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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버드맨> 포스터 | ||
이제 뉴욕에 등장한 새라면 이년 전 타임 스퀘어 광장에서 나는(fly) 새가 되어버린 가수 싸이와 또 한 명, 버드맨 리건을 떠올릴 것 같다. 사실 군대를 두 번 다녀온 가수와 세 편의 히어로 영화를 찍었던 퇴물 배우를 동시에 떠올리는 것은 정말이지 뜬금없다. 둘 다 새와 연관된 것을 빼면 비슷한 점이 있을까? 하루 아침에 월드 스타가 된 댄스 가수 그리고 우리에게 잊혀진 과거의 배트맨. 하지만 영화 <버드맨>의 첫 장면도 뜬금 없기는 마찬가지다.
영화의 첫 장면, 브로드웨이 극장가의 어느 대기실, 속옷 차림으로 공중에 부양한 리건의 모습은 그렇게 범상치 않은 이야기의 시작을 알린다. 3월 개봉 예정인 <버드맨>을 미리 만나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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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버드맨> 포스터 | ||
배우 리건(마이클 키튼 분)은 자신의 모든 것을 곧 막을 연극에 올인한다.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을 원작으로 한 연극을 브로드웨이에 올릴 참인 것이다. 한때 히어로 무비 버드맨 시리즈의 스타였던 리건은 세상의 관심 밖으로 사라진지 오래되었다. 그는 이제 머리칼도 듬성하고 칠면조 같은 몸매를 가졌으며 아내와 헤어진 뒤 딸과의 사이도 소원해졌다. 잃을 것이 없는 상황, 그에게 이 모든 상황을 뒤집고 스스로의 존재감을 증명할 유일한 수단은 연극 뿐이다. 자신이 만들고 주연하는 연극. 배우보다는 연예인으로 치부되는 늙은 배우가 그것도 하필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 소설을 바탕으로 한 연극을 한다니 누가 큰 기대를 걸겠는가? 그의 내면의 목소리조차 스스로를 부정하며 들끓는다. 초조함과 불안함. 어쩌면 이 모든 일들이 자신의 현실을 부정한 발악으로 끝나버릴 수 있다. 연극이 소재가 된 영화에서 자신의 인생이 실패한 연극이 되어버릴 위기에 맡이하는 것은 매우 극적인 설정이다. 리건은 연극에 집착하게 된다. 연극을 함께 할 재능있는 배우를 원하던 그는 시사회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마이크(에드워드 노튼 분)를 끌어들이게 된다. 감당하기 어려운 출혈을 감수하고서라도 마이크와의 계약을 밀어부친 리건. 하지만 마이크의 합류는 일을 순탄치 않은 방향으로 이끈다. 재능있고 잘 나가는 배우 마이크는 리건이 통제할 수 없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시사회는 엉망이 된다. 더군다나 마이크의 등장은 사람들의 관심을 리건이 아닌 마이크로 향하는 상황을 초래하고 만다. 모든 것이 엉망이 되어가고, 리건의 내적인 갈등과 긴장은 극에 달한다. 새된 상황에 내몰린 그의 연극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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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버드맨> 중에서 | ||
영화 <버드맨>은 충격적인 영상을 관객에게 선사한다. 그것은 리건이 보여주는 초능력과 그의 또 다른 페르소나 버드맨 때문은 아니다. 끊임없이 교차하며 경계가 허물어진 현실과 환상, 그리고 끈질긴 시선으로 카메라가 쫓는 연극 무대 뒤의 모습은 생동감과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연극이 펼쳐지는 장막 뒤 배우들의 또 하나의 연극은 각 인물 간의 완벽한 앙상블로 조화를 이룬다. 배우들의 이면을 관찰하고 싶은 사람들의 관음적 상상력 또한 자극한다. 물론 기교가 남발되면 산만할 수 있다. <버드맨> 역시 롱테이크와 구분없이 넘나드는 이야기 전개가 보는 이들로 하여금 혼란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애초에 흔들리는 리건이 주인공이다. ‘난 아직 할 수 있다’는 믿음과 ‘내가 해낼 수 있을까’하는 의문 속에 허우적대며 분열되는 모습은 영화의 기교 속에 꽤나 잘 어우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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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버드맨> 중에서 | ||
로건의 이중 자아를 혼란스럽게 비벼 놓은 장면들은 이 영화의 백미다. 곳곳에 가미되는 리건의 초능력은 ‘믿음’을 상징하고, 악마처럼 자신을 뒤흔드는 버드맨은 ‘의문’을 상징한다. 시간이 갈수록 자신 속의 ‘의문’이 ‘믿음’을 밀쳐내고 리건은 포기에 가까운 순간으로 내몰린다. 그는 연극에 모든 것을 걸었지만 그 진정성에 ’믿음’을 보여주는 사람은 없다. ‘믿음’이 아닌 의도하지 못한 ‘가쉽’ 속에 연극의 막은 오르고, 평론가의 펜촉은 더욱 날카롭게 리건의 숨통을 죄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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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버드맨> 중에서 | ||
새가 되어버렸다는 의미는 우리에게 부정적인 느낌을 준다. 그러나 또 다른 의미에서 새가 되어 날아오른다는 것은 성장과 극복의 상징이기도 하다. <버드맨> 속에서 뜬금없이 싸이가 떠오른 것은 이 때문이다. 난(I) 완벽히 새됐다는 자조섞인 ‘새’와 다시금 부활하여 날아오르기 위해 날개짓하는 ‘새’. 어쩌면 리건 속에서 발견한 모습은 그 두 마리의 ‘새’일지 모른다. 인간 속에 존재하는 두 마리의 새. 화제작 <버드맨>은 무대와 인생이라는 안팎의 연극을 통해 좌절과 극복 속에 분투하는 인간, 그 우스꽝스럽고도 애처롭운 모습을 한데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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