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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에두아르 마네의 든든한 형, 시인 샤를 보들레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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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 보들레르

[THE ARTIST 매거진=정보라] 보들레르는 19세기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가 공존하던 시대, 시대를 앞서는 심미안을 가진 미술비평가이자 상징주의를 이끈 시인이었다. 그러나 예술가로서의 성공과 명성은 그의 혼란스럽고 불행했던 삶과 상당히 대조된다. 보들레르가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화가였던 친부가 죽고, 그의 어머니는 곧바로 재혼을 한다. 어머니를 뺏겼다는 어린아이의 감정은 보들레르가 평생 모정을 갈구하게 만들었고, 장교인 양부의 엄격한 훈육방식은 그에게 속박되는 것에 대한 혐오감을 심어준다. 이러한 가정환경 속에 보들레르의 섬세한 감수성은 예민하고 우울한 성격으로 변화하게 된다. 이런 그의 성격은 그로 하여금 삶은 고된 여정이라는 생각을 심어주었고, 항상 육신과 이성 너머의 진정한 자유로움을 꿈꾸게 된다. 그는 ‘상징’을 통해 그곳에 다다를 수 있다고 믿으며 시를 쓰게 된다.

<1845년 살롱>이라는 예술비평으로 먼저 인정을 받은 보들레르는 후에 파격적인 시집 <악의 꽃> 등을 출간하며 문학성을 인정받았지만, 극도로 불안정한 심리로 우울과 궁핍 속에서 힘든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이런 보들레르도 자신이 인정하고, 또 영감을 주는 예술가들과는 가까이 지내며 어울렸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에두아르 마네이다.

마네는 보들레르 보다 열한 살 어린 동생으로 그의 추종자를 자처했던 인물이었다. 마네의 보들레르에 대한 강한 신뢰는 아마 당대 평론가들에게 폄하받았던 그의 작품을 보들레르가 인정해주었기 때문이리라. 당대 프랑스 사회에서 화가로 인정받는 등용문이었던 살롱-권위있던 전시회-에서 마네는 몇 번이나 낙선했었다. 그런 그에게 그 당시 혁신적인 살롱 비평으로 주목 받았던 보들레르의 인정은 마네가 혹독한 미술계의 비난을 견디는 데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사실 마네의 작품은 기존 비평가들에게 혹평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보들레르나 에밀 졸라 같은 강력한 지지자들을 갖고 있었다.) 또한 마네는 보들레르의 작품관에 깊게 감명하고 있었으며, 그와 다르게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마네의 온건한 성품이 까탈스러운 보들레르와 어울릴 수 있도록 도왔던 것 같다.

   
▲ 마네, 피리 부는 소년

이러한 보들레르와 마네의 관계의 증거로 마네의 작품 <검은 비너스>를 들 수 있다. <검은 비너스>는 오랜기간 보들레르의 연인이자 뮤즈였던 흑인여성 잔느 뒤발을 그린 그림이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아무에게나 그리게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 그림은 보들레르가 마네의 재능을 인정하고 그를 신뢰했다는 증표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마네의 명작 <피리 부는 소년>에도 그들의 인연이 녹아있다. 르네상스시대 원근법의 등장 이후 지속되어온 입체적 표현방식 대신, 평면적 표현과 색채 대비만으로 실재감을 나타낸 피리 부는 소년. 이 인물의 실제 모델은 마네와 보들레르의 친구였던 근위대 사령관이 소개한 소년병이였다. 이 이외에도 마네는 보들레르의 초상화를 여러 번 그리기도 했다.

사실 보들레르는 고전적인 아카데미 화풍만이 인정받던 19세기 살롱에서 기존의 비평가들이 비난했던 새로운 표현방식을 시도한 작가들을 높이 평가했다. 거기에는 마네 뿐만 아니라, 프랑스 혁명 시기 사회의 격정적 감정을 담아낸 낭만주의 화가 들라크루아와, 사실적인 묘사로 민중사회의 모습을 그려냈던 쿠르베가 있었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후대에 ‘현대성’을 가졌던 작가로 평가된다.

보들레르는 우울하고 외로운 사람이었지만, 예술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희망적인 사람이었던 것 같다. 당대에 인정받지 못했던 현대적 시도들을 적극적으로 옹호했던 그의 예술비평은 이 점을 잘 드러낸다. 그가 비록 우울과 마약, 방탕한 생활로 인한 건강악화와 금전적 궁핍 속에 생을 마감했으나, 그는 마약이 주는 들뜸 속에서도 예술적 상상력, 고단한 현실 너머의 세계를 발견하려던 모순적인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런 희망은 그 자신보다 마네와 같은 동시대의 다른 예술가들을 비춰주는 등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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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라 기자
tonique@thearti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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