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RTIST 매거진=한임연 에디터] “지금까지 나는, 나를 그들의 수호성인쯤으로 여기는 초현실주의자들을 어릿광대들이라고 생각해왔네(술을 걸쳤을 테니, 95퍼센트라고 해두게나). 하지만 진지하고 멋진 시선에다 탁월한 솜씨를 가진 이 에스파냐 젊은이가 나의 생각을 재검토하게 하였다네.” – 지그문트 프로이트, ‘슈테판 츠바이크에게 쓴 편지’
1938년 런던, 이곳에서 한 에스파냐 출신 젊은이는 예기치 않게 전부터 존경해온 프로이트를 만나게 됩니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작가인 슈테판 츠바이크가 이 젊은이를 프로이트에게 소개하게 된 것입니다. 그 날의 만남 이후 프로이트는 츠바이크에게 부치는 서신에서 그 에스파냐 젊은이에 대해 위와 같이 언급했는데요, 그 젊은이가 바로 20세기 초현실주의의 대가, 살바도르 달리입니다.
‘달리’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바로 흘러 녹아내리는 듯한 시계의 이미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요즘에는 이 달리의 ‘늘어진 시계’를 본뜬 인테리어 소품도 불티나게 팔린다고 하네요. 그런데 사실은 이 <늘어진 시계>뿐 아니라 달리의 다른 많은 작품들도 꽤나 대중적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그것은 그의 작품세계가 독특하다는 것 뿐만 아니라 그가 남긴 400여개라는 어마어마한 개수의 작품들 모두가 하나같이 높은 완성도를 지닌다는 사실에서 기인하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그 수가 많다지만 그래도 그의 대표작들을 한데 모아 놓으면 ‘무의식과 상상의 세계’라는 제목으로 단번에 묶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달리에 대하여 논할라 치면 한 장의 페이지로는 턱없이 모자라답니다. 비교적 최근 작가라 그런지 작가와 작품에 얽힌 다양하고도 흥미로운 에피소드들이 매우 많거든요. 마음 같아서는 모두 나누고 싶지만 제게 주어진 시간과 분량은 아쉽게도 제한되어 있네요. 그래서 달리의 작품세계에 있어 가장 핵심적이고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프로이트의 사상이 그의 작품에 어떻게 투영되고 있는지에 대해 <음산한 유희>라는 작품을 중심으로 다뤄보고자 합니다.
기본적으로 달리의 작품을 다루기에 앞서, 프로이트라는 사람이 대체 누구이며 그의 중심 사상이 무엇인지부터 간략하게 알아보겠습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활동했던 오스트리아 출신의 철학자로서, ‘정신분석학의 아버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말 중에 ‘무의식적으로’라는 표현이 있지요. 그런데 사실 이런 ‘무의식’이라는 말은 프로이트가 언급하기 전까지만 해도 제대로 정립되지 않았던 개념이었답니다(당시 이 개념은 존재조차 하지 않았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니까요). 그런데 1900년대 초반 프로이트가 자신의 저서에서 무의식의 영역을 소개하면서부터 사실상 우리가 사고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에는 이러한 무의식의 영향이 의식의 영향만큼이나 막대하게 작용한다는 생각이 널리 퍼지게 된 것이지요. 그에 따르면, 무의식의 영역은 보통 유년기 시절에 형성되며 이 시기에 겪은 트라우마와 그로 인한 공포, 두려움, 불안감 등이 그 영역을 이루는 주된 요소가 됩니다. 이러한 무의식은 보통 꿈이나 다른 특정 사물에 투영되어 나타나게 되는데, 예컨대 말로 설명하기 힘들지만 어떤 특정 물체만 보면 소름이 끼친다거나 괜히 피하고 싶어지는 마음이 드는 현상(그것이 딱히 공포심을 불러 일으키거나 보기가 역겨운 것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도 일종의 무의식이 수면 위로 표출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달리의 작품은 이러한 프로이트적 사상을 어떻게 담아내고 있을까요? 출품되었을 당시 초현실주의자들 사이에서 엄청난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던 <음산한 유희>(혹은 <음산한 놀이>)를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그림부터 찬찬히 본 다음에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나가도록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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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어떠세요? 이토록 괴상망측한, 제목처럼 말 그대로 ‘음산한’ 이미지들의 집합체를 보고도 “아, 정말 아름답구나”라고 말할 수 있다면 당신은 정말로 남다른 예술적 취향을 지니고 있음을 인정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위 그림을 보며 적어도 한번쯤은 (미묘하게나마)얼굴을 찌뿌리면서도대체 이 그림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호기심을 품을 것 같습니다. 과연 이 그림을 통해 달리가 보여주고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먼저 그림을 총체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전체적인 그림이 가져다주는 느낌은 어떠한가요? 전혀 실제적이지 않으며 오히려 꿈과 환상에서 경험하는 듯한 느낌을 자아냅니다. 이러한 느낌을 유발하는 요소들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먼저, 단색조로 표현된 지평선이 아스라히 사라지며 끝없이 펼쳐지는 풍경은 이곳이 도대체 어디인지에 대해 식별이 불가능하도록 만듭니다. 이는 그림을 바라보고 있는 감상자들로 하여금 마치 환상 속에 자리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불러 일으킵니다. 또 하나의 요소는 바로 색상의 대비입니다. 왼쪽 뒷부분에 위치한 조각상과 앞쪽의 거대한 계단을 비롯한 몇몇 사물들은 회색조의 비교적 단일한 색상으로 표현되고 있는 반면, 마치 달리의 뇌 뚜껑이 열려 갖가지 생각들이 튀어나온 듯해 보이는 부분은 화려하고도 나름 생생한 색들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꿈을 꾼다고 가정해 봅시다. 어떤 사물들, 사건들은 시야에서 점차 사라지는데 다른 어떤 일들은 그것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습니까?(물론 꿈을 꾸는 동안에는 우리의 시야와 주의에서 사라지는 것들에 대해 그것이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긴 하지만요) 이렇게 작품 내 형성되고 있는 전체적인 분위기와 현상은 프로이트가 말한 ‘꿈을 통한 무의식의 표출’과 대응합니다.
그럼 이번에는 조금 더 세부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그림의 정중앙에 위치한, 눈을 감고 땅을 향해 고개를 숙인 한 남자의 두상이 보이실텐데요, 달리가 남긴 기록에 따르면 그 남자는 다름 아닌 달리 자신을 표현한 것입니다(조금 닮은 것 같지 않나요?). 사실 저렇게 옆모습만을 보이고 있는 저 남자는 달리의 다른 많은 작품들에서도 쉽게 발견해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작품들이 작가인 자신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사실을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는 것이지요. 여기서 우리는 작품해석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바로 ‘작가의 삶’을 말입니다. 작품 속에서 자신을 대놓고 드러냄으로써 작가인 달리는 작품에 직접적으로 관여하고 있는 셈이지요. 따라서 달리의 작품을 읽기 위해서는 그의 삶을 함께 살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프로이트는 정신분석에서 유년기 시절 무의식의 영역에 각인된 기억들과 훗날의 연상과정이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주장하였는데,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음산한 유희>는 달리의 삶 중에서도 특히 그의 어린 시절의 모습과 깊은 연관성을 지니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실로 이 그림은 달리가 유년시절부터 품어 온 공포의 대상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사자, 메뚜기, 자갈, 여성의 음부 등……. 이 모든 이미지들은 성질이 전혀 다른 것들이기 때문에 그 속에서 연관성을 찾기란 여간 쉬운일이 아니지요. 달리 역시 이 그림을 그릴 때 각각의 이미지 사이에서 어떤 연관성을 찾기 보단 그저 연상과정에서 연쇄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들을 화폭에 담아내었다고 합니다. 작가 스스로도 그 이미지들의 연관성을 뚜렷하게 인식하지 못했던 것을 보면 위 그림은 그저 서로 다른 음산한 이미지들의 종합체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정신분석학적으로 접근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좀전에 언급하였듯이 <음산한 유희>에 등장하는 여러 이미지들은 달리가 특히 혐오하거나 두려워하는 것들로서, 그의 무의식에 잠재되어 있던 두려움, 불안감 등이 그림으로 표출된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죠. 다시 말해 서로 무관해 보이는 저 이미지들도 사실은 ‘달리의 무의식에 존재하고 있던 두려움’이라는 공통분모를 공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달리가 가지고 있던 두려움은 정확히 무엇이었으며 그것은 어떻게 생성되었는지에 대해 궁금해지지 않나요? 왜 저렇게 흉측하고도 성적으로 문란해보이는 이미지들이 널부러지듯 펼쳐지고 있는 걸까요? 그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야말로 매우 흥미롭습니다. 아직도 한국사회에서는 암묵적으로 금기시 되고 있는 성적인 내용과 우리 모두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법한 어린시절의 트라우마와 깊은 연관성을 지니고 있거든요. 정말 살아있는 그 뒷이야기를 듣고 싶으시다면 다음주를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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