없었다.

   
▲ 오해는 풀렸지만 이미 시간은 지나버렸기에.

안녕, 내 첫사랑

   
▲ ⓒ 박철권, <와르르>

첫사랑과 관련된 만화에서, 오랫동안 첫사랑과 함께 살아온 남자는 그녀를 보내며 묻는다. “이제 가는 거야?”, “아니…네가 날 보내는 거야.”, “잘 가. 이 말 한마디 하는데 참 오래도 걸렸다….” 커징텅도 그녀와 이야기하며 자신은 여전히 유치하게 살 거라면서 쿨하게 웃는다. 오랫동안 질질 끌었던, 그래서 더 아팠던 첫사랑의 기억을 이제는 보내줄 수 있겠다는 뜻이었을까.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는 이처럼 첫사랑의 기억과 아픔, 그리고 극복을 아름답게 다룬다. 개봉한 지 어느덧 4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영화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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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건 기자
seawhale98@thearti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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