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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o you belong in this neighborhood? | ||
[디아티스트매거진=손정호][기사 내 모든 사진의 출처는 ‘NAVER 영화’, ‘DAUM 영화’입니다]
<겟 아웃(Get Out)>(2017, 조던 필레)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요즘 호러물은 ‘공포’를 ‘얼마나 잔인한지 혹은 깜짝 놀라게 하는지’로 표현한다. 이를 선호한다면 <겟 아웃>은 시시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찬찬히 뜯어보면 <겟 아웃>은 제법 잘 만들어진 영화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타 호러물은 등장인물보다 관객에게 공포를 전달하려는 의도가 겉으로 드러난다. 보다 자극적으로 만들어 공포의 잔상을 관객의 눈에 남긴다. 반면 <겟 아웃>은 영화 속 인물이 느낄 공포에 초점을 둔다. 공포의 잔상이 머릿속에 남아 영화를 곱씹을수록 더 진한 공포가 스며 나온다. 즉, 공포를 자극적이거나 오컬트적인 요소에서 찾지 않는다. 인간의 원초적 공포를 다루면서 현실에 그 뿌리를 둔다. 인간은 보는 것(아는 것)에 의존하고, 보이지 않는 것(모르는 것)을 두려워하기 마련이다. 보고 믿은 것이 실은 누군가의 의도에 의해 조작된 것이고, 그 의도가 유해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공포를 극대화시킨다. 영화에 현실이 투영되면서 공포는 프레임 밖으로 새어 나와 관객을 엄습한다. 영화와 현실을 잇는 다리가 ‘인종차별’이라고 하기엔 한계가 있다. 영화 전반을 관통하는 것은 ‘인간의 물화(物化)’이다. <겟 아웃>에서 ‘인종차별’이 한 그루의 나무라면, ‘인간의 물화’는 숲이다.
‘인간의 물화’는 인간이 물건처럼 치부되는 것을 말한다. 물건은 몇 가지 특성을 갖는다. 첫째, 비교가 가능하고, 가치우위를 정할 수 있다. 둘째, 소유와 거래가 가능하다. 셋째, 대체할 수 있다. 넷째, 개인의 필요에 따라 존재의 가치가 결정된다. 다섯째, 수단이나 도구로 활용된다. 인간이 사물로 전락하면서 차별과 혐오, 물질만능주의, 납치 및 장기매매, 이기주의, 가식과 기만 등의 문제가 발생했다. 마틴 부버의 저서 『나와 너』에 따르면 세계를 대하는 근원적 태도는 ‘나-너’의 관계, ‘나-그것’의 관계로 나뉜다. ‘나-그것’의 관계에서 나는 ‘나’를 경험과 이용의 주체로 인식한다. 이 경우에는 사람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도 ‘그것’이 되어 나의 경험과 이용의 수단이 된다. 즉, ‘나-그것’의 관계는 물화를 내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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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딘 가족의 파티에 참석한 크리스 | ||
영화 속 가해자들은 ‘나-그것’의 관계로 세계를 대한다. 파티에 참석한 이들도 인종차별보단 ‘물화’로 설명된다. 유색 인종에 대한 혐오감을 드러내지 않을뿐더러 개중에는 동양인도 있다. 굳이 흑인이 아니어도 라틴댄스 선수가 있었다면 라틴계를, 트렌드가 흰색이었다면 백인을 원했을 것이다. 딘(브래드리 휘트포드) 가족의 파티는 일종의 쇼케이스인 셈이다.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은 크리스(다니엘 칼루야)가 매력적인 상품인지 꼼꼼히 살핀다. 프로골퍼였던 노인은 골프에 적합한지 용도를, 할머니는 병약한 할아버지의 새 육체로 괜찮은지 디자인을, 노부부는 검정이 유행이라며 트렌드를, 시각 장애인은 예술적 감각을 논하며 성능을 확인한다. 경매를 통해 구매자가 결정되면 딘 부부는 최면을 통해 자아를 가두고, 뇌를 교체함으로써 육체를 빼앗는다. 인간을 비슷한 부품으로 대체하면 작동 가능한 기계처럼 묘사했다. 딘 부부는 의사임에도 소명의식이 없다. 그들의 행위는 의료업보다는 가공업에 가깝다. 이들에게 물화는 인간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딘은 크리스와의 첫 만남에서 사슴에 대한 혐오감을 감추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작업실엔 박제된 사슴이 걸려 있다. 생명체로서의 사슴은 싫어하지만, 물건으로서의 사슴은 좋아한다는 의미이다. 결국 박제된 사슴에 찔려서 죽은 딘처럼 물화는 우리를 자멸로 이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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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딘 부부 | ||
한나 아렌트는 그녀의 저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을 말한다. 아돌프 아이히만은 놀라울 정도로 평범하고 가정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업무의 효율성에 충실했을 뿐 살인에 목적을 두지도, 직접 하지도 않았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그에게 유대인 학살은 업무에 불과했고, 유대인은 처리해야 물건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한나 아렌트는 그가 명백히 유죄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타인의 처지를 생각할 줄 모르는 생각의 무능은 말하기의 무능을 낳고, 행동의 무능을 낳는다.’ 딘의 가족을 보면 아이히만이 떠오른다. 그들은 잘못된 행동이란 판단을 하지 않았고, 잘못을 알려 도움을 요청하지도 않았으며, 악행에 동참한다. 가정교육에 세뇌를 받았거나 감정의 결핍 등 선천적 문제가 있었다고 한들 변명의 여지가 없다. 타인의 눈을 피해 자행했다는 것 자체가 사회적으로 통용될 수 없는 행위임을 알고 있었단 방증이기 때문이다. 결국 시스템―가정환경이라는―에 대한 맹목적인 복종과 인간의 물화가 괴물을 만들었다. 만약 딘이 죽지 않고 체포되어 재판에 섰다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우리는 인격을 소멸시키지도, 육체를 훼손하지도 않았으니 어떠한 살인도 하지 않았다. 단지 더욱 절실한 자에게 새로운 삶의 기회와 희망을 제공했을 뿐이다. 내게 죄가 있다면 나의 부주의로 가족들이 살인마 크리스에게 희생당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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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흑인의 육체를 가진 딘 아버지 | ||
<겟 아웃>에서 인종차별 이야기를 빼고 갈 순 없다. 인종차별의 사전적 의미는 ‘인종적 편견 때문에 특정한 인종에게 사회적, 경제적, 법적 불평등을 강요하는 일’이다. 이를 근거로 인종차별을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나보다 특정 인종은 열위에 있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일반적인 형태이다. 제레미(케일럽 랜드리 존스)는 저녁식사 자리에서 흑인의 신체적 강점을 진화가 덜 됐다는 듯 비꼰다. 딘 부부와 로즈(앨리슨 윌리암스)는 흑인을 목적 달성하기 위한 도구 혹은 재료쯤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제레미는 흑인을 향한 폭력 자체가 목적이다. 인종차별주의에 사이코패스 성향이 더해져 묻지마 살인을 한다. 그의 차는 흰색인데 이는 백인우월주의를 상징한다. 둘째는 ‘나보다 특정 인종은 우위에 있다’는 편견 때문에 불평등이 발생하는 형태이다. 딘의 아버지가 여기에 해당한다. 젊은 시절 육상선수였던 딘의 아버지는 흑인 선수에게 패배하며 자신의 한계를 깨닫는다. 흑인의 신체가 생물학적으로 우월하기 때문에 패배한 것이 생각하고, 급기야 흑인의 육체를 손에 넣는다. 외부로 표출되는 폭력성만이 인종차별은 아니다. 부당한 신분증 검사를 하는 경찰관처럼 작은 생각 하나도 폭력적인 인종차별에 해당한다. ‘흑인’ 크리스의 태도와 파티에 참석한 사람이 미국 사회에서의 ‘흑인’에 대해 묻는 모습만 보더라도 인종차별이 얼마나 만연한지 알 수 있다.
앞서 살펴 본 것 외에도 <겟 아웃>은 노골적으로 현실을 비판한다. 앤드류의 행방불명에 대한 무관심-고독사, 신분증 검사를 한 경찰관과 딘 부부-잘못된 직업관, 흑인에 대한 로즈 부모님의 반응을 묻는 크리스-학습된 패배감, 로즈의 이중적 태도-필요에 의한 인간관계 혹은 관태기, 로드가 할머니를 진압한 일화 또는 로드의 제보에 경찰이 보인 반응-안전불감증 등등. 영화에서처럼 폭력적인 관념을 가진 부류가 현실에도 다수 존재한다. 그가 주변인이라면 언제 표출될지 모르는 폭력성에 우리는 무방비로 노출된 셈이다. ‘제한적인’ 조건에서 ‘일부’ 사람이 ‘드물게’ 겪는 일이 아니다. 언제든 나는 크리스일 수 있고, 모든 타인은 딘 가족일 수 있다. <겟 아웃>을 보고 나면 영화보다 현실이 더 무섭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 크리스의 공포는 끝났지만 우리의 공포는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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