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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hoto by 양현(zoom) Place in 명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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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티스트매거진=주동일] 패션을 좋아하지만 모델은 아닌 일반인들이 모여 명동에서 런웨이를 열었다. 한껏 힘 준 옷을 입고 치킨집에서 닭다리를 뜯는 패션 커뮤니티 정모가 아니라, 백여 명의 지원자들 중에서 심사를 통과한 일반인 모델들과 전문적인 포토 팀, 메이크업 팀까지 동원한 체계적인 패션쇼였다. 단, ‘모델 참가 금지 + 모델 체형이 아닐수록 환영’ 이라는 독특한 공모 조건이 붙었을 뿐이다. ROOP이라는 이름의 이 패션쇼는 2월 14일 명동 한복판에서 다크 초콜릿보다 황홀하고 화이트 초콜릿보다 달콤하게 열렸다.
나는 어떤 사람을 설명할 때, ‘회사원’이라고만 소개하는 것이 그들의 삶을 모독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물론 당사자가 원하는 경우에는 그에 경의를 표해야 한다). 회사에만 박혀서 살더라도 죽을 때 까지 펜을 놓지 않는다면 그는 회사원으로 ‘돈을 벌었지만’ 작가로 ‘살았던’ 것이다. 만일 기타를 놓지 않았다면 마찬가지로 뮤지션으로 살아온 것이다.
만일 내 생각에서 오류가 발견된다면 그것을 겸허히 인정하겠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말한 방법이 누군가를 소개할 때 단순히 ‘회사원’이라고만 부르는 것보다는 그 사람을 2억 배는 더 잘 설명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또한 이 방법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삶을 규정하는 것과 경제활동이 별개로 나뉠 수 있다는 것을 알게끔 해준다고 확신한다.
여기까지 글을 읽어 온 당신이 내 말에 동의하건 말건 이것만큼은 생각해보길 진심으로 바란다. 당신은 스스로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출퇴근 시간에도 생각할 수 있도록 질문을 기억하기 쉽게 바꿔주자면 ‘당신의 정의(Definition)란 무엇인가?’
세상의 모든 숨겨진 아름다움을 찾다가 죽겠다고 결심한 나로서는, 이번 ROOP 런웨이의 소식을 들었을 때 그것의 존재만으로도 온몸이 짜릿했다. 각 패션 장르의 매니아들을 모델로 지원받은 뒤 심사를 거쳐 런웨이를 진행하는 것은 그 자체로 여러 의의를 지닌다.
우선 우리나라에 잘 알려지지 않았거나 잘못 알려진 룩들이 무대에 오른다는 점과 그것을 모델들이 아닌 일반들인 진행한다는 점은 기존의 패션쇼들과 달리 매우 독특한 의미를 가진다. 패션은 하이패션에서 스트릿 패션으로 전해지지만, 우리가 따르는 하이패션은 또 다시 스트릿 패션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라르스 스벤젠’의 『패션 철학』 (MID:2013) 참조). 즉, 패션을 끌어가고 만들어 가는 것은 디자이너 못지않게 일반인들의 영향도 매우 크다. 패션의 원천이 되기도 하는 일반인들의 패션은 최근에 와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점점 더 많은 스트릿 사진이 인터넷에 퍼져갔고, ‘사토리얼리스트’나 스트릿 패션 잡지들처럼 스트릿 패션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출판물도 등장했다. 하지만 일반인들의 패션을 다루는 패션쇼는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 일반인에 의해 이뤄지는 스트릿 패션은 어디까지나 사진으로만 접할 수 있을 뿐, 그들의 컨셉에 맞는 워킹과 연출을 가미한 ‘쇼’는 아직 볼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스크린 샷만 주목받던 영화가 처음으로 우리나라에서 상영된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까? ROOP의 일반인 런웨이는 패션계가 주목하지 못한 부분에 런웨이라는 스팟 라이트를 비췄다. 학생들에 의해 이뤄진 패션쇼다보니 수준은 조금 떨어졌을지 몰라도, 그 의의에 있어서는 노이즈를 사운드로 바꾼 지미 헨드릭스나 화가의 행위 자체를 그림으로 남긴 잭슨 폴락과 같은 맥을 지녔다고 볼 수 있다. (물론 ROOP이 앞으로도 이 부분에 주안점을 둘지는 지켜봐야 할 문제다.)
ROOP의 런웨이는 클래식, 자유, 힙합, 빈티지, 다크웨어 다섯 장르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기대했던 대로 선발된 인원들은 각 룩을 자신들만의 스타일로 변화시켰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발매되지 않았거나 대중화되지 않은 아이템들부터 톡톡 튀는 매치까지 볼 수 있었다. 특히 똑같은 장르 내에서도 개개인의 체형에 맞게 옷이 변형되다보니 기존의 런웨이들보다 신선하고 자연스러운 느낌도 받을 수 있었다. 매니아들이 각 장르의 옷을 여러 관점으로 재해석하고,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자신들의 몸’에 새롭게 구현한 런웨이는 오히려 모델들이 없어 더 아우라가 넘치는 쇼였다. 그래서였는지 앰프에서 배경음악이 나오고 런웨이가 시작되자마자 캣워크 주위로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넓었던 명동 길거리는 순식간에 인파로 가득 메워졌다. 특별한 무대장치 없이 길을 걷는 ‘로드 런웨이’ 형식으로 진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패션쇼는 매우 성공적으로 진행되었다. 관객들은 아무도 캣워크로 들어오지 않았고, 오히려 모델들이 나올 때마다 박수를 쳐주는 등 적극적인 호응을 해주었다. 쇼의 마지막 주자로 주최자인 이찬유군이 워킹을 끝내고 돌아오자 캣워크를 둘러싸고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박수를 쳤고 사방에서 스마트 폰 플래시가 터져 나왔다. 짧은 피날레가 끝나자 관객들과 참여한 일반인 모델들은 다 같이 소리를 지르고 박수를 쳤다.
물론 런웨이는 준비 과정에서 어려움이 많았다. 포토 팀과 메이크업 팀을 제외하면 모델들뿐만 아니라 주최 측도 전문가가 아니다보니 하는 일마다 난관에 부딪혔다고 한다. 날짜와 장소 선정부터 쇼 방식, 모델들의 워킹, 자금문제까지 비전문가들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투성이였다. 특히 메이크업 팀과의 연락 문제로 쇼 하루 전날 모든 계획이 무산될 위기에 처했을 때는 주최 측의 사기도 많이 떨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쇼를 취소하기에는 참가자들의 열정이 너무나 컸다. 모델 지원자 중에는 직접 옷을 만든 사람부터 제주도에서 오는 사람, 심지어 장례식 발인을 마치고 오는 사람까지 있었다. 도저히 그 사람들에게 쇼를 취소하겠다는 메시지를 보낼 수 없었고, 주최자를 비롯한 팀장들은 쇼를 그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그 날 밤, 연락이 닿은 메이크업 팀장이 밤새워 일을 처리하며 당일 새벽에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고 마침내 2월 14일 명동에서 일반인 런웨이 프로젝트 ‘ROOP’의 패션쇼가 열리게 되었다.
이번 패션쇼를 밀착 취재하면서 가장 감명 깊었던 점은 참여자들의 옷에 대한 태도였다. 이번 패션쇼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관심 분야에 각별한 애정을 보여줬다. 물론 다양한 룩의 옷들이 등장했고 같은 룩이 개인들에 의해 다르게 해석되었던 점, 의외로 열렬했던 명동 시민들의 환호도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참여자들은 경력이나 금전적 보상 없이, 일반인들의 패션쇼를 만들겠다는 생각만으로 일반인 런웨이 프로젝트에 지원했다. 이것은 흔히 현재의 청년층을 평가할 때 쓰는 ‘현실에 대한 순응 혹은 도피’와 상당히 거리가 먼 모습이었다. 시간이 없는 직장인부터 돈이 없는 학생까지, 이번 쇼의 참여자들은 단 십 분 만에 끝날 런웨이를 위해 수많은 노력들을 기꺼이 바쳤다. 결정적으로 런웨이 전날 모든 계획이 무산될 위기에서도 누구 하나 그만두자는 얘기가 없는 것을 봤을 때에는, ‘이 사람들이 어지간히 옷을 좋아하는구나.’라는 생각만 들었다.
이 칼럼을 시작하면서 나는 당신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 물어보았다. 우리는 꿈과 현실의 딜레마를 태어나서부터 죽는 순간까지 마주한다. 그 사이에 어느덧 우리는 현실 속에서 꿈을 놓치지 않는 방법을 터득하기 시작했다. 당신이 삶에서 정말로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우리 자신을 설명하기 전에 먼저 ‘그것’을 알아야만 한다.
비록 손에 돈 한 푼 쥐지 못할지라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뛰고 살아있다는 느낌이 드는 ‘그것’을 뽐내는 자리였다고 말하는 것이 어쩌면 이번 런웨이를 가장 잘 표현하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첫 모델의 워킹으로부터 십분 쯤 지났을 때 피날레의 마지막 주자가 돌아왔다. 쇼가 진행된 십분은 뜨거운 입 속에 들어간 카카오 덩어리처럼 녹아내리듯 빠르게 지나갔다. 하지만 그 찐득거리고 아찔한 쾌감 역시 런웨이가 끝난 뒤에도 쉽사리 가시지 않았다. 쇼가 끝나고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박수와 환호성 속에서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다. – 어쩌면 이번 쇼는 옷의 퀄리티가 아니라 참가자들이 삶에서 꼭 부여잡아온 ‘무언가’로 평가되어야 할 조금 특별한 쇼였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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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hoto by 이지은 Place in 명동 | ||
(2015년 2월 14일 명동에서 열린 ROOP의 런웨이는 해당 지역의 상인분들과 사전에 합의한 뒤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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