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Jacques Louis David, Oath of the Horatii, 1784-85 | ||
[디아티스트매거진=옥세경] 예술가는 작품에 소신을 담는다고들 한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정치적 신념의 일관성을 위대한 예술가의 덕목에 포함시키곤 하는데, 사실 역사적으로 위대한 예술가들 중에서는 정치관이나 도덕관을 상황에 맞게 바꿔가며 활동하는 이들이 많았다. 폭력적인 정치지도자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서, 혹은 더 많은 후원자들을 사로잡기 위해서와 같은 이유들은 우리가 거장이라고 부르는 예술가들마저도 본인의 정치관을 저버리게끔 하는 큰 요인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이들을 그저 소신 없는 예술가들이라고 말하는 데에는 신중함이 필요하다.
![]() |
||
| ▲ Jacques Louis David, Belisarius Begging Alms, 1781 | ||
자크 루이 다비드(Jacques Louis David: 1748-1825)는 신고전주의의 대표적인 화가로 유명하다. 고대 그리스와 르네상스로의 복고를 외치며 미술사에 여러 중요한 업적을 남겼지만, 그는 생존(혹은 성공)을 위해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저버린 예술가로 기록되기도 한다.
본래 다비드는 1780년대에 왕실의 부패를 비판하는 계몽주의적 화가로써 큰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위 그림은 <자선품을 받아들이는 벨리사리우스>라는 작품인데, 벨리사리우스는 비잔틴 제국의 위대한 장군이었으나 비이성적인 황제에 의해 두 눈이 뽑히고 거지로 전락하게 되는 비극적인 인물이다.
![]() |
||
| ▲ Jacques Louis David, The Death of Marat, 1793 | ||
그런 다비드가 프랑스 혁명기에 자코뱅(Jacobin, 급진적 혁명정당)에 입당한 것은 일관적인 태도로 보인다. 물론 자코뱅이 권력을 독점하고 공포정치를 시행하였던 것이 계몽주의적 예술가로서 지지할만한 일이었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적어도 그는 반군주제적인 신념에 대한 일관성이 있었다. 위 그림은 <마라의 죽음>이라는 작품인데, 자코뱅의 공포정치를 이끌다가 원한을 사게 되어 암살당한 마라(Jean-Paul Marat: 1743-1793)의 죽음을 기리는 작품이다. 다비드가 자코뱅을 지지했던 화가인 만큼, 마라는 지성인으로서 표현되었으며 그의 몸은 이상적으로 미화되었다.
![]() |
||
| ▲ Jacques Louis David, Napoleon Crossing the Alps at St, Bernard Pass, 1800-01 | ||
충격적인 것은 다비드의 이후 행적이다. 나폴레옹이 집권한 뒤 자코뱅의 당원들은 대부분 사형을 당하거나 구금되었는데, 다비드는 나폴레옹의 궁정화가로서 탄탄대로를 밟아나간 것이다. 이는 다비드의 예술적 재능을 아까워하고 선전매체로써의 예술의 힘을 잘 알고 있던 나폴레옹이 다비드를 사면해주고 후원하였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유럽역사상 가장 과격했던 혁명정치를 찬미하던 다비드가 진보적 정치인들을 숙청하고 황제에 자리에 오른 나폴레옹을 미화하는 궁정화가가 된 것이다.
![]() |
||
| ▲ Jacques Louis David, Napoleon in His Study, 1812 | ||
물론 이것을 단순히 생존을 위한 변심으로 생각하기에는 당시 다비드에게 우리가 알 수 없는 복잡한 사연들이 있었을 수도 있다. 어쩌면 다비드가 옥중에서 자코뱅의 공포정치에 회의를 느끼게 되어 나폴레옹을 지지하게 되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또 어쩌면 그저 충분한 후원을 받아 멋진 작품을 만들 수만 있다면 그 외에는 어떤 신념도 포기할 수 있다는 예술적 소신에 충실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 |
||
| ▲ Jacques Louis David, Marie Antoinette on Her Way to the Scaffold, 1793 | ||
하지만 이런 특별한 이유가 아니었다면 또 어떤가? 인간이 죽음의 두려움 앞에서 신념을 저버리는 선택을 한 것이 그렇게 비난 받을 일일까? 사람들은 위대한 예술가가 목숨을 구걸하는 모습을 상상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가 죽음의 두려움을 이겨내고 신념을 고수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증거를 위대한 인물들을 통해 확인하고 싶어하는 것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거장이라고 부르는 예술가 역시 한 명의 인간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우리가 다비드의 변절에 공감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댓글0