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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미술을 어려워할까?

김소형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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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TIST 매거진=김소형 에디터]영화 ‘500일의 썸머(500 Days Of Summer)’에서 남녀 주인공인 썸머(주이 디샤넬 분)와 톰(조셉 고든 레빗 분)이 미술관 데이트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난해한 작품들 앞에서 썸머는 나름대로 작품을 이해해보려 하지만 자기 생각을 말하고 있는 썸머도, 이를 듣는 톰도 표정에 지루한 기색이 역력하다. 결국, 톰이 먼저 ‘Do you want to watch movie?’라고 제안하자 썸머는 기다렸다는 듯이 단번에 ‘Yep’이라 대답하고 두 사람은 미술관을 나선다. 아마도 두 사람이 미술관을 찾는 일은 다시는 없을 것 같다.

비록 결과는 좋지 못했지만, 이 커플은 그래도 양호한 편이다. 적어도 자발적으로 미술관에 찾아갔고, 작품을 이해하려고 시도해 보지 않았는가. 내 주변만 해도 미술관을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지인들이 허다하다. 물론 사람마다 취미와 관심사가 달라서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미술을 즐기는 법을 미처 깨닫지도 못한 채 ‘아 미술은 너무 어려워’라며 지레 겁을 먹는 경우가 많다. 이때 미술을 어려워한다는 말은 정확히 하면 미술을 감상하는 게 어렵다는 말이다. 미술 작품을 보고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하고 유명한 명화를 보고도 도무지 어떤 점 때문에 이 작품이 유명한지, 어떤 점이 위대한지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미술을 어렵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미술을 어려워할까?

우선 우리가 느끼는 이 어려움은 학교 미술 수업시간에서부터 시작된다. 대부분의 사람이 가장 처음 접하는 미술 작품은 교과서에 실린 손바닥만 한 크기의 작은 이미지들인 경우가 많다. 실물보다 훨씬 작고 왜곡된 이 이미지로는 실제 작품의 색감이나 질감, 그 밖의 디테일을 확인할 수가 없다. 회화가 아니라 조형물인 경우는 그 차이가 더 심하다. 더욱이 유명한 작품일수록 직접 보기가 쉽지 않아서 책이나 TV, 컴퓨터의 화면으로 보는 경우가 흔한데, 이런 간접감상이 오히려 ‘에이, 명작이라더니 별로네!’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 미술에 흥미를 반감시킨다. 하지만 우리가 마주하는 이미지가 조악할지라도 미술 수업이 학생들로 하여금 실물을 보고 싶도록 흥미를 유발하면 문제가 없을 텐데,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다. 미술 작품 감상에는 배경지식의 유무가 큰 영향을 미친다. 작품에 영향을 미친 시대적 상황과 작가의 생애와 같은 배경을 알고 볼 때와 모르고 볼 때의 감상은 확연한 차이를 가진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중고등학교 미술 수업시간에 우리가 배우는 것은 두세 장 남짓한 요약본에 정리된 미술사조의 순서와 사조별 대표 작가와 작품들의 이름이 거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지어 작품에 대한 감상에는 정답이 없는데, 시험을 위해서 작품에 대한 느낌조차 책에 쓰인 대로 외우기까지 한다. 실물로 보지 못했으니 책에 나온 감동에 공감할 수 없고, 공감할 수 없으니 재미도 없고, 재미가 없으니 미술관을 갈 생각 한번 하지 않게 되고, 미술관을 가지 않으니 실물을 볼 기회가 없다. 참으로 안타까운 악순환이다.

그렇다면 이 악순환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우리는 미술을 좀 더 친근하게 느낄 수 있을까? 미술관에 발걸음 해 작품을 실물로 마주했을 때, 우리는 또 다른 난관에 봉착한다. 관객의 순수한 감상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인지, 작품들은 일절 부연 설명 없이 제목과 작가, 작품 이름, 재료만 달린 채로 관객을 맞이한다. 추상화가 마크 로스코는 ‘관람자와 내 작품 사이에는 아무것도 놓여선 안 된다. 작품에 어떠한 설명을 달아서도 안 된다. 그것이야말로 관객의 정신을 마비시킬 뿐이다. 작품 앞에서 해야 할 일은 침묵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하지만 나는 이에 전적으로 반대 견해를 표명하는 바이다. 자신의 작품 앞에서 침묵할 것을 요구한 마크 로스코, 바로 그의 작품 앞에서 내 친구는 “이 정도는 나도 하겠다!”라며 불만을 내질렀다. 설명을 듣기 전 자신만의 감상을 하는 것 또한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영화 속의 썸머와 톰처럼 도대체 어떻게 작품을 받아들여야 하는지 몰라 당황하는 관객에게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는 것은 명백한 불친절이다. 특히나 작품이 담고 있는 철학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근현대미술의 경우 부연 설명 없이는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 이해하기 곤란한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근현대미술이 아니더라도 언급했다시피 배경지식은 작품의 풍부한 감상에 아주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설명의 부재는 풍부한 감상을 할 기회를 앗아가 버리는 것과 다름없다. 이 때문에 미술관에서 도슨트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 것이다. 하지만 항상 도슨트 시간을 맞추기란 쉬운 일이 아니고, 처음 미술관을 방문하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도슨트의 존재조차 모르는 경우도 많아서 쉽사리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설명의 부재만큼이나 지나치게 어려운 설명도 관객을 곤란하게 한다. 대중들에게 생소한 너무 높은 수준의 인문학적 지식과 난해한 언어를 바탕으로 하는 설명은 오히려 설명을 듣느니만 못하게 만들기도 한다. 예시로 지금 대전시립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피카소와 위대한 화가들 展’에 있던 잭슨 폴록의 작품 ‘구성’에 대한 설명을 살펴보자. ‘구성은 폴록의 초기 작품에 해당된다. 여기에 등장하는 기호와 상징적 이미지는 초현실주의의 자동기술법과 융의 집단 무의식 이론, 미국 원주민 문화의 영향을 보여주며 이후의 추상 형태들을 해석하는데 단서를 제공해주기도 한다.’ 이 설명을 마주한 관객은 혼란에 빠진다. ‘자동기술법’은 무엇이며 융의 ‘집단 무의식 이론’은 무엇이고 어떤 점이 ‘미국 원주민 문화’의 영향을 나타낸다는 것일까? 설명은 작품의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인데, 그 설명이 이해되지 않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자동기술법, 집단 무의식 이론과 같은 전문 용어와 우리에게 생소한 미국 원주민 문화에 대한 간단한 소개 정도만 있었어도 훨씬 이해가 쉬웠을 것이다. 아니면 오히려 이런 전문 용어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관객의 감상을 도와주는 간단한 질문들이 더 좋은 설명이 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당신은 이 작품을 보고 어떤 느낌이 드는가? 폴록은 인간의 무의식을 우연한 효과를 통해 그려내는 작업을 했다. 그림의 색채, 붓 터치, 곡선들을 보라. 당시 폴록의 무의식 세계는 어땠기에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었을까?

   
 

미술을 어렵게 느껴지게 하는 또 다른 결정적 요인은 작품을 보고 반드시 무엇인가를 느껴야 한다는 부담감이다. 앞서 설명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했지만, 설명에 지나치게 얽매일 필요는 없다. 작품에 대한 설명은 일종의 가이드북이다. 초보 여행자라면 가이드북 없이는 낯선 곳에서 한참을 헤매고 만다. 하지만 여행에 익숙해지면 가이드북은 그저 참고사항일 뿐 자신이 원하는 대로 발걸음을 옮기면 된다. 미술 감상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느샌가 자신도 모르게 참고사항을 정답이라 여기고 미술 작품을 감상한다. 그렇다 보니, 자신의 감상이 정답에 가깝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점점 미술이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다.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정답이라 여기게 되는 것은 크게 두 가지로, 그 작품에 관해 보편화한 사회적 평가와 작가의 의도가 바로 그것이다. 전자의 구체적인 예로는 흔히 우리가 ‘명화’라고 부르는 것들을 꼽을 수 있다. 비록 미술사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작품일지라도 모든 사람이 그 작품에 감동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개인의 감상은 오롯이 개인의 몫이다. 감상은 사람마다 ‘다른’ 것이지 ‘틀린’ 것이 아니다. 아무리 모두가 위대한 작품이라 입을 모아도 내 취향이 아니라면 소신 있게 내 취향이 아니라 얘기해도 아무도 비난하지 않는다. 작가의 의도 또한 마찬가지다. 작품에 대한 개인의 감상이 작가의 의도에 공감하지 못하고 이와 동떨어져 있더라도 상관없다. 작품의 가치를 판단하고 완성하는 것은 관객이다. 작품에 대한 해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받아들이지 않아도 좋다. 남들과 똑같은 것을 느껴야 한다는 부담감을 벗어버리자.

그럼 마지막으로, 재밌고 쉬운 미술 감상을 위한 방법을 소개하고자 한다. 물론 이는 순전히 필자 혼자서 생각해 본 방법이기 때문에 정답은 아니다. 다만, 이제 막 미술에 관심을 가져보려 하는데 도통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는 그런 사람들을 위해 ‘이렇게 시작해 보는 건 어때?’라며 일종의 제안을 하는 것이다. 그 제안은 다음과 같다.

1. 우선 미술 작품을 많이 접하는 것이 중요하다. 적어도 처음 세 번 정도는 미술관에 가보는 게 좋다. 자신의 취향을 아직 잘 모르기 때문에 겹치지 않는 여러 장르의 전시를 가보는 것을 추천한다. 정 미술관에 갈 시간이 없다면, 간접 매체를 통해서라도 다양한 작품을 접하도록 하자.

2. 아무런 설명도, 해설도 없이 오롯이 작품과 일대일로 대면하여 전체적인 분위기부터 아주 사소한 디테일까지 최대한 그 작품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도록 노력해 보자. 이미 작품과 관련된 배경지식을 알고 있다면 어쩔 수 없지만, 최대한 알고 있는 사실을 배제하고 순수하게 작품 자체만을 가지고 감상해보자. 굳이 한 전시의 모든 작품을 이렇게 감상할 필요는 없다. 가장 마음에 드는 한두 작품 앞에서라도 최대한의 노력을 해보자.

3. 그다음은 작품과 관련된 배경지식, 작품 해설, 오디오 가이드의 설명 등을 참조하여 다시 한 번 작품을 바라보자. 같은 작품이지만 사뭇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4. 만일 작품 해설이 맘에 들지 않는다면 무시해도 좋다. 지나치게 어려운 배경지식 또한 일부러 이해하려 머리 싸매지 않아도 된다. 나만의 감상으로도 충분하다.

5. 두 번의 감상 뒤에도 작품에서 별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면, 그냥 지나쳐 버리자. 그 작품은 당신의 취향이 아닌 것이다.

이런 방법으로 미술 작품들을 감상한다면, 점점 더 미술 감상에 재미를 붙일 수 있게 될 것이다. 이 글을 읽고 난 뒤 당신의 미술 감상이 조금이나마 쉬워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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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형
sohyung@thearti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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