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의 악동, 전시장에 들어서기까지 :거리의 예술, 그래피티에 관하여
김소형 조회수
Google 검색에서 디아티스트 기사를 더 자주 볼 수 있습니다.
[THE ARTIST 매거진=김소형] 미술관의 새하얀 벽에 화려하고 선명한 스프레이 페인트가 뿌려졌다. 작품들이 걸리던 자리는 홍대와 신도림, 압구정, 부산대 등지의 지하철역과 골목길의 벽면을 뒤덮던 그래피티로 채워졌다. 화이트 큐브는 더 이상 화이트(white)하지 않지만, 그 자체가 예술 작품이 된 듯하다. 안산의 경기도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거리의 예술_그래피티 아트展‘의 모습이다.
![]() |
||
| ▲ © 뱅크시(Banksy) | ||
그래피티(Graffiti)는 골목이나 건물 벽면 등에 스프레이 페인트로 그려진 낙서와 그림을 통칭하는 단어로, ‘긁다’ 혹은 ‘긁어서 새기다’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graffito’에서 유래했다. 1970년대 뉴욕의 빈민가에서 가난한 흑인과 소수민족, 청소년이 권력과 사회에 대한 반항과 분노를 표출한 낙서에서 비롯되었다. 주로 공공장소의 벽면이나 지하철, 버스와 같은 공공시설물에 그려지기 때문에 반달리즘*의 성격을 띤다. 하지만 뱅크시(Banksy), 바스키아(Basquiatㅅ), 키스 해링(Keith Herring)과 같은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의 행보가 이슈화 되면서, 불법 행위로만 여겨지던 그래피티는 하나의 예술 형태로써 사회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제 그래피티는 더 이상 단순한 낙서로 치부되지 않는다. 강렬한 색감, 섬세한 드로잉으로 표현되는 다양한 레터링과 이미지의 조화는 그 예술성을 충분히 인정받고 있다. 그저 범법으로만 여겨진 탓에 음지에서 행해지던 그래피티는 당당히 대중 앞에 나와 신선한 자극을 선사하기 시작했다. 칙칙한 회벽에 그려진 다채로운 그래피티는 밋밋한 도시 풍경에 생기를 불어넣고, ‘거리 미술(street art)’을 주도하여 예술의 대중화에 기여한다는 매우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그 특유의 화려한 색체와 자유분방한 느낌 덕에 최근 패션, 건축, 인테리어, 액세서리 등 다양한 분야에 응용되기 시작했다. 반항아들의 범죄행위가 아닌 젊은이들의 문화이자 예술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 |
||
| ▲ © 뱅크시(Banksy) | ||
하지만 최근 대중화, 상업화를 통해서 보여 지는 그래피티의 모습은 다소 시각적인 면에만 치중되어있는 것 같다. 우리는 화려함 뒤에 깔려있는 그래피티 문화의 본질과 정신에 대한 주목해봐야 한다. 프랑스의 그래피티 아티스트 ‘키덜트’는 소화기에 페인트를 담아 명품매장에 분사해 KIDULT라는 글씨를 남겨 물질만능주의를 비판하였다. 누군가는 이를 예술이라 부를테고, 누군가는 그저 테러 행위일 뿐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키덜트의 행위는 명백한 불법이다. 2013년 11월에는 무궁화호를 덮은 거대한 그래피티가 화제가 되었다. 이 또한 불법이다. 하지만 당시 많은 이들이 보기 좋다는 반응을 보였고, 예술로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과 불법이므로 단속해야 한다는 의견으로 나뉘어 논쟁이 있었다. 예술이라는 이름하에, 그래피티가 존중받을 수 있는 범위는 어디까지인지 고민해 봐야 할 시점이다.
거리의 낙서에서 시작하여 미술관에 들어오기 까지, 그래피티에 대한 인식은 끊임없이 변화해왔다. 그리고 그 변화의 중심에는 온 도시를 전시장으로 삼아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때로는 장난스럽게 사회적인 메시지를 던지기도 하며 다양한 시도를 통해 자체적인 양식을 구축해낸 아티스트들의 노력이 있었다. 부정적인 인식에서 벗어나 대중들의 눈길을 사로잡기 시작한 그래피티. 그래피티가 하나의 문화이자 예술로 계속해서 사랑받기 위해서 이제 시각적인 면에만 주목할 게 아니라 그 본질에 대한 이해와 공감, 꾸준한 논의가 이루어지길 바라본다.
*반달리즘: 문화, 예술 공간 및 공공시설을 파괴하는 행위 및 그러한 경향을 일컫는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