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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덴 형제, <내일을 위한 시간> 상품으로 살아간다는 것

유서영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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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티스트매거진=유서영] 어느 날, 회사에 다니는 당신에게 두 가지 선택지가 주어진다. 120만원의 보너스를 받을 것인가? 아니면 직장 동료를 복직시킬 것인가? 이 질문이 주어진 순간 120만원의 돈과 직장 동료는 같은 ‘상품’으로 존재하게 된다. 이 두 상품의 가격을 책정해보니 어느 누구는 직장 동료의 가치보다 120만원의 가치가 높다고 판단한다. 어쩔 수 없다. 직장 동료를 선택한다고 해서 아이의 등록금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1년 치 전기세를 낼 수 있게 되는 것도 아니며 새롭게 이사한 집에 들여놓을 가구를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게 어느 누구에게 직장 동료는 대학등록금 보다, 전기세보다, 가구보다 가치가 떨어지는 상품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직장 동료를 선택하는 이들도 있다. 나를 전에 도와준 적이 있어서, 불쌍해서, 같은 동료니까 하는 복잡한 감정이 보너스 보다 사람을 택하게 한다. 그렇다면 직장 동료를 택한다고 해서 속물을 벗어나 의식 있는 사람이 될까? 아쉽게도 그렇게 말하기는 힘들다. 그들도 역시 돈 보다는 사람이라는 상품을 택한 것뿐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체제가 시작됨에 따라 노동을 부리는 사람이 여타 다른 상품처럼 가격을 매길 수 있는 것이 되어버렸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상품을 생산하는 또 다른 상품이 노동이고, 이 노동을 생산하는 사람 역시 상품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상품이 아닌 인간으로서 다시 존재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자본주의의 논리에서 벗어나 인간 대 인간으로 사람을 마주할 수는 없는 것일까?

   
▲ 남편에게 “노래하는 저 새가 나라면 좋겠어” 라고 말하는 산드라

“노래하는 저 새가 나라면 좋겠어.”

서두에 던진 두 가지 선택지에 관한 질문은 영화 <내일을 위한 시간>이 던지는 물음이었다.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영화 속 인물들도, 보는 관객들도 이 질문에 대해 내리 고민하게 된다. 주인공 산드라는 자신의 복직을 위해 투표권이 있는 동료들을 찾아다닌다. 동료들은 산드라의 복직과 1000유로 중 한 가지를 선택해야만 한다. 중복 선택도 기권도 할 수 없다. 산드라는 동료들의 집을 일일이 찾아가 자신을 ‘사달라고’ 해야만 한다. 그들이 1000유로보다 자신을 가치 있는 상품으로 평가해야지만 생계를 꾸려나갈 수 있다.

영화는 차분한 어조와 특별한 기교 없이 산드라의 뒷모습을 좇는다. 브래지어 끈이 보이는 민소매 차림을 한 산드라의 등을 좇으며 그를 응대하는 다양한 동료들을 만난다. 그녀의 동선이나 동작들은 조그마한 차이만 있을 뿐 일정하다. 초인종을 누르고, 그녀를 선택한 사람에게는 환대를, 돈을 선택한 사람에게는 문전박대를 당한다. 그 후 그녀는 신경안정제를 먹거나, 잠을 자려하거나, 남편의 차 옆 좌석에 앉아 햇살을 쬔다. 그녀의 눈은 마를 새가 없이 퉁퉁 부어있지만 최대한 구걸처럼 보이지 않으려 동료들을 마주한 순간 거리를 유지한다. 가끔 보이는 미소에는 행복함보다는 피곤함이 더 배어있고, 자신을 사달라는 행위에는 절실함 보다는 체념적 어조가 짙게 느껴진다.

갑이 되어버린 동료에게 문전박대를 당한 후, 산드라는 남편과 공원으로 향한다. 벤치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기계적으로 핥던 그녀는 뜬금없이 나무 위의 새를 보며, ‘저게 나라면 좋겠다.’고 말한다. 누구에게도 허락받지 않아도 맘껏 지저귈 수 있는 새가 부러웠던 것이다. 산드라의 우울증은 말이 턱 막히는, 더 이상 목구멍으로 말이 뱉어지지 않는 신체적 이상을 가져왔다. 이 증상은 오래되어 보인다. 단순히 동료들에 대한 배신감 때문이 아닌 보다 근본적인 억압이 영향을 미쳤다. 그녀는 제조업 공장의 노동자였다. 자율적 행위를 배제한 채, 누군가의 지시를 받으며 하루 종일 단순 노동을 하는 자에게 말이란, 억압되어야 하는 행위일 뿐이다. 작업의 능률을 향상시키고, 온전한 부품이 되기 위해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말이 막힌 그녀가 타인에게 자신의 의견을 뱉는 일은 어려운 일이며, 물과 신경안정제 없이는 힘든 일이었다.

   
▲ 사장의 제안을 거절한 후 회사를 나오는 산드라

“여보, 우리 잘 싸웠지?”

자신을 발품 팔러 다닌 결과 8명이 산드라를 샀고, 8명이 그녀 대신 돈을 택했다. 과반수를 넘지 않았음으로 그녀는 복직할 수 없게 된다. 다소 홀가분한 마음으로 짐을 싸고 회사를 나가던 찰나, 사장이 그녀를 부른다. 사장은 그녀의 표가 과반수를 넘지는 못했지만 직원 간 감정해소를 위해 보너스도 지급하고, 그녀도 복직시키기로 했다고 말한다. 그녀가 삶까지 포기하려 했던 일을, 사장은 한 순간 너무 쉽게 바꾸어버린다. 하지만 사장은 자신의 제안에 토를 하나 단다. 9월 말에 계약직 직원을 자르는 대신에 산드라를 복직시켜주는 거라고, 두 달만 쉬어라고 말한다. 산드라는 아무 표정 없이 사장의 말을 듣는다. 그토록 원하던 복직인데도 별다른 감흥이 없어 보인다. 기쁘지 않냐는 사장의 말에 ‘남을 해고시키고 복직할 수는 없다’며 쿨하게 회사를 나온다. 회사에 나온 후, 산드라는 남편에게 전화를 건다. 복직이 어렵다는 말과 함께 “우리 잘 싸웠지? 나 행복해”라고 말한다. 그녀는 영화 내내 볼 수 없었던 환한 웃음 지어보이며 조금은 당찬 걸음으로 집으로 향한다.

감독 다르덴 형제는 관객이 응당 기대하는 결말을 비튼다. 산드라가 동료들의 마음을 얻어 행복하게 일을 다시 하게 되고, 이 계기로 동료들은 돈보다는 사람을 중요시하게 되었다는 훈훈한 결말은 찾아 볼 수 없다. 오히려 산드라는 사장의 제안을 거절함으로써 일을 잃게 되었다. 그녀는 일 대신 사람을, 그리고 조금은 인간다움을 택했다. 계약직 동료를 위해 일을 그만두었고, 그 과정에서 상품에서 벗어나 주체적인 인간됨을 회복한 것이다. 앞서 말한 ‘자본주의 논리 아래 우리가 상품이 아닌 인간으로 다시 존재할 수 있는 방법’은 이 영화의 결말에 나와 있다. 자신을 발품 팔던 행위를 ‘싸움’이라고 부를 수 있게 된 건, 사장이 지시내리는 체제를 벗어났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상품이 인간으로 회복될 수 있는 건 이처럼 싸움의 행위에 있었다. 산드라는 이를 알았기에 또 다른 직장의 을이 되더라도, 예전같이 신경안정제를 먹는 일 이나 선택의 대상이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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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서영
yoosy91@thearti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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