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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울림 고전극장 ‘모파상 단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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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울림 고전극장 팜플렛과 티켓. 장소는 극장 1층 카페.

[디아티스트매거진=주동일]

[Intro]

<문제 1> 다음 중 당신의 구미를 당기는 주장은?

①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악의 평범성’을 말했다. 이것은 악이 누구에게서나 발현될 수 있다는 뜻이다.

② 불교는 모든 인간이 불완전하다고 말했다. 이것은 당신의 불완전한 기준으로 세상을 평가하려 들지 말라는 뜻이다.

③ 중학교 때 모범생이었던 나는 하루아침에 선생님들이 가장 싫어하는 학생으로 전락하며 ‘그림자는 햇빛 옆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양지에 있는 당신과 그림자 속에 있는 사람들은 고작 한 걸음 떨어져 있을 뿐이다.

④ 스물 셋 이후로 나는 완벽해지는 경험보다 무너지는 것이 더 많은 성장을 시켜준다고 생각한다. 완벽해지는 것은 내가 동경하는 사람들만을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주지만 무너지는 것은 내가 무시하고 비난해온 모든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이 중에서 하나라도 당신의 구미를 당긴다면 당신은 모파상의 작품을 좋아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만일 아니라면 당신이 이미 모파상을 사랑하는 중이기 때문일 것이다.

모파상은 1850년 프랑스 노르망디에서 태어나 어머니의 친구였던 플로베르에게 어릴 적부터 문학을 배우며 훗날 에밀 졸라와 함께 파리 자연주의 문학의 거장으로 불리게 된다. 톨스토이에게 극찬을 받은 단편소설 작가라는 점만 빼면 20대에 참전해 군대를 가고, 전후에 정주 부처에서 일하며 돈을 벌었다는 점에서 그의 일생은 얼핏 대한민국의 2~30대 남성들과 비슷하기도 하다. 그 때문일까 모파상의 작품은 150년이 지난 지금도 문학 혐오자부터 문학 오타쿠까지 다양한 팬들을 거느리고 있다.

트와일라잇의 로버트 패틴슨이 주연을 맡았던 영화 ‘벨아미’의 원작자이자 ‘목걸이’, ‘비곗덩어리’로도 유명한 작가 기 드 모파상의 단편들은 산울림 극장에서 연극으로 재현되고 있다. 그것도 ‘고도를 기다리며’를 비롯한 수많은 고전 연극으로 이름을 날린 ‘산울림 극단’이 원작 스토리의 충실한 반영과 톡톡 튀는 연출로 정반합을 이뤄내 만든 연극이라고 하니 위의 문제를 읽으면서 한 번이라도 고개를 끄덕인 사람이라면 꼭 보기를 추천한다.

   
▲ 산울림 소극장으로 가는 길, 길을 제대로 가는 것이 맞나 싶을 때 쯤 포스터가 보이기 시작한다.

[Verse 1 : 정 – 간단한 원작 줄거리]

2015 산울림 고전극장 ‘모파상 단편선’은 네 개의 작품으로 구성된다.

첫 번째 스토리인 ‘크리스마스 이브’는 성탄전야, 싱글인 어느 남자가 평소 이상형이던 뚱뚱한 몸매의 여자를 만나 함께 식사를 나누는 로맨틱한 장면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침대에서 만난 그녀는 알고 보니 만삭의 임산부였고 그 자리에서 출산을 시작한다. 당시의 법에 따라 한 순간에 아빠가 된 남자는 그녀를 혐오한다. 그리고 이상형이었던 그녀의 모든 외모를 비난하기 시작한다. 훗날, 그 날을 회상하던 남자는 욕을 퍼붓고 막이 내려간다.

두 번째 스토리인 ‘29호 침대’는 미남 ‘에피앙 대위’의 이야기다. 에피앙 대위는 운명적인 여인을 만나 인연을 맺는다. 에피앙 대위가 참전한 사이 대위의 여인은 독일군들에게 강간을 당하고 매독에 걸린다. 하지만 여인은 더 많은 독일군들을 죽이기 위해 일부러 매독을 치료하지 않는다. 에피앙 대위는 그 날부터 주위 사람들의 조롱을 의식하고 여인을 멀리한다. 그리고 위독해진 여인의 마지막 키스까지 거절한다. 여인은 에피앙 대위에게 위선자라는 말과 함께 비난을 쏟아낸다. 그 말을 들은 대위는 병실을 도망치듯 빠져나온다. 며칠 뒤, 여인의 사망 소식을 들은 에피앙 대위는 말없이 어깨를 편다. 그리고 극은 마무리된다.

세 번째 스토리 ‘전원비화’에서는 가난한 두 가족이(이하 A집, B집) 등장한다. 가장의 직업, 생계 수준, 자식들의 수와 나이까지 똑같은 두 집은 어느 부잣집 부인의 입양 제안을 받게 된다. 부인은 A집에 가서 자신들의 모든 유산을 상속하고 매달 생활비를 지급하겠다는 조건으로 막내아들을 입양시켜 줄 것을 부탁하지만 거절당한다. 하지만 B집으로 찾아간 부자 부인은 막내아들을 입양시키는 데에 성공한다. 몇 년 뒤 부자 부인이 죽고 부자가 된 B집의 막내가 돌아오자 마을 사람들은 B집을 선망의 눈으로 바라본다. A집 막내는 집에 돌아가 병든 부모에게 왜 자신을 팔지 않았냐며 소리를 지르고 집을 나간다. A집의 부모들이 눈물을 흘릴 때 점점 풍경이 어두워지며 막이 내린다.

마지막 스토리인 ‘목가’는 기차의 두 남녀를 묘사하며 시작된다. 마르세이유로 향하는 둘은 우연히 말문을 터 대화를 하며 목적지까지 향한다. 그 때 여자가 며칠 째 수유를 하지 못해 젖이 불었다며 힘겨워하기 시작한다. 망설이던 남자는 여자의 부탁으로 젖을 먹기 시작한다. 남자가 젖을 다 먹자 여자는 고맙다는 말을 한다. 그 때 남자는 사실 이틀 째 굶고 있었다며 오히려 고마웠다는 말을 한다. 기차는 계속 달리고 창밖의 봄바람이 불어온다. 그렇게 막이 내리며 모파상 단편선의 마지막 스토리가 끝난다.

모파상 문학의 가장 큰 매력은 딜레마다. 어떤 사건이 윤리적인지 비윤리적인지, 아니면 당신은 비윤리적이지 않을 자신이 있는지를 묻는 모파상의 문학적 딜레마는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답이 나오지 않는다. 극중 인물들은 자신들의 이성을 믿지만 생각지도 못한 상황 앞에서 이성뿐만 아니라 자아까지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욕망과 현실 앞에서 사람들의 인식이 달라지는 장면들은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라쇼몽’과도 비슷하다.

   
▲ 산울림 소극장 1층 외관. 민트색 문을 열고 들어가면 인테리어가 매력적인 카페가 나온다.

[Verse 2 : 반 – 연출]

산울림 극장의 ‘모파상 단편선’은 원작을 충실히 반영했다. 심지어 그 흔하다는 한국화, 현대화 각색마저도 하지 않았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의 시간적 배경을 고수하고 ‘센 강’이 등장하는 등 연극은 배경까지 원작에 충실했다. 하지만 그 위에 덧씌워진 연출은 과감하고 신선했다.

연극이 진행되는 동안 무대에는 남자 배우 한 명, 여자 배우 한 명으로 단 두 명의 배우만이 등장한다. 심지어 ‘29호 침대’와 ‘목가’는 각 배우가 혼자 등장하기까지 한다. 무대장치나 소품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오직 나무의자 두 개와 간단한 의상만이 전부이다. 음향 역시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목가’에서는 잠시 잔잔한 음악이 깔리지만 ‘29호 침대’와 ‘전원비화’에서는 음향 효과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크리스마스 이브’에서는 여배우가 캐럴을 부르는 육성만이 등장한다. 배우와 의상, 나무의자 두 개만이 등장하는 말 그대로 ‘미니멀한 연출’이다.

하지만 연출자는 이를 역이용해 오히려 꽉 찬 느낌의 무대를 만들어냈다. ‘29호 침대’에서는 키스신에서 남자배우가 자신의 손바닥과 키스를 하고 나무의자를 여자 친구처럼 대하는 식의 연출을 통해 군인이 자신의 무용담을 들려주는 느낌이 나도록 했다. 이러한 연출은 ‘에피앙 대위’라는 캐릭터와도 잘 맞아 독백체로 쓰인 원작보다도 훨씬 생동감이 넘쳤다. 하지만 그 생동감 속에 순간적인 정적을 배치함으로써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것은 브라이언 맥나잇의 무대에서나 볼 법한 독특한 연출방법이었다. ‘목가’에서는 동화 구연 기법을 사용해 이전의 작품들과 다른 분위기로 관객들의 주의를 끌었다. 아동극에서 쓰이는 이런 기법이 원작의 어두운 스토리와 섞이며 오묘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크리스마스 이브’와 ‘목가’에서 두 인물이 마주보며 대화하는 장면을 두 배우가 나란히 관객을 바라보도록 연출한 것이었다. 이 덕분에 연극은 영화처럼 두 개의 앵글이 사용하게 되었고 적은 소품과 무대 장치에도 불구하고 몰입도를 높일 수 있었다. 고전 작품의 스토리는 그대로 따르되 연출에 있어서는 현대적인 기법들이 사용되어 고전극임에도 불구하고 지루할 틈 없이 연극에 빠져들 수 있었다.

[Verse 3 : 합 – 소감]

문학 작품을 희곡으로 옮기는 것은 치밀한 계산을 요한다. 우선 줄글로 된 문학작품을 무대 장치와 배우의 대사, 행동으로 옮긴 뒤 원작에 등장하지 않는 음향 등의 요소를 추가해야하기 때문이다. 만일 여기에 연출자 개인의 생각까지 녹여내려 한다면 상당히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산울림 고전극장 ‘모파상 단편선’은 이 모든 것을 해낸 연극이다. 연출자 개인의 생각은 희극적인 요소들로 바뀌어 극 전체를 떠돌아다닌다. 이 때문에 일부 모파상 팬들은 끊임없이 웃음을 터뜨리는 관객들을 어색하게 느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희극적인 연출이 모파상의 딜레마와 엮이는 순간 극은 한순간에 블랙코미디로 바뀐다. 그 때 연극은 원작과 오묘하게 다른 색채를 관객들에게 강렬하게 남기고, 관객들은 막이 내릴 때마다 모두 손바닥이 부서질 정도로 박수갈채를 보낸다.

물론 이런 연출이 거슬리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연극은 문학과 독립된 예술이지 문학의 아류 예술이 아니다. 이번 연극 역시 모파상의 원작을 ‘차용’하는 예술이지 ‘찬양’하는 예술일 필요는 없는 것이다. 연출 자체의 수준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면 어쩔 수 없겠지만 원작과 다른 분위기가 다른 점을 꼬집는다면 그것은 애초에 잘못된 평가 기준을 가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연극은 희극적인 요소가 추가되어 모파상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쉬운 이해를, 모파상의 팬들에게는 새로운 관점을 갖도록 돕는다. 의외로 박민규 작가의 팬들이 이 작품을 좋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 산울림 소극장 정류장. 이 칼럼을 본 사람들은 나처럼 추위에 떨면서 극장까지 걸어가지 말고 따뜻하게 버스를 타길 바란다.

[Outro]

초등학교 시절 ‘바른 생활’ 교과서를 기억하는가? 그 책이 ‘읽기’를 제외한 모든 교과서 중에서 가장 두껍고 무거웠다는 것도 기억하는가? 표지도 떠오르지 않는 ‘바른생활’ 교과서의 무게를 기억하는 것은,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바른 생활을 할 수 없는 우리에게 그 책이 마음속의 ‘무거움’으로 남았기 때문일 것이다. 대부분은 현실에서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윤리를 일상으로부터 내던졌고 남은 사람들은 그 무게를 고스란히 견디다 자아가 짓눌렸다. 하지만 어느 쪽도, 자신이 무언가를 내던졌거나 짓눌렀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우리는 어느 순간 문득 깨달을 것이다. ‘바른생활’을 배운 우리는 고작 ‘바랜생활’을 하고 있다고.

모파상은 거미줄처럼 치밀하고 끈끈한 딜레마를 짜내어 우리가 믿어 온 모든 것을 자문하도록 만든다. ‘정말로 당신은 윤리적인가요?’ 혹은 ‘당신이 믿는 윤리는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요?’ 라고. 새해가 시작하고 한 달이 지난 지금, 스펙이 당신의 삶을 모든 면에서 완벽하게 만들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면 하루쯤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모파상과 마주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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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동일
dijug@thearti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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