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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의 힘, 베를린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한임연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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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locaust Memorial

[THE ARTIST 매거진=한임연 에디터]거대한 사각 공터에 길쭉한 사각기둥들이 일정한 인간격을 두고서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 모습을 떠올려보라. 대부분의 사각기둥들은 본래 건장한 성인 남자의 키도 훌쩍 뛰어넘는 높이인 데다가 중앙을 향해 깊숙이 들어갈수록 땅이 움푹 꺼지는 바람에 체감 높이는 훨씬 더 하다. 게다가 이들 기둥은 높이도 제각각이라 가까이서 보면 다소 무질서해 보이기까지 하다. 이렇게 거대한 일련의 회색 구조물들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이런 단어들밖에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무미건조함, 답답함, 삭막함 등…

그 곳은 바로 독일 베를린에 있는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베를린을 한번쯤 방문해본 사람이라면 반드시 지나쳤을 법한 필수 관광코스이기도 하다. 베를린이라는 거대 도시 한가운데 위치한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은 나치의 대학살로 희생당한 수많은 유대인들을 기리기 위해 2005년도에 설립된 기념관이다. 1980년대 중반 유태인 단체들이 설립을 건의한 이래 여러가지 설계안을 두고 고민한 끝에 1999년 미국 건축가 피터 아이젠만의 설계안으로 공사가 확정되었고, 제 2차 세계 대전 종전 69주년인 2005년에 그 문을 열었다.

   
▲ ©Holocaust Memorial

매년 이 곳을 찾는 관광객들의 발길은 끊이질 않는다. 아무래도 세계사적으로 매우 굵직한 사건을 다루고 있다보니 그런 듯 하다. 그런데 한가지 흥미로운 점이 점은, 베를린 홀로코스트 기념관은 여타 기념관과 사뭇 다르다는 사실이다. 일단 그 곳에 가면 기념관 건물은 커녕 사각기둥들이 늘어선 거대한 광장만을 볼 수 있다. 축구장 3개를 합친 크기의 광활한 광장 위로 총 2천 7111개의 사각기둥들이 빽빽히 자리잡고 있는 이 곳에 사람들의 시선을 끌 만한 것들이 딱히 없는 듯 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관광객들이 이 기념관을 찾는 이유가 무엇일까? 필경 이 곳에 특별한 무언가가 있는 것이 틀림없다.

밖에서 보면 각각의 기둥들은 그다지 높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 넓직한 구조물들의 사이 사이를 거닐다 보면 어느 순간 압사당할 듯이 거대한 구조물 사이에 놓여져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는 바로 중앙을 향해 들어갈수록 땅이 움푹 꺼지는 구조 때문이다. 사실 안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하늘은 까마득해지고 마치 미로 속에 갇혀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건축가가 의도한 바다. 당시 수용소에 갇혀있던, 그리고 가스실에서 고통스럽게 죽어가야만 했던 유대인들의 답답하고도 절망스러운 심정에의 공감을 유도하기 위해 특별히 고안된 것이다. 그 곳에 서 있는 기둥들은 사실은 모두 비석인데, 여기서 한번 더 갸우뚱하게 되는 점은 그 비석을 ‘감히’ 벤치삼아 자유로이 앉아 있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고인에 대한 모욕이 아닌가! 그런데 놀랍게도 이 또한 이미 의도된 결과다. 광장의 모서리 부분에 위치한 기둥들은 다른 기둥들보다 비교적 낮아 쉽게 걸터 앉을 수 있는데 이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저 발도장만 찍고 거쳐가는 것이 아니라 시간적 여유를 두고 당시의 유대인들이 당면했던 고통과 비극에 대해 한번쯤 숙고해 보도록 하기 위함이다. 만약 이 기념관의 구조가 여타 기념관이나 추모 공원처럼 무덤과 비석만이 그저 열을 지어 세워져 있는 구조 였다면 지금과 같은 효과를 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 ©Holocaust Memorial

어떠한 대상에게 동일한 목적으로 동일한 컨텐츠를 전달하려 할 지라도 그것의 매체가 무엇이냐에 따라 그 대상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은 크게 다를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건축과 디자인은 실로 위대하다. 단순히 심미적인 것, 또는 기능적인 역할 너머의 것이 건축의 힘 속에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즉, 베를린 홀로코스트 메모리얼과 같이 하나의 건축물은 어떠한 가치를 담고 있을 수 있으며 나아가 그것을 보는 사람들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키고 특정한 가치에 대해 숙고해 볼 수 있도록 만든다. 베를린을 여행할 기회가 생긴다면, 반드시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을 방문해 보기를. 그래서 그 거대한 건축물이 가져다 줄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당신도 느껴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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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임연
imyeon@thearti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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