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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매개의 이중논리_<아메리칸 스나이퍼>

이준건 기자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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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티스트 매거진=이준건] 짤깍, 짤깍. 한 저격수가 소총에 달려 있는 스코프(망원렌즈)를 통해 전장의 상황을 살핀다. 그때 여자와 아이가 대로 한복판에 나타난다. 아이의 어머니로 보이는 그녀는 주머니에서 대전차용 수류탄을 꺼내 아이에게 쥐어준다. 아이는 그걸 들고 아군 전차가 있는 곳으로 걸어간다. 무슨 의도를 가진 걸까? 무전으로 상부에 보고하니 알아서 결정하란다. 만약 당신이라면 그 아이를 쏠 것인가, 말 것인가?

영화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군말 없이 긴박한 선택의 순간으로 막을 올린다. 깜깜한 영화관, 보이는 것이라곤 눈앞의 화면 뿐. 거대한 스크린에 몰입한 관객들은 그 선택이 결코 남의 일이 아니라고 느낀다. 영화 속 주인공 카일의 시선은 ‘나’의 시선과 일치한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재매개의 이중논리가 시작된다.

디지털 영화와 재매개의 이중 논리

영상 촬영 기법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넘어오면서 영화 산업에 영향을 미친 게 있다면 영화 속 현실감을 훨씬 더 잘 살릴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이러한 현실감은 ‘투명성의 비매개transparent immediacy’라 부르며 관객이 미디어(영화, 드라마, 캔버스, 사진 등)의 존재를 잊고 자신이 그것의 실재를 보고 있다고 믿게 한다. 예컨대 관객은 영화를 보던 중 주인공의 시선(숏/역숏)이 되어 영화 속 다른 인물을 바라보고 있다고 느낀다. 그때 그 순간만큼은 우리 또한 영화 속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감, 즉 투명성의 비매개는 본래 아날로그 영화에서도 존재했으나 디지털 기법의 주요 특징인 컴퓨터 그래픽(CG)은 환상적인 세계나 현실적으로 구현이 불가능한 세계마저 마치 사실인 양 보여준다. 

   
▲ 영화 속 한 장면. 아메리칸 스나이퍼, 크리스 카일의 선택은 무엇일까?

이처럼 ‘몰입감’, ‘현실성’ 정도로 이해할 수 있는 비매개와 반대되는 게 있으니 바로 ‘하이퍼매개hypermediacy’다. 하이퍼매개는 사용자에게 미디어의 존재를 환기시키도록 만든다. 왜 영화관에서는 영화에 몰입하기가 쉬운데 집에 있는 컴퓨터로는 쉽지 않은 걸까? 이는 데스크탑이 영화관보다 하이퍼매개성이 강하기 때문이다. 영화관의 관객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스크린만 볼 수 있고 영화 사운드만 듣기에 비매개의 투명성이 극대화된다. 그러나 집에서는 아무래도 그런 조건이 부족하기 마련이고, 관객은 미디어의 존재를 좀 더 분명하게 인식한다. 물론 하이퍼매개가 미디어에서 무조건 제거해야할 대상인 것은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인공적이고 현실과 동떨어진 느낌의 록 음악이 그토록 인기 있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디지털 세계의 미디어, 즉 뉴미디어는 이 두 가지 방법―비매개와 하이퍼매개―을 사용하여 ‘재매개’를 시도한다. 재매개란 폴 레빈슨이 ‘새로운 미디어 테크놀로지가 앞선 테크놀로지를 개선하거나 수정하는 인간성향적 과정’이라 정의한 개념으로, 쉽게 말하자면 새로운 미디어가 이전 미디어의 형식들을 개조함을 의미한다. TV와 영화 산업의 발달은 라디오 산업의 재매개를 이뤘는데, 요즘은 흔히 볼 수 있는 ‘보이는 라디오’가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재매개는 한편으로는 우리가 현실에서 벗어나 디지털 세계에 몰입하게 만들지만(비매개), 한편으로는 미디어의 존재를 인식하고 현실에 돌아올 수 있게 함으로써(하이퍼매개) 미디어의 진보를 이룬다. 디지털 영화 역시 예외가 아니다.

<아메리칸 스나이퍼>와 재매개

<라이언 일병 구하기>, <블랙 호크 다운> 등 지금까지의 전쟁 영화와 <아메리칸 스나이퍼> 사이에 커다란 차이점이 있다면 그것은 영화가 철저히 한 개인에게 시선을 집중했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관객은 비매개의 투명성을 뚜렷하게 경험한다. 앞서 서론에서 언급했듯 영화에서는 선택의 순간들을 여러 번 반복해서 보여준다. 수류탄을 들고 가는 아이를 쏠 것인가, 말 것인가? 아군을 쏘려는 적의 저격수를 처치하면 자신의 위치가 적에게 노출될 텐데 그에게 탄환을 발사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RPG(대전차용 로켓런쳐)를 드는 아이를 조준하며 혼잣말로 “제발, 제발 들지마, 그거 내려놔.”라고 중얼거리는 카일의 심정은, 그걸 지켜보는 우리에게 그대로 전해진다. 그의 시선은 곧 우리의 시선이기 때문이다.

   
▲ 영화 속 한 장면. 관객은 영화가 진행될수록 그의 고뇌에 깊이 동참한다.

하지만 디지털 영화라는 뉴미디어답게 영화는 하이퍼매개도 적절하게 이용한다. 아군과 적, 적과 아군의 시선이 교차하는 장면이나 모든 것이 끝나고 작전 지역에 불어닥치는 모래 폭풍을 줌&아웃을 통해 보여주는 장면 등은 관객 스스로가 ‘카일’이 아니라 영화를 즐기는 관객이라는 사실을 인식시킨다. 특히 최후의 순간에 발사된 탄환을 카메라가 슬로우 모션으로 추적하는 장면은 디지털 영화만이 할 수 있는 최고의 하이퍼매개라고 할 수 있겠다. 이것은 마치 FPS게임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데, 이런 경우는 디지털 게임이 영화를 재매개했다고 할 수 있을 터이다.

재매개를 통해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두 가지 목적을 이룬다. 첫째는 전쟁 속의 개인이라는 주제를, 투명한 비매개를 이용하여 보여준다. 관객은 전쟁의 참혹함을 사실적으로 느끼고 그 비참함에 몸서리친다. 둘째, 그럼에도 이 모든 이야기가 영화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하이퍼매개를 통해 보여줌으로써 관객에게 안도감을 느끼게 한다(물론 이 이야기는 실화이므로 관객들은 영화가 끝난 뒤 비매개의 2차 충격을 받게 된다). 즉, 우리는 영화관에 가만히 앉아서 전쟁의 참혹함과 트라우마를 경험하되 ‘정상적으로’ 다시 현실 세계로 돌아간다.

전설Legend과 평범함 사이에서

   
 

카일의 동료들과 후임들은 그를 가리켜 전설이라 부른다. 그가 처리한 적군의 숫자만 100명이 넘어가기 때문이다. 실로 전설의 레전드가 아닐 수 없다. 현실과 디지털 세계를 넘나드는 의식 세계 속에서 우리는 전설인 그의 고뇌 속에 이입할 수도 있고, 반대로 영화에 거리를 둔 채 평범한 자기 자신과 카일의 입장을 대조할 수도 있다. 우리는 영화를 보는 순간에도 재매개의 이중 논리를 사용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미디어가 끊임없이 재매개를 거듭하는 세상 속에 살고 있다. 디지털 세계와 아날로그 세계의 구분도 점점 무의미해지고 있다. 미디어는 자신을 지우고자 노력하지만 동시에 자신을 드러내며 계속해서 그 과정을 반복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팽팽한 줄다리기 속에서 디지털 영화를 즐길 수 있다. 실화라서 더 투명하게 느껴지는 긴장감과 노련하게 짜여진 디지털 기법 사이의 줄다리기를 경험할 수 있는 <아메리칸 스나이퍼>. 재매개의 이중 논리를 꼭 닮은, 전설과 평범함 사이의 고뇌를 즐기고 싶은 관객에게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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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건 기자
seawhale98@thearti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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